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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89449713
· 쪽수 : 416쪽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제1부
제1장 내 삶의 뿌리
제2장 운명, 그리고 시
제3장 마로니에 그늘 아래서
제4장 터널의 끝
제5장 매화 필 무렵 _ 88
제2부
제6장 문학 동네 입주 신고
제7장 나와 시인협회
제8장 시간의 쪽배
제9장 벼랑의 꿈
제10장 생의 한가운데서
제3부
제11장 문학과 저항
제12장 그래도 아름다웠던
제13장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14장 이런 일 저런 일
제15장 진실의 벽
제4부
제16장 겨울에도 피는 꽃
제17장 어느 푸르른 날에
제18장 외국어로 읽힌 나의 시
제19장 당신들이 계셨음으로
제20장 아름다운 인연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책의 기록은 한 다난한 시대를 평생 학자와 시인이라는 두 길로 걸었던 어떤 허무주의자의 작은 발자국들이라 할 수 있다. 큰 파도가 휩쓸면 덧없이 스러질 바닷가 모래밭의 작은 발자국들…… 그리될 줄 알면서도 나는 기록을 남긴다. 인생이란 어차피 아이러니 아니겠는가?
(‘책을 펴내며’ 중에서)
집을 나선 내가 이 뜨락을 거쳐 양철 대문을 밀치고 막 밖으로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월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군, 이것 좀 보고 가거래이.”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화를 내면서 방을 뛰쳐나온 나를 설마 선생께서 대문까지 뒤따라와 바래다주시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띠고 계셨다. 나는 무심히 선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 거기에는 마른 매화나무 가지에 꽃봉오리들이 송이송이 맺혀 있지 않은가. 매화는 활짝 핀 꽃보다 막 벙글어지려 하는 그 꽃봉오리가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5장 ‘매화 필 무렵’ 중에서)
나는 문단권력의 ‘왕따’이다. 그러나 왕따를 사랑한다. ……생각해보라. 홀로 되지 않고, 무리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고, 시류나 유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해관계나 권력의 구속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상태가 되지 않고 어찌 진정한 창작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좋은 의미에서 왕따의 존재가 그러하다. 그는 홀로 있으며, 누구에게도 구속되어 있지 않으며, 항상 자신을 성찰하며, 어떤 이해관계에서도 빚을 진 바가 없어 어디를 가나 당당한 자를 일컬음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창작의 자유를 염원하는 자, 창작에 자신감이 있는 자라면 패거리 짓기, 모방하기, 뒷북치기를 그만두고 홀로 서 있어야 한다. 좋은 뜻의 왕따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소위 ‘문지파’나 ‘창비파’의 계보에 소속되어 그들 집단에 복무하지 않고 지금까지 홀로 서 왔던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내 문학 생애의 축복이었을지 모른다.
(16장 ‘겨울에도 피는 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