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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2378802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1-05-31
책 소개
목차
여는 글1 _ 어머니의 일기장
여는 글2 _ 나의 글
1부.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우리 무남이
나의 시집살이
그리운 어머니
외갓집에서의 추억
덧없는 인생
*** 우리 가족 이야기 #1
설마 죽기야 하겠냐!
독자들의 편지
어머니의 공익광고
새 냉장고 들여놓던 날
어머니의 요리 일기
2부. 나 홀로 가야 할 길
홀로 두고 가신 님아
나는 늙은 거미다
가슴에 묻어둔 사연
사계절 같은 인생
손짓하는 가을 산
어느 겨울날의 기록
봄노래
*** 우리 가족 이야기 #2
억지 효도
어버이날 선물
봄날의 가족여행
엄마, 아프지 말아요!
젊어서 많이 다녀라
도토리 줍던 날
3부. 모두 내 친구
우리 집 풍경
나의 성격
나의 취미
나의 다짐
약해지는 마음
다 사람 사는 일이라오
외롭게 홀로 앉아
기쁜 기다림은 힘이 된다
*** 우리 가족 이야기 #3
갈 땐 좋고, 올 땐 마음 아픈 길
아, 우째 이런 일이!
자유로우려면 외로움도 견뎌야 한다
버리실 줄 모르는 어머니
화만 냈던 날들
4부. 육남매에게 보내는 편지
잠 못 이루는 밤에 자식들에게
한평생 내가 배운 것들
우리 큰딸
네 사위와 장모
아들 며느리
나의 딸들 이야기
*** 우리 가족 이야기 #4
간장 졸이며, 마음 졸이며
나 살았을 적에
단골 미용실 찾기
명란 두 쪽
배추 심기
5부. 차마 하지 못한 말들
병상의 괴로움
보고 싶은 인성아
사랑스런 나의 손주들
서운했던 날들
나의 다섯 형제들
*** 우리 가족 이야기 #5
떠날 준비하시는 어머니
그 가을의 뜨락
아, 어머니!
지 똥구멍 구리다고 잘라버리랴
엄마, 또 올게요
닫는 글 _ 진달래꽃 필 무렵 가신 어머니
부록 _ 1986년, 어머니의 일기
가계도
리뷰
책속에서
▶어머니 홍영녀의 글 중에서
우리 무남이 죽은 지 50년이 넘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절로 난다. (중략) 우리 시아버님 상 당했을 때는 무남이 난 지 일곱 달 되어서였다. 그때 돈암동 살던 동생 순일이가 장사 치르는 데 무남이 데리고 가면 병 난다고 두고 가랬다. 우유 끓여 먹인다고, 그 비싼 우유까지 사 와서 데리고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어린것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데리고 갔다. 동생이 젖 먹일 시간 있겠냐며 우유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다.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중략) 젖이 퉁퉁 부었어도 먹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애들이 무남이가 우니까 우유를 찬물에 타 먹였다. 그게 탈이 났다. 똥질을 계속했다.
시아버님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앓아누우시게 되었다. 그 경황에 자식을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흉이었다. 약만 사다 먹였는데, 이번엔 시어머님이 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에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다. 애가 배짝 마르고 눈만 퀭했다.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나. 그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다. 그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업고 밭두렁을 걸어가면 등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다. 그러다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 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다. 사흘째 되는 날인가, 풀밭에 애를 뉘여놓고 들여다보며 가여워서 “무남아!” 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것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시집올 때 해온 깨끼 치마를 뜯어서 무남이 입힐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바늘귀를 꿸 수 없어서 서투른 솜씨로 눈이 붓도록 울면서 옷을 다 지었다. 겨우 숨만 걸린 무남이에게 수의를 갈아입히니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드러났다. 얇은 천이라서 하얗고 조그만 몸이 다 비쳐 보였다.
그렇게 안고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첫닭 울 때 숨이 넘어갔다.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어미 가슴을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다.
<우리 무남이> 중에서
············ 20페이지
내 인생은 참 허망하다.
책을 써도 몇 권이 될 시집살이를 살았는데,
나는 자식살이를 한다.
이 나이에도 병든 몸으로 꾸무럭대야 밥을 먹는다.
내가 해 먹는 밥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도 마주하는 이 없는 밥상이 슬프다.
············ 36페이지
나는 늙은 거미다.
내 몸에서는 이제 실을 뽑을 수 없다.
이제는 용기도 없고 힘이 없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아무런 희망이 없고 마음만 서글프다.
