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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4122144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2008년
11월
12월
2009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인간을 그리워하면서도 경원(敬遠)했다. 나는 내 불순한 마음을 지배하려 했으나 자주 지배당했다. 시를 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을 쓰고 싶었으나 역시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몇 줄의 시를 썼다. 쓰려고 했다. 이사 온 지 두 달 만에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고 딱 1년만 해보자 다짐했다. 이 책은 그 1년간의 기록이다.
오빈리에 가을빛이 물들었다. 사람들이 그립다. 오전 10시, 오빈리 들판(논) 사이로 난 농로를 뛰고 걸었다. 벼는 가을걷이가 끝났고 논두렁에서 콩 수확 하는 농부를 만났다. 말 한 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건네지 못했다. 마흔여섯 해의 가을이 깊어만 간다. 가을은 다시 또 오겠지만 이 가을은 영영 다시 오지 않겠지. 삶은 그처럼 절박하다. 글을 쓰면서 삶의 열기를 지탱하는 수밖에 없다.
4월이 가고 있다. 이번 달에는 네 차례에 걸쳐 6일이나 집 밖으로 나가 꽃구경 하고 다녔다. 돈 없고 직장 없는 자의 사치라 여기에 적어둔다. 아무나 따라 하지도 못하지만 따라 할 수 없는 사치다. 나는 젊어서 꽃보다 잎을 좋아한 사람인데[잎이 나무의 꽃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턴가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열나게 좋다. 내가 늙어가기 때문이라 해두자. 오빈리 일대 야산에 꽃빛이 가고 연녹색 천지가 되어 있다. 꽃의 시절은 짧고 잎의 시절은 길다. 시 한 편 못 쓰고 허송세월한 4월이었다. 하지만 끔찍하게 아름다운 4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