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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4374409
· 쪽수 : 36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노인이 의사에게 물었다.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까?”
의사는 질문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되물었다.
“무슨 뜻이죠?”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극심한 피로감 탓인 듯 갑자기 감상에 젖은 의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여인이 있습니다.”
“여인이라면?”
“내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단 하나의 여인이죠.”
그 순간 문명세계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엄숙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흘렀다.
노인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여인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30년 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노인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어갔다. 선반 대용으로 쓰는 판자 위에 말린 해마, 인삼, 포르말린에 담긴 독사 따위가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한참 동안 선반을 뒤지던 노인이 자그마한 병 하나를 찾아내 손에 들었다. 노인이 의사에게 다가와 병을 건넸다. 병에는 황금색 알약 열 개가 들어있었다.
엘리엇은 당혹감을 금치 못하며 노신사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야말로 놀라울 만큼 아버지와 흡사한 얼굴이었다. 전체적인 얼굴 형태뿐만 아니라 집안 내력인 보조개까지 파여 있었다.
‘아버지일까? 아니야, 정신 차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 병원에서 시신을 입관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잖아.’
엘리엇이 가까이 다가서자 노신사가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역시 엘리엇만큼이나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엘리엇?”
‘아니, 이 노신사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게다가 이 목소리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지낸 적이 없다고 한다면 대단히 완곡한 표현이었다. 엘리엇은 아버지에게 자주 맞고 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애쓰지 않은 걸 후회했다.
엘리엇은 아연실색했고, 감정이 북받치며 목이 메어왔다.
“아버지?”
“난 자네 아버지가 아니야.”
당연한 답변을 듣고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누구시죠?”
노신사가 엘리엇의 어깨에 손을 얹어놓았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엘리엇, 나는 바로 자네야.”
엘리엇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화석처럼 몸이 굳었다.
“나는 틀림없이 자네야. 30년 후의 모습.”
일리나는 수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했다. 그녀는 오션월드에 상주하는 수의사였고, 동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었다. 수족관 관리, 식사 준비와 감독, 조련사 훈련에도 관여했다. 오션월드에서 그녀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의 나이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빠른 승진은 전심전력을 다한 결과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바다에 매료되었고, 그중에서도 고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일리나는 대학에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하며 동물심리와 관련해 심도 있는 교육을 받았고, 수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녀의 전공 분야는 사실 취업 기회가 매우 적은 편이었고, 전망도 어두웠다. 돌고래나 범고래와 같이 일할 기회를 잡는다는 건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일리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1971년에 월트디즈니사에서 올랜도에 디즈니월드를 건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디즈니월드가 생기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 덕분에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올랜도는 일약 플로리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했다. 월트디즈니사는 뒤이어 마이애미에 미국 최대의 동물원인 오션월드를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