죽는 것은 서럽지 않으나 앓는 것이 서럽다.
어서어서 잠든 듯이 가야 할 텐데.
············ 71페이지
창밖에 부는 바람,
죽음의 신음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왔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이 밤,
바람에게 많은 사연을 듣는다.
············ 134페이지
남을 탓하지 마오.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오.
세상살이 근심걱정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아프고 괴로운 일도 사람 사는 일이라오.
············ 138페이지
외롭고 고독할 때는
누구라도 아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도 반갑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반갑다.
구름도 바람도 꽃도 나무도 모두 내 친구다.
············ 139페이지
아름다운 꽃은
인간들의 오욕을 모두 버렸기에 아름답다.
외롭게 홀로 앉은 수행자,
외롭다는 생각마저 버렸기에 자유로웠다.
············ 178페이지
행복이란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아쉽지만
아직은 덜 익어서 내일을 기다리는 것.
▶딸 황안나의 글 중에서
1983년 겨울, 남편이 하던 사업이 망해서 빚만 남게 되었다. 채권자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찾아왔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복도로 불려 나가 별별 수모를 다 겼었다. 다달이 내 월급을 몽땅 다 내놓아도 빚을 갚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주변 어디서도 돈 한 푼 마련할 곳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 (중략) 나도 모르게 발길이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이라야 아버지도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동생들과 어렵게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넋이 다 나가다시피 한 딸을 보신 어머니는 “아이구, 이것아, 정신 차려라. 너 이러다 죽겠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안양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살고 있는 왕고모님을 찾아가 보자며 길을 나섰다.
(중략) 그나마 돈이 마련되었다면 무안함이 덜했을 텐데 고모님 말씀이 “돈에 관한한 고모부가 주관하시기 때문에 고모님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찾아갔는데 부끄럽기 짝이 없고 왜 찾아갔나 싶었다.
잠시 더 앉았다가 그 집 대문을 나섰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어찌 그리 멀던지.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 먼 들길을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던 중에 어머니가 목도리를 풀어서 내 목에 둘러 주시며 말씀하셨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잃지 마라! 넌 이제 괜찮다.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으니 더 이상 나빠질 게 뭐 있겠니.”
(중략) 그 후, 살아가면서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날 눈 속에서 나를 배웅하며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해보는 거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
두 주먹을 쥐고 이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다 보면 새로운 용기가 생겨서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중에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딜 가보게 되지 않으니
신어보지도 않고
또 닦게 된다.
오래전 어머니가 쓰신 일기다. 이 일기를 처음 봤을 때 얼마 나 가슴이 아프고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여행은커녕 생전 어딜 모시고 간 일이 없다.
고무신을 닦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가늠해보니,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너무 가여웠다.
<봄 날의 가족여행> 중에서
새벽녘에 어머니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졸린 눈을 비비고 침대로 가서 어머니를 들여다봤다.
“엄마, 왜 울어요?”
“나 어떡해!”
“뭐가요?”
“나 올해도 안 죽나 봐. 느들 힘들어서 어쩌면 좋아. 이게 뭐야!”
나는 어머니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엄마! 우리들 모두 엄마가 계셔서 너무 좋아요!”
어머니가 도리질을 치셨다.
“엄마, 우리 모두 엄마 사랑해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자꾸 우셔서 마당에서 농익은 감을 따다가 숟가락으로 떠 먹여드렸다.
감을 드시느라고 울음을 멈추신 어머니가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갖다 드려라!”
“엄마, 아버진 돌아가셨잖아요.”
잠시 가만히 계시더니 역정을 내시며 대답하셨다.
“돌아가시긴 뭐가 돌아가셔! 그 인간이 혼자서 얄밉게 빨리 죽었지! 그렇게 빨리 가는 인간이 어딨어?”
원망하는 듯 말씀하셨지만 그 말에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일기장에 이렇게 쓰셨다.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지내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엄마, 또 올게요> 중에서
“난 네가 오기 전날부터 시계를 보며, 모레 이 시간이면 네가 갈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한단다.”
자식이 오기도 전에 갈 시간을 섭섭해하던 어머니.
아, 나는 왜 그렇게 딸 노릇에 서툴렀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쉽고 작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 전화라도 자주 해드렸더라면, 엄마 곁에서 하룻밤만 더 묵었더라면, 엄마와 자주 시장을 보러 갔더라면, 연세는 드셨어도 곱게 꾸미시라고 분첩하나 사드렸더라면…… 그랬다면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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