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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4373952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0-02-28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길 반대편에서 네 사람이 걸어왔다. 걔네가 우리를 보고 씩 웃었다. 나쁜 징조였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애들이 씩 웃는 건 ‘지금부터 너를 못살게 굴면서 놀 거야.’라는 뜻이다.
바로 우리를. 나와 내 언니 에밀리를. 에밀리 언니는 열네 살이다. 나보다 세 살 많다. 언니의 얼굴이 하얘졌다. 쟤네는 언니와 같은 반이고, 언니가 자기들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애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두려움.]
몇 달 전, 이 괴롭힘이 시작될 때 나는 언니에게 글을 썼다.
언니는 내 말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걔들은 언니가 두려워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언니는 걔네가 우리 쪽으로 올 때 내 귀에 속삭였다. “건너편 길로 가자.”
넷 중 대장인 도로테가 소리쳤다. “어딜 가려고!”
언니가 얼어붙었다. 나는 계속 걸어가는 게 좋다는 뜻으로 언니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도로테 일당이 우리를 둘러쌌다.
도로테가 말했다. “땅꼬마 에밀리가 바보 동생이랑 산책 나왔나 봐?” 그 말에 나머지 셋이 웃었다. 그 셋은 도로테가 못된 말을 할 때마다 웃는다. 언니가 떨기 시작했다. 나는 언니의 손을 더 꽉 잡고, 도로테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도로테가 말했다. “이 찌질이 좀 봐. 센 척하고 있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도로테가 계속 말했다. “왜 말을 못할까? 저능아니까!”
바로 그때, 나는 내가 쓴 글을 도로테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읽지 않을 수 없게 눈앞에 들고 있었다.
[어젯밤에 엄마한테서 저능아라는 말을 들었지? 엄마한테 늘 심한 말을 듣지? 그래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도로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큰 비밀을 들킨 듯한 표정. 내 말이 맞을걸.
도로테가 씩씩대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런 말한 거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방금 새로 쓴 글을 내보였다.
[네 눈을 보면 난 다 알아.]
괴물 나라 정문은 고래 입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안에서 등이 굽은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콰지모도라고 소개했다. 한쪽 눈을 감고 있고, 얼굴에는 온통 흉터가 있었다. 그가 공원을 안내하겠다고 말하며 언니들의 어깨를 감싸자 둘은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물었다. “소설에 나오는 그 콰지모도예요?”
콰지모도가 말했다. “어머니께서 책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그리고 ≪노트르담 드 파리≫는 자기 이야기가 맞다고 했다.
언니가 말했다. “엄마는 아빠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아요.”
[그렇지 않아! 엄마는 책을 아주 좋아해요.] 나는 태블릿에 썼다.
언니가 말했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야.”
“에밀리, 그건 비교할 일이 아니야.” 엄마가 말했다.
언니가 콰지모도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착한 괴물이에요?”
콰지모도가 말했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나는 평범해. 외모가 다를 뿐이야.”
[맞아요, 콰지모도. 저도 사람들한테서 다르다는 말을 들어요.]
“나도!” 루시 언니가 말했다.
에밀리 언니가 콰지모도에게 말했다. “나쁘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여기가 ‘괴물 나라’니까 저는 그냥…….”
엄마가 말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조심해야 해.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돼.”
루시 언니가 말했다. “저는 너무 잘 알아요!”
콰지모도가 우리를 아주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로 안내했다.
엄마와 언니는 수영장 가운데로 수영해 갔고, 언니가 용 바로 앞까지 갔다! 나와 수영장 바깥에 나란히 앉은 루시 언니는 용이 입으로 불을 뿜는 걸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루시 언니가 말했다. “나도 에밀리처럼 날씬하고 용감하면 얼마나 좋을까.”
[루시 언니도 아주 용감해. 그리고 누구나 날씬해야 하는 건 아니야.]
갑자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코끼리가 저능아랑 얘기하고 있네!”
도로테! 그리고 잔혹이들까지! 우리는 포위되었다. 루시 언니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태블릿에 적었다.
[늘 무리 지어서 다녀야 하지? 그래야 힘 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도로테가 말했다. “말도 못하는 바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내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리고 도로테는 루시 언니에게 말했다. “햇빛에 내놓은 치즈 덩어리 같네.”
루시 언니가 일어섰다. 뺨에 눈물이 흘렀다.
나는 재빨리 태블릿을 도로테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잔인하게 행동하면 어른이 된 것 같지? 그렇지만 유치한 게 더 드러날 뿐이야.]
도로테가 내 태블릿을 뺏으려 했다. 나는 태블릿을 꽉 쥐었다.
루시 언니가 도로테와 나 사이에 서서 말했다. “그만해.”
잔혹이들 중 한 명이 휴대폰 카메라로 루시 언니를 찍었다.
도로테가 말했다. “그 사진, 지금 당장 페이스북에 올려! 수영복 입은 저 못생긴 모습을 세상에 알리자!”
루시 언니가 갑자기 도로테의 수영복을 잡더니 휙 돌려서 수영장에 내던졌다. 그리고 탈의실 쪽으로 달려갔다.
도로테는 수영장에서 빠져나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나를 가리켰다.
“저 태블릿 부숴 버려!”
도로테가 잔혹이들에게 소리쳤지만, 나는 벌써 루시 언니를 뒤쫓아서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