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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93460025
· 쪽수 : 443쪽
· 출판일 : 2009-04-28
목차
추천사 | 이순신을 경제전문가로 재조명한 책
프롤로그 | 이순신을 보는 새로운 시각
제1부. 이순신 7년전쟁의 중심에 서다
1장. 7년전쟁의 재구성
01_‘통보된 기습’,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02_‘정보의 빈곤’, 바다를 버린 대가
03_도요토미의 실수, 일본의 착각
04_2단계 전쟁 - 일본, 수륙병진을 시도하다
05_침략군의 비극 “조선 수군을 몰랐다”
2장. 이순신과 한산대첩
01_제법 용맹하나 국량은 부족한 장수, 원균
02_주도면밀한 선비형 무장, 이순신
03_‘조선의 살라미스’ 내량과 한산바다
>> 한산대첩의 숨은 공로자, 김천손
04_한산대첩의 숨겨진 진상’
3장. 원균의 역설’,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취임하다
01_이순신과 원균의 갈등, 불화
02_이순신 함대의 한산도 이진
03_제2차 진주성 전투와 수군통제사직 신설
제2부. 한산수국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다
1장. 한산수국의 ‘건국’- 영역확보와 해변의 대개간
01_경제적 자립의 필요성
02_수군 군정체제 수립 - 수국의 영역을 확보하다
03_둔전책- 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이다
>> 둔전 개간과 조정의 반응
2장. 한산수국의 경제전쟁 - 말업을 키워 전쟁비용을 조달하다
01_‘바다 농사’를 본격화하다
> 물고기 잡이
> 해조류 채취
> 소금을 굽다
02_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서다
>> 유성룡의 중강 개시와 ‘이순신의 대외무역 개설’
03_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다
> 전선건조 박차
> 무기생산 확대
> 종이?의류?가죽 등 민수품 생산
3장. 한산수국 독자행보 3년 6개월
01_강력한 인재풀을 갖추다
> 수군 독자 무과의 실시
> 인재 확보 주력
> 부정?무능한 인재 축출
02_독자적 상벌체제를 확립하다
03_한산수국, ‘조선의 3분의 1’
제3부. 1597년 이순신, 역사의 전면에 서다
1장. 정유재란과 한산수국의 붕괴
01_선조, 이순신을 불신하다
02_조정과 일본군의 ‘이순신 죽이기’ 공모
03_체포당하는 이순신, 한산수국의 몰락
04_백의종군하며 재기를 준비하다
2장. 청해진 옛터에서 수국을 재건하다
01_원균의 몰락과 이순신의 재기
02_‘기적의 싸움’ 명량대첩
03_보화도에 기지를 건설하다
04_‘제2의 수국’ 고금도 군영
3장. 정치적 도약 - 이순신, 대명 수군도독에 제수되다
01_인재들의 운집
02_이순신, 명군의 신망을 얻다
03_이순신, 명나라 수군도독에 오르다
04_대명 수군도독, 이순신의 ‘꿈’
제4부. 이순신은 죽고, 조선은 살아남다
1장. 이순신의 죽음과 수국의 체제 편입
01_이순신 ‘도독’ 제수와 조정의 불안감 증폭
02_머리 좋은 선조의 ‘자객 활용론’
03_수수께끼의 인물 ‘손문욱’
04_홀중비환, ‘문득 날아든 탄환에 맞다’
05_임금의 승리, ‘수국’의 체제 편입
2장. 수국의 계승 - ‘해변의 총독부’ 삼도수군통제영
01_종전 후 최대 논쟁 - 해방 본영의 위치 선정
02_두룡포에 통제영을 건설하다
03_통제사, ‘해상 총독’으로 격상되다
04_‘3만 6,009명의 장졸과 548 함대’의 병권을 쥐다
|책속의 책| 바다를 버린 나라, 조선
01. 포상팔국에서 삼별초까지-한반도 해상왕국의 전설
02. 공도정책과 해금령
03. 기말이반본 - 이데올로기가 된 해변 천시
04. 조선은 왜 대마도를 지키지 못했나?
05. “해변은 2등 백성의 땅”
에필로그 |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의 현재적 의미
리뷰
책속에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지만 조정의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였다. 병사를 모으고 먹이고 입히고, 함대와 무기를 만드는 전쟁 수행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해야만 하였다. 나라에서 물자를 주지 않으면 백성들로부터 빼앗아 군량미와 병장기를 조달하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동양군대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달랐다. 조정의 도움 없이도 완벽한 자급자족 체제를 만들어 대처하였다.
이순신의 비범성과 위대함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전쟁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만 칭송하는 것은 피상적인 평가일 뿐이다. 같은 수군 장수인 원균, 이억기는 물론이고 권율과 곽재우 등 여러 무장들이 7년전쟁을 함께 맞았지만 백성을 살리고 군대를 기르기 위해 ‘산업’을 일으킬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이순신이 남보다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배경은 그가 ‘경제’를 이해하였다는 데 있다.
이순신은 먼저 해변 고을들을 수군 전속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의지가 집행되는 영역을 확보한 다음, 해변의 버려진 땅에 광범위한 둔전屯田을 일구었다. 그리고는 바다와 육지의 산물을 대대적으로 개발하여 막대한 전비를 충당하였다. 수군통제사의 군정체제軍政體制 휘하에는 거대한 농장과 어장, 공작소가 속속 생겨났으며, 이 같은 경제력은 한산도 군영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물적 기반이 되었다. 이순신이 한산도를 중심으로 서?남해 여러 섬들과 해변에 이룩한 ‘군?산?정軍?産?政 복합체제’야말로 하나의 ‘나라[國]’에 비견할만하였다. 가난한 조선 수군이 막강 일본군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경제적 토대는 오롯이 이순신의 땀과 노력, 지혜로 쌓아올린 것이었다. - 113~114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