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시론
· ISBN : 9788990024930
· 쪽수 : 516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한국 현대시 100년 (8)
노자시화 1. 시, “미의 기적” (31)
노자시화 2. 변신 이야기 (50)
노자시화 3. 붕새는 어디로 날아가나 (67)
노자시화 4. 돼지머리는 왜 키득키득 웃는가 (89)
노자시화 5. 고양이들의 계보학 (114)
노자시화 6. 거울과 유리창 (135)
노자시화 7. 곡신, 검고 위대한 암컷 (169)
노자시화 8. 사춘기와 오후 세 시 (189)
노자시화 9. 치워라, 그늘! (208)
노자시화 10.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238)
노자시화 11.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252)
노자시화 12. 바둑과 시 (280)
노자시화 13. 집을 즐거워하라 (308)
노자시화 14. 헐벗은 아이의 노래 (323)
노자시화 15.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라 (342)
노자시화 16. 그것을 힐끗 보는 순간 (394)
노자시화 17. 탈을 쓰고 탈끼리 놀다 (406)
노자시화 18. 천상병에게 장미꽃을 (425)
노자시화 19. 붉은빛에서 흰빛으로 (443)
노자시화 20. 여성과 시 (454)
나오며: 모든 병든 개와 모든 풋내기가 그러하듯 (497)
찾아보기 (504)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식·관념, 그 의미작용의 피상성은 회색빛이다. 그러나 생명의 나무는 영원히 푸르다(괴테). 시인의 상상력은 지식과 관념에서가 아니라 영원히 푸른 생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의 살아 있음은 거대한 알지 못함의 영역에 기대고 있다. - 213쪽 중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삶의 가능성들을 고갈시키는 정치 독재의 억압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황폐화시키는 기술문명의 야만성에 대해 소모적인 허무주의나 냉소주의적 비판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으나, [시인]들은 그 위험성을 불행한 삶과 의식을 감싸 안는 긍정과 화해의 에너지로 변환하는 데 성공한다. - 351쪽 중에서
현대에 들어와서도 바둑은 아동들에게나 성인에게 다양한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두루 공익적 효용론을 입증해낸다고 해서 바둑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바둑의 본질이 한량들의 놀이다. 바둑이 한량들을 꾀는 것은 비억압적 쾌락을 주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근육을 쓰지 않는 운동, 목청 없이 부르는 노래, 삽입이 일어나지 않는 성교다. 바둑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침대에서 동침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바둑과 성교의 공통점은 관계의 내밀함 속에서 모든 외부자와 계를 배제하고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바둑이 세계를 극단적으로 배제한다는 사실은 ‘신선놀음(바둑)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오래된 속담이 증거한다. 바둑은 음경陰莖과 질膣이 관여하지 않는 동침이며, 두 대국자가 내연관계 속에서 외부자들을 배제한 채 노동의 기회들을 끝없이 유예/지연시키며 비억압적 놀이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긴 밀월여행이다. 대국자들이 얻으려는 것은 마음의 평정과 조화, 무상의 기쁨이다.
바둑은 외면적으로 보자면 돌들의 순차적 산포散布 행위다. 돌들은 뿌려지되 축적된 지식과 정보의 총합에서 길어낸 선형적 질서를 따른다. 그것을 정석이라고 하는데, 정석을 따르는 것은 전사轉寫의 원리에 귀속시키는 행위다. 정본이 수없이 많은 사본을 낳듯 정석은 반상에서 수없이 반복하고 순환한다. 후행자가 선행자의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수는 사본을 본 뒤 그것을 찢는다. 왜? 스스로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본은 언제나 동일한 것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창의성을 배제한다. 지도는 항상 다른 입구를 찾는다. 바둑은 많은 입구를 가진 쥐 굴이며, 리좀이다. - 287~288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