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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88984986640
· 쪽수 : 122쪽
· 출판일 : 2007-03-0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꽃
바다
바위
소나무
숲
오름
에필로그
책속에서
오름을 바라보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오름을 걷고 싶어진다. 흰뱀눈나비 한 마리를 데리고 깜장 고무신이나 하얀 고무신을 신고 느릿느릿 오르내리다 아무데나 주저앉으면 그만이다. 높이가 이백 미터 안팎인 오름을 바라볼 때, 내 발이 허락하는 것은 맨발 아니면 고무신이었다. 고무신을 신을 때 발바닥의 감촉은 관능적이다. 하나으 질료로 만들어진 단순성과 복잡한 이음새가 없는 고무신은 나름대로 근대의 산물일 수 있겠지만,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다른 현대적인 부산물에 비하면 오름과 잘 맞는다.
지금은 농촌의 촌부나 출가한 수행승 혹은 개성 있는 삶을 사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고무신을 신지만, 오름에 가면 수행승들이 고무신을 신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언젠가 비구니 도량인 동화사 댓돌 위에 나란히 놓인 하얀 고무신을 바라볼 때의 감회가 겹친다. 저마다 귀엽고 예쁜 표식을 해둔 하얀 고무신들 위로 따사롭게 내린 햇살. 그 살강스러운 느낌으로 오름의 살빛은 떠오른다. 오, 쌉싸래한 햇빛! 오름에 걸쳐지는 햇빛은 구부려 모아둔 듯 부드럽고 그 맛이 가볍고 깊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만 알 수 있으리. 외로워야 오름에 갈 수 있고, 오를 수 있다는 것. 오름 위에는 살살 햇빛 얹혀가는 밭담 가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세찬 바람이 있다. 끓는 불기둥을 뽑아 올린 험악한 상흔, 분화구도 기다리고 있다.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이 분화구 속으로, 오름 뒤의 또 다른 오름의 분화구 속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는 겨울이 있다. 때론 늦은 봄날, 오도 가도 못하게 회오리안개가 눈앞을 막아선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다. - 본문 106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