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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93536690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3-11-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추천사
Ⅰ부_시대정신과 노동운동
함부로 시대정신을 말하는 정치인을 조심하라
절대정신과 자유
사상의 감옥에 갇혀버린 좌파
노동자를 배신한 시대정신
NL과 PD그리고 조합주의의 연합은 어떤 결과를 낳았나?
이재명의 기본소득론은 짝퉁이다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투쟁이 낳은 것은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노동운동
주체사상에서 맡은 ‘폭력’의 냄새
스케이프고트(희생양)가 된 재벌과 민주노총
폭력에 굴복하는 계급은 기생충으로 전락한다
Ⅱ부_정치교체
정치가 실종된 이유
호남정치의 근본문제
호남 차별론에서 탈출해야
두 가지 전략은 실패했다
민주당의 혁신은 불가능?
노선 없는 정치투쟁
제3정치가 실패한 이유
제3당으로 총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안철수와 유승민의 통합이 실패한 이유
예견된 바른미래당의 선거 참패
바른미래당의 침몰과 민생당의 창당
안철수, 손학규의 결렬과 혁신통합신당의 좌절
제3정치를 위한 3당 합당
제3정치가 직면한 근본적 한계
제3정치를 위한 투쟁의 결과
수렁에 빠지는 제3정치
사법부에 의한 제3정치의 종언
중앙선관위원회의 월권
민생당의 파국
처절한 단식농성…
이준석 사태와 수렁에 빠진 국민의힘
끝없는 시련
사법부의 좌파카르텔이 나라를 망친다
Ⅲ부_새로운 시대정신
명백한 역사의 진실 앞에서
좌파동지들! 이제 정말 그만합시다
좌파 나르시시스트와 우파의 플라잉몽키들
시대정신에 배신당한 민주화운동
포스트구조주의와 실용주의의 결합은 의미가 없다
우상을 해체해야 새로운 시대정신이 보인다
김여정의 ‘대한민국’
북한의 일보전진 이보후퇴
주체사상은 인간을 비주체적으로 만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북한의 침략은 실제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파는 좌파와 싸우기 전에 자신과 싸워야
우파와 좌파의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시대정신
보론_내년 총선의 시대정신
기득권비리 청산과 진보적 자유주의 수립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2023년 4월의 어느 날 학생운동을 같이 했던 동아리 친구들을 만났다. 1980년대 격동의 시대 거리에서 같이 돌멩이를 던지던 우리였다. 최근 십여 년 동안 간접적으로 소식들은 서로 듣고 있었지만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날 기회는 갖지 못했었다. 흰머리와 목주름이 좀 늘긴 했지만 별로 변한 게 없었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가 화제가 되자 어색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국은 과도한 표적수사의 피해자였고 이재명에 대한 수사는 정치보복일 뿐이었다. 국민 절반이 윤석열을 지지한 것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말하자면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사태였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같이 밥도 먹기 싫어한다는 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가족끼리도 대화가 어려워졌고 친척들도 가급적 안 만나게 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딱히 없었다.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워 했고 겉도는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다시 보자는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은 허전하고 쓸쓸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어디서 엇갈린 길을 가게 되었을까? 함께 꾸었던 젊은 날의 그 푸르던 꿈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다시 같은 꿈을 꿀 수 있을까?
나는 고려대 4.15유인물 사건으로 1982년 4월 23일 성북경찰서에서 체포되어 1년 실형을 살았다. 그 후 30여 년을 노동운동을 하며 청춘을 보냈다. 2012년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 때 민주노총 간부 오천 명과 함께 진심캠프에 합류하면서 제3정치운동을 추진했었다. 진보와 보수 양극단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삶을 갈아 넣었다. 새로운 정치를 해보겠다고 새정치추진위,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의 당직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민생당비상대책위원장을 하면서 모든 정치적 사건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내가 겪은 일들을 통해서 반드시 같이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그것은 우리를 꿈꾸게 했던 시대정신에 대한 것이고 시대정신에 의해 배신당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내 이야기가 아마도 많이 혼란스럽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 글은 누구를 비난하려고 쓴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비판이다. 또한 이 글은 시대정신이라는 감옥 문을 부수기 위해 오함마를 휘두르는 심정으로 쓴 글이다. 만일 당신이 감옥 문에 바짝 붙어 있다면 조금 떨어져 있으라고 당부한다. 절대로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글을 서두르게 된 직접적 계기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이다. 나는 간첩으로 포섭되었다고 발표된 사람들을 잘 안다. 다 내가 있을 때 민주노총에 채용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시에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활동가들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의 자부심이기도 했던 민주노총은 이제 늙은 어린애가 되어버렸다. 민주노총만 그리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좌파 전체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른 채 방황하고 있다.
