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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서양음악(클래식)
· ISBN : 9788986377439
· 쪽수 : 780쪽
· 출판일 : 2011-12-20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에 부쳐
머리말
1 백파이프와 클라리넷 ― 옛 ‘카펠레’와 새로운 ‘오케스트라’
2 스트레스와 꽃다발 ― 오케스트라 음악가가 겪는 어려움
3 음악과 돈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진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닐 수도 있다?
4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 ‘엘베 강의 피렌체’에 둥지를 튼 ‘기적의 하프’
5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작은 파리’에 깃든 진정한 기쁨
6 베를린 필하모닉 ― Zukunft@BPhil
7 뮌헨 필하모닉 ― 브루크너는 우리의 운명!
8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 DIAS, RIAS, SFB, RSO, DSO, RBB……
9 바이에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 전통과 개방 사이에서
10 빈 필하모닉 ― “최고의 음악을 최고의 방식으로 연주하다”
11 빈 심포니 ― 영원한 2인자?
12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 세상에 명함을 뿌리다
13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 왕의 위엄을 갖춘 콘서트하우스
14 파리 오케스트라 ― 많이 칭찬받고 많이 혼나다
15 할레 오케스트라 ― “사랑과 경탄을 담아……”
16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17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18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자기(磁氣) 녹음기로 녹음한 최초의 오케스트라
19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매니저와 연주자들, 그리고 마하라자의 힘으로
20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비첨의 막둥이 오케스트라
21 체코 필하모닉 ― 음악과 정치
22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강철같이 단단하면서 섬세한 오케스트라
23 모스크바 라디오 차이콥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 제2의 여단
24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스베틀라노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 웅장하고 빛나는 오케스트라
25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100가지의 다양한 악센트가 가능한 오케스트라
26 뉴욕 필하모닉 ― 넘치는 자신감
27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 유럽 전통에 깊이 젖은 미국 오케스트라
28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정확함과 유연함
29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 필라델피아 사운드
30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 도전을 찾아 나선 완벽주의자
31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 별밤의 교향곡
32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 원로 거장의 오케스트라
옮긴이 후기
오케스트라 주소 및 홈페이지
참고문헌
도판 출처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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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멘델스존은 처음부터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다. 오케스트라에서 쳄발로를 치워버렸고, 음악감독과 악장으로 분리된 지휘 체계를 하나로 통일했다. 그리고 지휘할 때 손에 지휘봉을 들었다. 이미 베를린에서는 카펠마이스터 라이하르트가 지휘봉을 들었고, 드레스덴에서는 베버가 1817년부터 지휘봉을 사용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멘델스존이 이끄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명성은 높아져갔고, 시의회는 1840년에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시 오케스트라’로 선포한다. 이로써 단원들은 시의 음악회장, 오페라극장, 교회에서 봉사할 의무를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멘델스존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현실화한다. 라이프치히 컨서버토리를 창설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음악회는 실제적인 수업의 장이었고,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은 바로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는 이상적인 순환 구조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선출할 때와는 달리, 어떤 전통을 계승할 것인지, 음악적으로 어떤 부분을 강화할 것인지를 우선순위에 놓고 심사숙고했다. 언론에는 에사-페카 살로넨, 잉고 메츠마허, 크리스티안 틸레만, 마리스 얀손스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일각에서는 바렌보임의 시대가 올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이먼 래틀이 1999년 6월에 베를린 무대에 선 이후로 상황은 달라졌다. 그때가 래틀의 베를린 데뷔 무대는 아니었다. 이미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슬픔의 성모>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알렐루야> 등의 작품으로 몇 차례 베를린 필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었다. 『가디언』지의 말마따나 “현존하는 영국 최고의 지휘자” 래틀은 1999년 6월 23일에 아바도의 후계자로 “확실히 도장을 찍었다.”
2002년 가을, 베를린 전역이 “사이먼 경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포스터로 뒤덮였다. “다른 지휘자들이 불필요하다고 구석에 던져버리는” 총보를 애용한다고 고백한 래틀은 이제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참이었다. 그는 음악은 질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슈토크하우젠의 <그룹>과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유명한 작곡가의 대작”이라고 칭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은 고전적인 레퍼토리에 소홀했던 것 같다”는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베를린 청중에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하이든 음악을 선사했다.
빈 필하모닉은 제국의 선전선동 사업에 베를린 필하모닉보다도 더 많이 동원되었다. 우체국과 공장의 ‘휴식 시간 음악회’에서 연주해야 했고, 전당대회와 각종 기념행사에 불려 다녔으며, 문화 선전 조직인 ‘기쁨을 통해 얻는 힘’, 히틀러 청소년단, 군대, 부상병들을 위해 연주해야 했다. 또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와 함께 나치당에 충성하는 오케스트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여하도록 명령을 받았으며, 오버잘츠베르크의 나치 친위대 앞에서 연주하고 점령 지역들도 돌아다녔다.
전쟁으로 오페라극장이 문을 닫게 되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라디오 방송과 영화를 위한 음악 활동에 매진해야 했다. 소련군이 막 빈으로 진군해 들어올 무렵인 1945년 4월 2일에 빈 필하모닉은 크라우스의 지휘로 음악회를 열었다. 곧 무지크페어아인 건물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고 ‘빈 필하모닉 자위대’가 꾸려졌으며, 무지크페어아인은 그들의 병영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건물이 폭탄에 맞아 파괴되고, 자위대는 서쪽으로 후퇴했다. 잠시 부르크 극장에 머물렀지만 그마저 나치 친위대에게 내주어야 했고, 음악가들은 티퍼그라벤 4번지에 있는 어떤 집의 지하실에 머물렀다. 다행히 제1바이올린 주자 프리츠 제들라크가 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에서 장교였고,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여 러시아어를 완벽히 구사한 탓에 위험한 상황에서 필하모닉을 여러 차례 구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