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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91799721
· 쪽수 : 528쪽
· 출판일 : 2012-05-11
책 소개
목차
■ 머리말
■ 길잡이말
예수와 바울로
바울로와 그리스도교
예수의 영성신앙
예수와 영지주의
영성신앙의 보고인 요한복음
1장 요한복음 1장
참삶은 온통이요, 참나인 하느님을 찾는 것
하느님은 말씀으로 계신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독생자란 하느님의 외아들이란 뜻이 아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의 스승인가?
예수는 메시아도 랍비도 아니었다
예수를 좇으려고 모여든 아름다운 사람들
2장 요한복음 2장
맹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게 기적인가?
예수가 분연히 성전 정화에 나섰다
성전을 헐면 사흘 안에 짓겠다
예수는 핏줄의 오라를 끊은 자유인이다
예수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안다
3장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았다
사람의 아들[人子]은 얼나이다
4장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허물다
5장 요한복음 5장
베짜타 못에서 38년 기다린 환자
얼나를 깨달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6장 요한복음 6장
5병 2어로 5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다?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
내 살 먹고 내 피 마셔라
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사온데 어디로 가나?
7장 요한복음 7장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는가?
8장 요한복음 8장
너의 죄를 묻던 이들은 다 어디 있는가?
너희는 아래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나는 아브라함 나기 전부터 있었다
9장 요한복음 9장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10장 요한복음 10장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11장 요한복음 11장
부활한 생명인 얼나는 죽지 않는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하였다
이대로 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는다
12장 요한복음 12장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가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다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해야 한다
하느님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이다
13장 요한복음 13장
온 몸은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14장 요한복음 14장
너희는 근심도 말고 두려워 말라
너희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된다
그이는 진리의 성령이시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준다
내가 떠나갔다가 다시 온다
15장 요한복음 15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16장 요한복음 16장
사람들은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낼 거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 홀로 걸어가리라
17장 요한복음 17장
영원한 생명은 보내신 이를 아는 것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세상은 아버지를 모르나 나는 안다
18장 요한복음 18장
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갔다
그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19장 요한복음 19장
님은 어찌 그렇게도 빨리 돌아갔나?
빌라도가 예수에게 베푼 어쭙잖은 호의
20장 요한복음 20·21장
예수의 주검이 다시 살아났다니?
토마가 외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자소개
책속에서
육체 부활 신앙, 대속 신앙은 예수의 것이 아니다!
예수는 원죄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죄가 있다면 유전인자(DNA)로 유전되는 짐승의 본능인 탐(貪), 진(瞋), 치(痴)의 수욕(獸慾)이다. 그것은 스스로 얼나로 솟날 때 다스려지는 것이지(요한 17:2) 제물을 바쳐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로의 대속 이론은 무의미할 뿐이다. 어찌 예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예수는 바울로처럼 제도 교회를 세운 적이 없다. 자기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준 자유로운 도량(교육장)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바울로는 많은 교회를 세웠다. 장로니 집사를 둔 것도 바울로다. 바울로는 입만 열었다 하면 교회다. 고린토서에만 교회라는 말이 29번이나 나온다. 바울로야말로 교회 지상주의자라 하겠다. 이 땅에 교회가 필요하지만 섬김과 사랑의 교회라야지 억압하고 증오하는 교회는 백해무익할 뿐이다.
예수님과 부처님 중에 누가 더 참된가요?
서울 종로 YMCA 연경반 류영모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러 나오던 서울법대생 주규식이라는 이가 있었다. 하루는 주규식이 류영모에게 물었다. “선생님, 예수님과 부처님 두 분 중에서 누가 더 참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류영모가 대답하기를 “예수님과 부처님 두 분 중에 누가 더 참을 가졌는지는 나는 모른다. 비교할 일이 있으면 모르지만 비교해선 안 된다. 그건 절대자 하느님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류영모, 《다석어록》)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경쟁하는 진성(瞋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경쟁하고 비교하기를 즐긴다. 실력이 비등한 이들이 있으면 꼭 경쟁을 붙여 우열을 가려야 시원해한다. 사람들은 그런 데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예수와 세례자 요한이 동시대에 태어나 서로 만나게 된 것만 해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둘 중에 누가 더 참된지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비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강박신경증이라도 가진 것 같다. 예수는 예수이고, 요한은 요한이다.
예수는 메시아도 랍비도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란 이스라엘의 나라를 재건하여 다윗이나 솔로몬보다도 월등한 힘으로 주변 국가를 멸망시킬 정치적인 영웅이다. 랍비는 유대 종교의 권위 있는 스승으로서 정신적인 지도자이다. 그러나 그 당시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인 영웅도 아니었고, 종교적인 지도자도 아니었다. 예수는 오로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하려 하였고 하느님 아버지의 생명인 얼(성령)을 받아 하느님 아들이 되는 길을 가르치고자 하였을 뿐이다. 예수가 말하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말한다. 어버이가 낳아준 멸망의 생명인 제나에서 하느님이 낳아주시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솟나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가르침)을 바로 알아듣는 이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