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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94242507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7-06-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 5
Part 1 모든 것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서구 지식인에게 그리스 문화는 우리의 공맹 …·· 12
진보는 매우 근대적인 정서 …·· 17
고대 그리스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였나? …·· 22
자유인과 야만인의 차이는? …·· 25
Part 2 페리클레스와 아테네의 황금시대
그리스의 고전적 황금시대 …·· 32
나폴리는 그리스의 도시? …·· 37
페리클레스와 아테네 민주주의 …·· 42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오늘날의 뉴욕 …·· 45
서사시와 고전 비극 …·· 54
Part 3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그 여파
페리클레스의 죽음 …·· 66
악몽으로 끝난 시라쿠사 원정 …·· 70
알키비아데스의 최후 …·· 74
아테네의 패배와 민주주의의 위기 …·· 76
Part 4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셔야 했나?
서구 사상 최초의 세계대전이 남긴 후유증 …·· 86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란 무엇이었나? …·· 89
재판에서 잘난 척하는 피고인 소크라테스 …·· 93
소크라테스가 친구에게 닭 한 마리를 갚아달라고 한 이유 …·· 97
Part 5 플라톤은 몽상적 공산주의자?
아테네에서 가장 똑똑한 레슬링 선수 …·· 106
이데아란 도대체 무엇인가? …·· 111
『국가』는 플라톤 철학의 정수 …·· 116
나라에서 시인을 추방하자! …·· 121
국가론 외에는 모두 가치 있는 책, 『국가』 …·· 125
Part 6 민주주의 아테네와 군국주의 스파르타의 기원
삼백 명이 백만 명을 막아낸 나라 …·· 136
그리스인들도 이상하게 생각한 나라, 스파르타 …·· 139
고대 사회의 전투적 공산주의 …·· 143
아테네인의 인생은 즐기면서 사는 것 …·· 147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남한과 북한? …·· 151
Part 7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
스파르타의 몰락 …·· 160
실용적인 학생, 아리스토텔레스 …·· 166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는 종합대학 …·· 169
논리학과 미학의 아버지 …·· 175
Part 8 어딘가 현대적이었던 헬레니즘 세계
‘헬레닉’과 ‘헬레니스틱’의 차이 …·· 184
알렉산드리아, 가장 현대적인 고대도시 …·· 187
중세 이전 가장 과학이 발달했던 시대 …·· 191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을 위한 철학 …·· 197
에필로그 그리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 202
참고문헌 …·· 205
찾아보기 …·· 206
리뷰
책속에서
소크라테스 철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산파법産婆法이란 건데요. 소크라테스가 상대에게 질문을 하면서 상대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마치 산파가 산모를 도와 스스로 아이를 낳게 하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산파법이란 것이 후세 사람들에게는 철학적 방법론의 효시쯤으로 보이지만, 소크라테스와 마주한 당사자에게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결국에는 자신의 무지를 폭로당하는 꼴이니까요. 다음의 대화(플라톤의 『대화』 가운데 「에우티프론Euthyphron」 편을 제가 무지막지하게 요약한)가 전형적인 산파법에 속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재판이 있는 당일 아침에 법정 바깥에서 평소 알고 지내는 에우티프론을 만납니다. 둘은 당연히 인사를 나누었죠.
“소 선생, 여긴 어쩐 일입니까?”
“응, 실은 내가 고발을 당해서 말이야. 오늘이 재판 날이야. 그런데 자네는 무슨 일로?”
“아, 저는 누굴 좀 고발하러 왔습니다.”
“누군데?”
“그게,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제 아버지입니다.”
“아니, 아버님을 어쩐 일로?”
“실은 제 부친이 노예 하나를 방치해서 죽였기 때문에, 고발하려고요.”
“그래도 부친인데…… 그래도 될까?”
“그렇게 하는 게 경건한 행위라고 봐서요.”
“경건한 행위? 경건이 뭐라고 생각하나?”
“신의 마음에 드는 행위가 경건한 행위죠.”
“자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알겠지.”
“네, 당연히 알죠.”
“거기 보면 아테네 여신과 아폴론 신이 편을 나누어 싸우는데, 한쪽의 마음에 드는 행위는 분명 다른 쪽 마음에 들지 않겠지. 어떤 행위가 경건한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건, (우물쭈물) 제가 좀 바빠서…….”
에우티프론은 그만 말을 얼버무리면서 피해버립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는 건 싫거든요.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평판이 극명하게 갈렸던 거죠. 친구들은 그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사랑했지만, 많은 아테네인이 그를 경계했습니다. 소크라테스 본인도 자신이 아테네인들의 무지를 꼬집는 역할을 한다고 자인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란 무엇이었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학의 전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업적을 남겼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부정확한 관찰 때문에 오류도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무거운 물건이 가벼운 물건보다 빨리 낙하한다.” 같은 설명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후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에서 공 두 개를 떨어뜨려야 했지요(실은 피사의 사탑 이야기도 확인 불가능한 전설입니다). 그건 그렇고 그가 “남자의 치아 수가 여자보다 많다.”고 주장한 건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이 외에도 “분노는 심장 주변의 피가 끓는 것”이라든가, “눈은 하늘색이 담겨서 파랗다.”는 등 지금 보면 좀 우스운 얘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류 문명의 기반 중 하나인 ‘경험과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한 모든 경우에 직접 대상을 관찰하면서 과학적 진술을 남겼던 것입니다. 당시 저울이나 온도계 등 정확한 측정 기구가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죠.
-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는 종합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