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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88993753257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13-09-10
책 소개
목차
중국 문명은 동아시아 밖으로 한 걸음 더 내딛었습니다. 기타 문명의 도전에 직면할 때 가장 흔히 상연되는 프로그램은 충돌과 융합입니다. 수많은 외래 민족이 강역을 확장했는데 특히 몽골족의 서역 정벌로 확장된 광활한 공간은 동아시아의 중국과 서양이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의 경제 네트워크는 확장되었고, 중국 스타일의 사상 체계도 더욱 견고하게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이 시기의 변화로 중국과 동아시아는 거의 분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 중고中古 후반기 중국과 열국체제
2. 정복왕조와 한족 세계
3. 동아시아 경제권의 형성
4. 경제와 다원적인 네트워크
5. 송나라 이후의 지식층
6. 사상의 다원화와 통합 조정
7. 근고시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
8. 근고시대 중국인의 일상생활
9. 근고시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변화
제6부 세계체계 속의 중국·상 | 15세기~17세기
중국은 세계 질서로 완전히 진입했습니다. 해양이 열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육상 교역로가 활기를 띠면서 중국은 세계경제 질서로 편입된 것입니다. 무역 흑자로 인해 중국 경제는 30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며 근대 이전까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도약했습니다! 외부의 자극으로 중국의 지식계도 중국 문화의 본질에 대해 새롭게 사색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역사상 유럽의 계몽주의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로운 사색은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1. 명나라 시기 중국 문화체계의 경직화
2. 인구와 생활자원
3. 해양의 격랑
4. 서양의 제1차 충격파
5. 명나라 공업
6. 명나라 시장경제
7. 남북 경제 및 사회의 차이
8. 명나라 사상의 변화
9. 명나라 중국과 합스부르크 왕조의 에스파냐
10. 대만의 역사 무대
제7부 세계체계 속의 중국·하 | 17세기~19세기 중반
세계체계로 진입한 중국은 쾌속 질주하던 서양에 비해 발전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중고시대 이후 형성된 자급자족형 문화체계는 정체되어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이 중국 문화를 점검하며 새롭게 사색한 적도 있지만 그런 작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는 중국의 전통 문화와 전통 정치제도가 작동한 최후의 세월이었습니다.
1. 만주족 청나라의 성격
2. 대만 개발
3. 청나라 초기의 민족과 문화 충돌
4. 청나라 학풍
5. 민간 사회조직
6. 중국과 서방 국가의 관계
7. 청나라 상업 활동
8. 중국과 서양의 문화 접촉
9. 통속 문화
10. 그 당시 유럽
제8부 백년의 휘청걸음 | 19세기 중반~20세기 중반
서양의 공업혁명과 자본주의 제국의 확장은 전 세계 운명을 주재했습니다. 그 압박에 중국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100여 년간 중국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자 내부적인 검토와 반성을 시작했고 외국을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급기야 중국 문명은 찢겨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중국은 스스로를 추스르고 다시금 새로운 세계로 발길을 옮겼는데, 그래도 20세기 전반부 근 50년의 고난을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부흥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1. 내우외환
2. 중국 근대경제의 변화
3. 교육제도의 변화
4. 중국의 군사화 현상
5. 대도시 문화의 발흥
6. 시대사상과 문화 변천
7. 중국 근대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비교
8. 중국 유신운동과 일본 메이지유신의 비교
9. 대만 백년의 변화
맺는 말 | 만고강하萬古江河-바다로 흘러가는 양자강과 황하
옮긴이 후기 | 중국 문화사-문화권 상호간의 존중과 포용
후주
책속에서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전설 중에 비교적 중요한 내용으로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반고盤古, 인간을 만들고 구멍 난 하늘을 메운 여와女?, 가옥을 만든 유소씨有巢氏, 각종 제도를 만든 황제黃帝, 전설적인 태평성대를 일군 오제五帝 그리고 경이로운 선양禪讓을 행한 요堯왕 순舜왕 우禹왕 등등입니다. 이러한 전설은 그 출처를 추적하면 기원이 서로 다른 각 문화권의 이야기가 점차 통합되면서 공통의 전설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이런 점은 집단기억을 구축할 때 어느 민족에게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상권 78쪽)
주 민족은 마침내 “천명은 유동적이니, 오로지 덕정의 편”이라는 이론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주 민족은 상 왕조의 멸망 원인이 덕정을 펼치지 않은 데 있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그 죄목은 폭음, 음란, 가혹한 노동력 착취, 범죄자 은닉 등등으로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목이 사실이었을까요? 그 당시 최강대국이 이런 죄목으로 인하여 자멸했을까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여기서는 주 민족이 제시했던 이른바 ‘천명天命’ 관념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주 민족의 ‘천명’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통치자는 일정한 도덕적 기준에 부합되어야 함. 둘째, 초월적인 힘, 즉 하늘은 인간 세상을 감독하고 재판할 권력이 있음. 이것은 중국 역사상 초유의 관념입니다. 정권의 합법성은 도덕적인 가치판단에 근거하는데 그 재판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조상신이나 민족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보편적인 의미를 갖춘 초월적인 힘을 인정한 것입니다! (상권 126~127쪽)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위와 같은 초월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자가 나타날 때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이를 문명의 대돌파로 규정하고 그 시점을 일컬어 기축시대라고 명명했습니다. …… 야스퍼스의 견해에 따른다면 중국 지역의 문화적 대돌파는 상주商周 교체 시기에 나타난 천명과 도덕관념, 그리고 『주역』에 드러난 동적인 이원론 관념이 기초가 되어 공자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토론했던 허다한 철학적 명제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문자 시스템 내에서 중국의 현인들이 서로 공박을 거듭하며 사고했던 것이 문화적 대돌파를 야기한 것입니다. (상권 186~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