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Ⅰ

비극을 노래하다
꽃과 여배우의 관계
어느 왕조의 숲
오랜만에 비
잎새 뒤에 슬어놓은 알들을 깨우다
이런 날이면
보름
어느 휴일에
어둔 밤 숲으로 들어가려면
콩과 어머니
쓸쓸한 풍경 하나
두 부류의 노동
매일 복제되는 어머니
비겁한 소방관
그 아뜩한 거리
무너진 절에 대하여 유추하다
시시한 영화
눈물 샘을 찾아서
12월, 어딘가에
밤새 못질하는 사내들
말 걸기

Ⅱ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치매에 걸린 강아지
알 낳는 자라
지독한 복서
밤길을 가다가 문득
마지막 잠
그 날 이후
저공으로 날아가는 밤비행기
60년대 흑백영화를 보다 1
60년대 흑백영화를 보다 2
60년대 흑백영화를 보다 3
지붕 위에 벌때들
이제야 편안하리
오후 2시의 항변
빈 가방을 둘러메고
뻐꾸기도 이건 아마 모를 거다
새벽 한 시의 제단
지독한 사랑
어떤 흥정
봄은 가다

Ⅲ

유행성 독감
뻐꾸기를 울려야 하네
꽃게에 대하여
폭포 앞에서
과거는 아무것도 흘러가는 물이 되지 않았다
풀이 돋는 자궁(子宮)
울프에게
저물녘의 새는
오리무중의 안개
가을 그 깊은 곳으로
퓨즈가 나간 숲
봄의 퍼즐
눈뜨는 아침
달랜다는 건 무엇이거나
밤기차
품
빈집
비가 와야 하는 이유
혼잣말이 두렵다
그녀에게 쓰는 편지
권태로부터 오는 아침

[해설] 추억을 마주하는 방식, 뽀송뽀송함에 대하여 / 문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