얼마 전 작고한 김지하가 자꾸만 떠오른다. 김지하의 五賊(오적)은 내 청춘의 삶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의 굿판을 멈추어라’고 절규했을 때 나는 그가 미웠었다. 아마 김지하는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가족조차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좌우의 시대정신과 맞서야 했던 노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확실히 나는 몹시 사람이 나빠졌소. 그만큼 진보했는지도 모르겠소. 여러 방면으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전혀 상처를 입은 느낌이 들지 않으며, 이제 쓰리지도 가렵지도 않은 거요. 이 이상 어떤 죄상을 추가당하더라도 기가 죽은 일은 없을 것이요. 이것은 많은 오래된 또는 새로운 세상물정을 체험함으로써 겨우 획득한 것이오. 이제는 모든 것을 걱정하는 것은 그만두겠소. 退嬰에서 퇴각할 수 없는 지점까지 물러나서 되받아치기로 녀석들에게 부딪치겠소. 녀석들을 업신여기고 녀석들의 업신여김을 업신여겨 줄 뿐이오. 이쯤에서 편지를 마치겠소. 바다 위는 월색이 교교하고 주면은 반짝반짝 은빛 비늘 같은 물결이 출렁이고 그 바깥쪽은 온통 벽옥의 크고 넓은 바다. 매우 온화한 느낌이오. 이런데서 사람이 빠져죽는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소. 아니 걱정마시길. 이것은 농담. 내가 바다에 뛰어든다고는 생각 마시길 바라오. 그런 기분은 결단코 없으니까. -노신문집 中(중)에서
지배적 시대정신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시대정신을 대체하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더 어렵다. 물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이고 누군가 대신 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태에 책임져야 할 지식인들은 송호근 교수 말대로 대학으로 빨려가서 대학에서 소멸되었다. 민주화운동세대들의 섣부른 청산주의는 미처 청산되었어야 할 과제들을 더 키워놓았고 이제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Ⅰ부는 노동운동을 지배했던 시대정신에 대한 것이다. 지금의 PC주의(정치적 올바름)의 뿌리는 격동의 80년대 운동권 문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운동권 문화의 많은 부분이 노동운동의 치열한 내부정파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이해없이 돌팔이 처방전이 난무한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문제의 뿌리를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실제 겪은 사건들 중심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Ⅱ부는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한 것이다. 좌파와 우파의 정치가 어떻게 망가져갔고 그것을 극복하려던 제3의 정치운동 역시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대한 실패와 좌절의 기록이다. 즉 정치의 실종에 대한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어느 한쪽만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치 않을 것이다. 시대정신에 의한 거대한 가스라이팅이 있었다. 조직적이고 집요한 선전선동의 결과 좌파는 나르시시스트가 되었고 우파는 얼떨결에 플라잉몽키가 되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심리학에는 스케이프고트(scapegoat) 즉 희생양이란 개념이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그것이 좌파에게는 재벌이었고 우파에게는 민주노총이었다. 이 희생양들은 진영논리에 의해 항상 재생산된다.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주적 역시 자칫하면 진영논리의 악순환 속에서 정체성 정치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진영논리를 깨는 것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가 되었다.
Ⅲ부는 바로 우리의 대안에 대한 이야기, 즉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본주의는 버전을 달리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체제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지금은 자본주의 4.0 정도의 체제이지만 곧 5.0 체제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주보프가 말한 대로 감시자본주의라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지, 아니면 유토피아를 만들지는 항상 그렇듯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나는 약간 낙관적으로 바뀐 편이다. 그것은 본문에서 제기하는 4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멀지 않은 시기에 구축될 수 있다는 신념을 전제로 한다. 그 패러다임이란 첫째, 인간과 자연과의 모순을 시대적 과제로 설정, 둘째, 노동가치설을 존재가치설로 전환할 것, 셋째, 경제주체의 공유가치개념 설정, 넷째, 새로운 사회경제적 주체, 즉 본원적 클러스트 구축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다.
이 장의 정치적 맥락은 ‘부정을 통한 정당성 확보’ 논리를 끝내자는 것에 있다. 한국 정치는 좌파와 우파 각자 스스로 사상의 감옥에 갇혀 있고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구조적 신념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정치권력이 그것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변화를 억압하고 있다.
