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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3396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7-12-15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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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스미타의 생. 그의 의무, 세상이 그에게 지정한 자리, 수 세대에 걸쳐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로 대물림된 직분. 스미타가 종일 하는 일은 타인이 싼 똥을 맨손으로 긁어모으는 것이다.
여섯 살, 그가 지금 랄리타의 나이일 때 어머니는 당신의 일터에 처음으로 딸을 데려갔다.
“잘 봐둬, 이게 나중에 네가 할 일이야.”
스미타는 사나운 말벌 떼처럼 덮쳐오던 냄새를 기억한다. 견딜 수 없는, 끔찍한 냄새였다. 그는 길가로 뛰쳐나가 구토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어머니는 거짓말을 했다.
스미타는 숨을 참는 방법을 익혔다. 똥을 긁어모으는 동안에는 호흡을 딱 멈추고 견딘다.
보건소 의사는 숨을 참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숨을 쉬지 않으니까 그렇게 기침이 나는 거야. 끼니도 챙겨 먹어야 해.”
오랫동안 스미타는 식욕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뭔가를 먹고 싶다는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 기억도 하지 못한다. 그는 음식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저 죽지 않을 만큼만 입으로 밀어 넣곤 한다.
줄리아의 가족은 선대부터 100년 가까이 카스카투라에 종사해왔다. 카스카투라(cascatura)는 자르거나 자연적으로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가 가발을 만들던 시칠리아의 옛 풍습이다. 1926년 줄리아의 증조부가 창업한 란프레디 공방은 팔레르모에 남아있는 마지막 카스카투라 작업장으로 현재 10여 명의 직공이 일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작업물은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간다.
열여섯이 되던 날 줄리아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공방 일을 돕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학업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특히 국어 교사는 그에게 학자가 될 수 있을 거라며 대학 진학을 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로서는 공방 말고 다른 길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란프레디 가족에게 머리카락이란 세대를 이어온 가업이기 이전에 일종의 열정이었다.
묘하게도 줄리아의 언니와 동생은 이 일에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란프레디 가 딸들 가운데 공방을 이을 사람은 줄리아뿐이다.
사라가 예전에 일하던 로펌에서 한 여자 동료가 시니어로 막 승진한 상황에서 임신한 사실을 공표했다. 다음 날 그의 승진은 취소되고 주니어로 강등당했다. 소리 없는 폭력이었다. 고발하는 사람이 없을 뿐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었다.
사라는 그 일을 자신을 위한 하나의 교훈으로 받아들였다. 사라는 임신했을 때, 두 번 모두 윗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의 배는 꽤 오래 평평함을 유지했다. 거의 7개월에 접어들 때까지도 그리 표시가 나지 않았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뱃속의 아이들도 최대한 몸을 숨기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것은 사라와 뱃속 아이들 사이의 작은 비밀, 암묵적으로 맺은 일종의 협약이었다.
출산 휴가도 가장 짧게 끝냈다. 제왕절개 수술 후 2주 만에, 체형을 완전히 회복한 모습으로,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꼼꼼하게 화장한 얼굴로, 완벽한 미소를 과시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매일 아침 사라는 로펌 건물에 주차하기 전에 인근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뒷좌석의 베이비시트 두 개를 떼어 내 트렁크로 옮기기 위해서다. 물론 동료들은 사라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새삼 떠올리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