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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1428119
· 쪽수 : 260쪽
책 소개
목차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우리는 똑같은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이사유감1/이사유감2/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Pierre Gardin?/당신의 뜻대로 키우소서/꿈꾸던 날의 우상/우리들의 죄의식/핼리 혜성 이야기/고향이라는 허물
사라져가는 말들
달리기/독본교육은 할 수 없는가?/해리 골든의 수필집/김명인 시낭송회/젊은 날의 노오트/기억의 인간성/헌 책 이야기/정리정돈의 철학/성숙의 논리/사라져가는 말들/돈 쓰기의 미학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
윤 하사와 당앙/가장 무서운 사람/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일하는 것을 먼저 하고 그 결과는 나중으로 하라/신화의 탄생과 죽음/서정주 선생에 대한 생각/위대한 인물은 어떻게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가?/비판적 인식을 넘어서/객관적 시각에 대하여/우리나라 사학의 현주소/믿음이라는 말의 진폭/통일은 서로 눈치 보고 간섭하는 것이다
고요한 시간
고요한 시간/음악은 흐른다/누나, 그 구원의 여인상/이성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사랑의 변증법/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상대와 결혼하시겠어요?/책 앞에서/병과 의료 그리고 건강/취중대오/역사를 넘어서/‘그것’이라 불리는 세계/중용의 길
저자소개
책속에서
“선생님은…… 고생을 해보신 적이 없지요?”
어느 낯선 곳에서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그 아이가 아직도 그 말의 한스런 여운 속에 잠겨 있지는 않을까?
저는 고생을 했어요. 이 어린 나이에 저는 고생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몰라요. 선생님은 고생을 해보신 적이 없지요? 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계시지요? 그래서 그런 단호한 답장을 보내셨지요? 굳게 잠긴 유리문과 그 유리문 안의 괴괴하던 어둠은 이제 그 모습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추상이 되고 말았다.
J의 그 초롱초롱하던 눈빛과 성장을 하고 여인의 모습으로 환하게 다가오던 그 가을날의 모습과 흐릿한 불빛 아래 전기부품들을 꿰어맞추던 어린 손놀림과 혹은 붉은 잔을 엎지르고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모습,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을 향한 나의 온갖 기억과 상상까지를 하나의 소용돌이로 휩쓸어가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아이가 느닷없이 ‘뒤안’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에 무슨 상처처럼 남아 있다. 그것은 단절의 상처다. 내가 아이에게로 갈 수 없고, 아이가 나에게로 올 수 없는 그 단절은 시대의 상처이기도 하다. 한옥의 구조만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그 뒤안의 고요, 회벽에 서걱이던 마른 시래기 타래, 긴 행렬을 이루던 개미떼들, 사금파리와 녹슨 못을 달구던 여름날의 뙤약볕, 엉성한 판자 담에 무성히 기어오른 나팔꽃넝쿨, 혹은 시린 겨울날의 늘어선 고드름이나 그 끝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지던 차갑고 맑은 물방울 같은 것들은 이제 그 숱한 생멸과 변화와 속도와 그 속도의 피상에 가려 영원히 소통될 수 없는 단절의 세계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는 것을 위해 한 개인은 그의 내면에서 일탈이 주는 위협과 싸우고 때로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소외와 싸워야 하기도 한다. 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자라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삶에는 이런 신비스런 장치가 있고 그런 것을 발견해 갈 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