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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93038248
· 쪽수 : 183쪽
· 출판일 : 2018-04-3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8
1. 학살의 기억
어떻게? … 19
금광굴과 쇠스랑 … 20
황촌리 … 23
솜틀다리 … 25
창자를 부여잡은 여인 … 28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련다 … 29
불에 태운다고… … 31
살인에 익숙한 자들 … 32
그렇게까지! … 34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 36
5.10선거와 학살 … 37
생선 썩은 냄새 … 38
씨를 말려야 속이 시원한가? … 39
9살 어린이를 학살하다 … 41
어린이 학살 … 43
전도부인의 죽음 … 48
아기 울음 … 51
조씨라는 소녀 … 52
불은면 고씨댁 할머니 … 53
우물 속으로 뛰어든 여인 … 55
대한청년회 소속 기독교인들의 경험 … 56
A, B, C와 인천 CIC … 58
이것도 재판인가? … 60
김석영 … 62
2. 피해자와 가해자
엎어진 조각배에 걸린 생명 … 65
만리포 해당화 … 69
형들의 죽음과 어린 청년의 국가 부정 … 71
관찰자로 돌변한 가해자들 … 74
기쁜 마음으로 … 80
늘 오가던 길 … 82
황씨 아줌마의 아픔 … 83
질문을 할 때마다 … 85
원수를 사랑하라 … 87
거룩한 재판관처럼 … 94
지혜로운 증언자의 소망, 화해 … 98
마른 눈물 … 105
간암 환자의 담배 … 107
북 치던 할머니 … 109
교동교회의 풍금 … 113
수장과 화장 (水葬과 火葬) … 114
인천 대한청년단 단장 … 116
김병식처럼 … 117
사찰과 형사 … 118
서산.태안 부역혐의자 학살 장소 … 120
3. 지금 여기, 학살의 문화
종북, 빨갱이, 좌익 … 125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묘비 … 128
김씨 할아버지의 트라우마 … 131
우리에게 심겨진 불신 … 135
죄의식 … 136
이념이 만든 사람 … 139
학살은 과거사인가? … 143
두려움 … 144
기억이 나질 않는다 … 148
태안면 … 150
두 가지 기념 방식 … 152
해군 SIS 1기생의 영웅 만들기 … 154
서북청년회 출신 사찰계 형사 … 156
신념이 만든 사람 … 159
죽음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 161
학살인가 전투인가? … 163
보복학살을 조장한 치안국과 군검경합동수사본부 … 165
분류와 학살 … 171
나오는 말
우리는 학살의 문화로부터 단절되었는가? … 176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나는 실패한 목회자이다.
두 번씩이나 교인들과의 갈등을 겪었고, 두 번 모두 목사직을 그만두었다.
이로 인한 고통은 온전히 나와 가족, 그리고 교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학살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독교와 학살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나의 학살연구는 2003년부터 강화와 교동지역 희생사건을 조사하면서 시작되었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들어가 부역혐의희생사건을 조사하였다.
12월 태안군 모항리를 방문하여 주민들을 만나면서 뾰족한 유리파편이 수 없이 박혀 있는 두터운 장벽을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처가 깊은 곳에 희생자가 많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모항리에 있는 가족묘를 방문하였다.
두 아들이 학살된 지 며칠 후 타살된 50대 어머니의 묘지 앞에 섰다.
1시간여를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도대체 왜 두 아들을 잃은 어미를 죽였을까?
정말 그 이유를 알고 싶었고, 고민 끝에 전수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2008년 2월부터 그해 6월 말까지 태안군과 서산시 팔봉면·지곡면·해미면·고북면 등 12개 읍면을 조사했다. 그러나 육체적 한계로 인지면·음암면·부석면·성연면·대산읍 조사는 하지 못했다.
4개월 동안 4백여 명으로 부터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구술자들은 녹음기만 틀면 하나같이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 놓았다.
어떤 이는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자신이 경험한 학살의 고통을 토해냈다.
가해자들의 정신적 고통도 작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술을 들으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해자 유족과 주민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를 질문했다면 가해자들의 진술 속에는 이에 대한 답을 갖고 있었다.
조사결과 서산·태안에서 최소 2,500여 명의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개전 직후 3백여 명의 국민보도연맹원, 인민군 점령시기 약 350명의 우익인사와 군경가족, 수복 이후 1,865명의 부역혐의자들이 학살되었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서산·태안부역혐의희생사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사건의 존재여부와 사건의 경과, 위원회의 입장을 담은 것에 불과하였다.
정작 중요한 무엇인가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물 속으로 뛰어든 여인*
1950년 가을 강화 온수리 양조장에 구금되어 있던 한 여인이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전쟁 전 두 남자가 이 여인을 좋아했다.
여인은 두 사람 중 한 남자와 결혼하였다.
여인과 결혼을 하지 못한 청년은 한국전쟁 당시 우익 치안대원이 되었다.
그는 여인을 부역혐의자로 체포했다.
여인은 온갖 성고문을 당했다.
견디다 못해 우물로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물에서 건져져 다시 고문을 당했다.
여러 날이 지나서야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모진 삶을 어떻게 살아갔을까?
*각주 : 1950년 수복 이후 강화군 선원면 온수리에서 발생한 사건. 이곳에서 분류된 부역혐의자들 수십 명은 1951년 1월경 우체국과 양조장에 수감되어 있다가 사슬재에서 학살되었다.
우리에게 심겨진 불신*
그는 나를 학살 현장으로 안내했다.
고북면에서 해미 방면 장승고개에 있는 밭, 지서 뒤 구덩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부역혐의자들이 유치되었던 창고와 지서도 안내해 주었다.
지서 앞에 이르러서는 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두려운 사건, 그것은 역시 친구가 친구를 죽인 사건이다.
그의 트라우마였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북면 민간인 학살사건을 목격한 김씨의 증언
1950년 10월 어느 날 고북면 남정리 이씨 할아버지는 집 앞에 있다가 형이 잡혀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형은 집 아래 숙부네 집에서 치안대에게 체포되어 지서로 연행되었다,
1950년 10월 24일 고북면 지서 뒤 구덩이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은 형의 시신을 수습했다.
“나는 우리 형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했는지 알아.
우리 동네 사람이야.”
2008년까지 그들은 한동네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이씨 할아버지에게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었을까?
전쟁과 학살은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신을 심어 놓았다.
그런 사회가 그렇게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각주 : 1950년 10월경 고북면 지서 뒤 웅덩이에서 처형된 이씨 동생의 증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