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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88990492548
· 쪽수 : 184쪽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 추수가 끝나지 않은 황금 들판을 남겨두고 / 서태영
1. 사훈 '정밀세공·책임완수' - 세공사 김광주 씨
글 박영희 l 사진 조성기
2. 빵은 소녀를 닮았다 - 제과제빵사 이학철 씨
글 박영희 l 사진 강제욱
3. 그는 바다로 출근한다 - 선박 수리공 황일천 씨
글 박영희 l 사진 안성용
4. 가위질 반세기 - 이발사 문동식 씨
글 박영희 l 사진 안중훈
5. 밀리미터(mm)와 싸우는 철구조물 제작 - 철구조물 제작사 김기용 씨
글 박영희 l 사진 정윤제
6. 자전거 빵꾸 때우는 거? 맹장수술하고 비슷해 - 자전거 수리공 임병원 씨
글 박영희 l 사진 장석주
닫는 글 : 소수적 삶의 역설과 긴장 / 진명석
작가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는 바다로 출근한다.
구룡포여중.고를 지나 해안도로로 막 접어들면 제법 가파른 언덕 아래에 그의 일터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낭만의 안개가 한 올 한 올 옷을 벗은 뒤면 그의 작업장은 그만 삭막해지고 만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는 몸을 피할 그늘 한점 없고, 눈보라치는 겨울이면 허허벌판 난장에 몸을 드러낸 채 짭짤한 해풍을 맞아가며 일하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벌써 오래 전이다. 서당에서 몇 자 깨치다가 글공부와 담을 쌓은 그는 목선(木船) 만드는 곳을 기웃거렸다. 항구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었다. 사는 게 어렵던 시절이라서 부모들은 "어짜든둥 똑 부러진 기술 하나는 배워야 배곯지 않고 산다"며 배 만드는 공장으로 어린 자식의 등을 떠밀었는데 개중에는 도시락을 챙겨 보내는 억척스런 부모도 몇 있었다. 입 하나라도 덜어야 할 판이었고, 어떻게든 그곳에 취직해서 제 앞가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 연장가는 일에 이어 그는 톱질과 대패질도 익혔다. 재수 좋은 날은 직접 도면을 그리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내려가는 길 없이, 올라가는 길만 남은 그는 4부로 올라섰고 그의 승승가도가 멈춘 건 5부에서였다. "고부(5부)를 올라서야 기술자 소리를 듣는데 이때가 가장 지겨운 기라. 같은 기술자라도 장가든 놈부터 고부로 올려줬다 아이가. 지금 와 생각해보니까네 얼느들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처자식이 있는 놈부터 먼저 승진시켜야 세상 도리가 아니겄나?"
- '그는 바다로 출근한다 : 선박 수리공 황일천 씨' 중에서
"견적서를 올리면 칠십 퍼센트는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이 일은 밀리미터(mm)와의 싸움입니다. 도면과 실체가 딱 맞아떨어져야 아귀도 잘 맞습니다. 절단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절단하는 과정에서 오차가 생겼을 경우 그 작업은 이미 죽 쒔다고 보면 됩니다. 그야말로 절단이 난 셈이지요."
그런데 왜일까.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는 그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자신의 두 손을 보고 있으면 감정이 더욱 복잡해진다고 했다.
"이미 창작을 경험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원청으로부터 작업주문을 받으면 알 수 없는 희비가 엇갈립니다. 그림쟁이란 누군가 요구하고 주문한 것에 맞춰 그리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창작해 내놓은 작품을 다른 사람이 구입하는 절차를 거치잖습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하는 작품 대신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공기를 맞춰야 한다.
- '밀리미터(mm)와 싸우는 철구조물 제작 : 철구조물 제작사 김기용 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