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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4371439
· 쪽수 : 584쪽
· 출판일 : 2014-11-07
책 소개
목차
제1부 / 7
제2부 / 221
작가의 말 / 579
옮긴이의 말 / 581
리뷰
책속에서
“며칠 전, 마침내 용기를 내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어. 내가 더 이상 부부로 지내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네 엄마의 반응이 이상했어. 사실 난 길길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 거라 생각했는데 고요한 침묵만 흘렀지. 네 엄마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았어. 몰리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어. 네 엄마는 그저 ‘금요일까지 짐을 싸서 나가.’라고 말했을 뿐이야. 그 뒤로 이틀 동안 네 엄마를 거의 보지 못했어. ‘빈 방에서 잘 테니까 내 물건에는 손대지 마. 다음 주에 내 변호사가 전화할 거야.’라고 쓴 쪽지를 남겨두고 나를 피했지. 그러다가 어제 저녁 여섯 시쯤 집에 들어와 보니 네 엄마가 차고에 세워둔 차 안에서 쓰러져 있는 거야. 처음에는 차안에 연기가 가득해 네 엄마가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 차창 틈에 테이프까지 붙였더구나. 일을 제대로 하려고 작정한 거지. 내가 15분만 늦었더라도 네 엄마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됐을 거야. 네 엄마를 간신히 차에서 끌어낸 다음 911에 전화하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인공호흡을 했어. 곧 구급대가 도착해 네 엄마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단다.”
아빠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가 떼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의사가 말하길 네 엄마가 차의 시동을 걸기 전 신경안정제를 스물다섯 알쯤 먹었을 거라고 하더구나.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단다.”
“34년 전, 이 호수로 여름캠프를 왔었어. 여름캠프에 함께 온 백인 여자아이들이 나를 유대인이라고 무시해 잔뜩 화가 났지. 그해 여름, 호수 저편에서 첫 섹스를 했어. 한창 섹스에 몰두하다 여름캠프 지도교사에게 발각되었지.”
“상대는 누구였어요?”
“모리스 핀스커, 하필이면 모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한테 처녀를 주어버리다니! 모리스는 지금 뉴저지에서 유명한 치과의사가 돼있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반 년 전,《뉴욕타임스》에 모리스의 딸 결혼식 소식이 실린 걸 보고 알게 됐어.”
“백인 학생들만 모인 캠프라 유대인은 엄마밖에 없었다면서요?”
“바로 옆에 유대인 남학생 캠프가 있었어. 엄마들이 알았더라면 딸이 유대인 남학생들과 어울려 노는 걸 반대했겠지만 우린 캠프파이어를 하며 그들과 함께 즐겼어.”
“엄마는 어떡하다 그 유대인 남학생을 따라가게 됐어요?”
“캠프파이어를 하며 춤추다가 그 남학생이 숲으로 산책을 가자고 꼬드겼어. 어쩌다가 그냥 따라가게 됐지만 섹스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여름캠프에서 처음 만났다면서요?”
“그래, 숲으로 간 지 10분도 안 돼 모리스가 내 속옷을 내리는 걸 내버려두었어.”
“지금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뭐죠?”
“인생이 얼마나 허망하게 결정되는지 증명해주는 좋은 예니까. 그때 이후 여긴 처음이야.”
“누구나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않나요? 다만 종교는 너무 손쉬운 길을 제시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요. 신이 다 해결해준다거나 믿음이 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쉬운 해법 아닌가요?”
“종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믿고 의지할 뭔가를 찾아 헤매죠.”
“당신의 종교는 혁명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싶어요.”
“무슨 뜻이죠?”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불평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정치혁명을 꿈꾸는 저슨의 눈에 내 불평은 한낱 무기력한 주부의 하소연으로 비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이를 안고 앉아 내 인생이 덫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하소연이 어디 있을까?
“저도 다른 삶을 경험해보고 싶긴 해요. 그렇지만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제 삶을 찾아 떠난다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어요.”
“누구나 다 트로츠키처럼 행동할 수는 없겠죠. 사회의 통념이나 관습의 벽을 허문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죠. 아이가 있는 경우 더욱 결단을 내리기 힘들겠죠. 그렇지만 현재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줄 수는 있잖아요.”
“가령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결혼서약이나 주변의 기대어린 시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정말이지 비극이라 할 수 있죠. 일상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시도해 봐요. 당신의 뛰어난 능력을 사장시키지 말아요.”
“제가 어딜 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