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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3241785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3-04-22
책 소개
목차
서문 5
I. 경성에서 개성으로
-용산·신촌·수색·능곡·일산·금촌·문산·장단·봉동·개성·토성·여현
임학수, 「경성과 나」 김일엽, 「여인과 서울」 김동인, 「경성 전차」,
김도태, 「지상 수학여행, 경의선편」(1)~(7) 최정희, 「만월대와 선죽교」
토해선(토성~해주)
박태원, 「해서기유」.
장만영, 「천향통신- 백천온천에서」
II. 황해도를 가로질러
-계정·금교·한포·평산·남천·물개·신막·서흥·문무리·흥수·청계·마동·신봉산· 사리원·계동·침촌·황해황주·흑교
박달성, 「황해도에서 얻은 잡동사니」, 『개벽』, 1925년 6월. 염상진, 「서선(西鮮)을 돌아본 인상」, 『개벽』, 1924년 11월. 이상, 「첫번째 방랑」, 『문학사상』, 1976년 7월.
장연선長淵線(사리원~장연)
서항석, 「비경탐승」. 『동아일보』, 1938.8.9~12.
구자균, 「민요와 여인- 황해도 순력기」, 『조선일보』, 1935.8.11~14. 강경애, 「기억에 남은 몽금포」, 『여성』, 1937년 8월.
III. 평양과 대동강의 추억
-중화·역포·대동강·평양·서평양·서포·간리·순안·석암·어파·숙천·만성· 대교·신안주
김억, 「사도(四道) 민요기행」, 『삼천리』, 1938.10. 김동인, 「대동강」, 『매일신보』, 1930.9.6.
최명익, 「칠월의 서경 - 매생이·어죽(魚粥)의 야취(野趣)」, 『여성』, 1940.7. 이효석, 「유경식보(柳京食譜)」, 『여성』, 1939년 6월.
김남천, 「뒷골목 평양잡기첩」, 『조선일보』, 1938.5.28~6.4.
평양탄광선(대동강~승호리~강동)
김계성, 「건축 원료의 석회광 평남의 대부고(大富庫)」, 『동아일보』, 1926.12.25. 이광수, 「강동에 단군릉을 찾아서」, 『수필과 시가』, 영창서관, 1939.
IV.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
-맹중리·영미·운전·고읍·정주·하단·곽산·노하·선천·동림·차련관· 남시·양책·피현·백마·석하·남신의주·신의주
노자영, 「방랑의 하로(夏路)」(8)~(10), 『동아일보』, 1921.8.5~8.8.
김준연, 「부흥의 의기충천한 정주 오산학교를 보고」, 『동아일보』, 1935.10.4~8. 백석, 「소월과 조선생」, 『조선일보』, 1939.5.1.
묘향산인, 「격변 중에 있는 평북지방을 잠깐 보고」, 『개벽』, 1921년 6월. 김억, 「신의주 정취」, 『삼천리』, 1932.3.
부록: 국경너머
나혜석, 「구미 시찰기」(1)~(3), 『동아일보』, 1930.4.3~5. 손기정, 「백림원정기」, 『삼천리』 제9권 제4호, 1937.5.1.
저자소개
책속에서
참고로 당시 승차 삯을 상세히 따져보자면 경기감영서 동대문까지 상등 5전, 하등 3전. 경기감영서 종로까지 상등 2전 5분, 하등 1전 5분. 경기감영서 청량리까지 상등 3전 5분, 하등 1전 5분, 동대문서 청량리까지 상등 5전, 하등 3전 5분.
(김동인, 『매일신보』, 1937.12.28)
이러는 사이에 차는 개성역에 다다랐다. 한 시간 사십 분이면 간다는 길을 두 시간 넘어를 갔건만, 조금도 지리한 줄을 모르겠다. 여행이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것인가 보다. 나는 앞으로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적은 여행이라 도 하리라. 역 앞에 나 서니 어떻게 땅이 질퍽한지 고무신이 물이 넘는다. 진흙물을 흠뻑 뒤집어쓴 버스 한 대와 또 그와 똑같은 자동차 한대가 서 있는데 어지간히 약삭빠르지 못하면 얻어 타기가 어려웠다. 나는 버스도 자동차도 다 못 얻어 타고 보행하기로 했다.
(최정희, 『반도산하』, 삼천리사, 1944.)
【평양지국전화】 동맹 파업 중에 있는 평원 고무공장 직공 삼십여 명은 파업 이래 공장을 점령하고 나가지 아니 하다가 금 29일 오전 1시 경에 평양 서원의 축출로 해산되는 동시에 여직공 한 사람이 을밀대로 올라가서 체공 여덟 시간 여에 경찰에게 붙들려 내려온 사실이 있었다. 을밀대 다락으로 올라간 여직공 강주룡( 姜 周龍 )(30)이라는 바, 공장을 지키고 있다가 경찰에 쫓겨 나오는 길로 사십여 척이나 되는 을밀대 다락으로 올라가서 누구든지 쫓아 올라오면 떨어져 죽는다고 하며 무산자의 단결과 고용주 무리를 타매하는 연설을 하였다고 한다. 오전 1시로부터 8시 40분까지 체공하고 있는 여직공을 경찰에서 아무리 붙들어 내리려도 여의치 못하던 바 경찰서에서는 강력의 서원을 보내어 사닥다리를 놓고 몰래 올라가서 잡아 끼고 내려와서 즉시 평양서에 검속하였다고 한다. 일본 노동쟁의에 굴뚝남과 비하여 평양 노동쟁의의 여직공이 을밀대 다락 위에서 체공을 계속하려던 것은 호대조의 에피소드라고 한다.
(『동아일보』, 193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