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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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 브람마의 아들.
창조주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이 병과 죽음,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가슴에 연민이 생겨 살아 있는 존재들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길을 놓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순례지들과 금욕, 순결, 진실, 올바른 행위와 같은 숭고한 덕목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것들은 고통으로부터의 일시적 위안만 되었을 뿐, 슬픔으로부터의 궁극적 자유는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숙고한 후, 창조자는 나를 존재케 했습니다. 그는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겨 내 가슴 위로 무지의 장막을 쳤습니다. 즉시 나는 내 정체와 자기 본성을 망각했습니다. 나는 비참했습니다. 나의 내 아버지이며 창조주인 브람마에게 이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비탄이 빠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나태와 게으름 속에 있었습니다.
간청에 대한 응답으로, 나의 아버지는 참된 지식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참된 지식은 나에게 처져 있던 무지의 장막을 즉시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창조주가 내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큰 기쁨을 가지게끔 나는 지식을 가렸다가 다시 보여 주었다. 그런 다음에야 너는 무지한 존재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라마여! 이 지식을 가진 채 나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창조의 끝까지 여기에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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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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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포항이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마음의 행복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윗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을 만나면 그것이 충족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다.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제주도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주로 서귀포에서 살았다.
자유로운 생활은 했지만 찾고자 했던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모한 생활을 시도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서 장터의 상인이 되고자 하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너무나 놀랍게도 대학의 친구가 제주시 삼도동의 나의 주소지로 찾아왔다.
그는 제주시의 나의 주소를 모른다. 어떻게 물어 찾아왔다.
“지도교수님께서 오라신다.”
너무나 고마운 두 분이다.
특히 나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은인이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다.
몇 년 뒤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
“산과 들에 있지요.”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어느 산 어느 들 말입니까?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알란디로 가세요.”
알란디의 숙소의 관리인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지하의 서고로 안내되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나에게 내밀었다.
갸네쉬바리 성자가 쓴 바가바드 기타였다.
처음으로 바가바드 기타와 마주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배웠다.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묘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윗입술 위에 집중했다.
전적으로 집중하자 명상하는 자가 사라지고
그곳의 세포가 살아 움직였다.
숨을 내쉬자 세포가 산 같이 커졌다.
들이쉬자 산이 없어졌다.
이 신기한 현상에 온통 몰입되었다.
그때는 오전이었다.
오후 명상 시간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자마자 곧
거대한 산이 있다가 없다가 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상자는 사라졌다.
광활한 빛의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엑스터시의 바다에 빠졌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곳의 성자분께 달려가 물었다.
“그것은 사마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면 이 경험을 한다고 알고 곧 잊어버렸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구루와 한 무리의 제자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진리에 이른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파파지를 만나러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에 계시 든 분이 사라졌다.
방이 사라졌다.
질문하고 있던 본인이 사라졌다.
이 현상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 같은 것만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이 현상계에 돌아오자
방이 보였다.
앞에 스승님이 보이셨다.
질문하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붓다라는 말은 자신의 바탕을 안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나 붓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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