‘묵시가 사라지면 사람의 행동이 난잡해진다’ -잠언 29장 18절에 나오는 말이다. 묵시란 요즘말로 어떤 이념이나 비전을 말한다. 심심찮게 일어나는 묻지마 살인 같은 것의 원인이 그런 묵시가 사라진 때문이라는 것은 결코 하나마나한 설교가 아니다.
나는 2007년도에 기본소득론을 발표하면서 노동가치설을 존재가치설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다. 그 이후 2021년에 제3정치경제론을 펴내면서 기득권담합세력의 존재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라는 것을 제기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득권 카르텔 분쇄론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근본적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좌우의 이념대립 구도에서 그런 슬로건은 구호에 그쳤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이라는 구호 역시 좌파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용당했다.
좌파의 위선,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다. 윤정부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다. 그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때 사정없이 내팽개쳐질 것이다. 다시 말해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악마를 요리할 때 진영논리의 희생양으로 이용하는 유혹에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기반을 고려한다면 과연 국민들이 만족할 만큼 해낼 수 있을까? 만일 윤석열 대통령 혼자서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오히려 쭈뼛거리며 양비론의 기회주의에 빠져 있다면 그 투쟁의 끝은 어둡다. 정치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바둑에서 묘수 3번이면 진다. 언제까지 기적이나 행운에만 기대할 것인가? 급격히 변화하는 정치경제적 정세에 대한 근본적 분석을 할 능력을 상실한 정치인은 결코 역사 앞에서 책임을 다 할 수 없는 법이다. 국민의 집단지성이 여의도정치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정치가 국민 뒤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좌파든 우파든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는 인간과 자연과의 모순이 주요 모순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시대적 상황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당면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국가단위를 넘어선 지구적 문제와의 연관성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과거 운동권의 민족 모순이냐 계급 모순이냐라는 이론적 쟁점이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사회구성체 논쟁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80년대 낭만적 혁명가들은 이제 소시민의 삶으로 분해되었고 이론가들은 대학이라는 안온한 공간으로 정착했다.
나머지 두 축 역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하나는 공유가치창출이라는 개념이고 또 하나는 본원적 클러스트라는 조동성 교수의 개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조동성 교수의 자본주의 5.0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 본원적 클러스트는 거칠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소비에트같은 발상이다.
사회주의 소비에트는 물론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이다. 그러나 가치창조의 주체가 항상 기업일 수만은 없다는 현실을 계속 무시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좌파와 우파에 의해 희생양이 되어버린 재벌과 민주노총은 내부에서 변화의 동력을 발생시키는 힘을 찾기가 어렵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나 일상적인 평온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안보 문제를 제외하고서도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이 소진되었고 선진국의 반열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방 소멸에 이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다. 이미 플랫폼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고 대안으로 프로토콜 경제모델까지 모색되는 상황을 주도할 동력이 상실된 것이다.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누군가 또 잘해 주기만을 바라는 걸까? 그런 행운이나 기적이 계속되길 바라지만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따라서 4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일은 시간을 다투는 절박한 과제이다. 이 패러다임이 만드는 체제는 말하자면 자본주의 5.0 시대의 주요 특징을 말하는 것이고, 정치적 용어로 표현하면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치시스템은 좌, 우 정치 지형의 중간에 있지 않다. 좌나 우의 어느 한쪽 이념으로 통일하자는 것은 전쟁의 가능성을 높힌다.
우리가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강력한 무력을 갖추는 하드웨어와 좌, 우를 뛰어넘는 시대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갖추어야 한다. 내가 좌, 우를 뛰어넘자는 것은 탈이념도 아니고 정치적 등가성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제3정치가 빠졌던 함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정치적 나이브함이 몰락의 원인이다.
보통의 시민들에게 종북주사파의 위험성을 말하면 대개는 코웃음치며 비웃는다. 개념있는 진보적 시민들에게 종북주사파란 용어는 극우집단이 쓰는 말이며 우익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폭력적 단어로 자동 프레임화되어 있다. 마치 파블로프 실험의 조건반사처럼 오랜 기간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되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악마를 무시하면 악마는 기뻐한다. 바로 그 무시당하는 방심의 공간에서 악마는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상은 진공상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전제하지 않는 비판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비판한 것이 아니다. 그냥 푸념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제3정치의 한계가 그것이었다.
시대정신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뿐 아니라 개인의 삶도 좌우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갈등의 원인은 결국 시대정신의 문제였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는 절박한 반면 그 요구에 답하는 사람들은 너무 없다는 점에서 나의 만용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2023년 10월 10일 이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