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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94353715
· 쪽수 : 572쪽
· 출판일 : 2014-11-28
책 소개
목차
춘원 닮은 나 _ 고정욱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
제행무상
번뇌무진
파계
요석궁
용신당
방랑
재회
도량
이광수 연보
책속에서
- 나는 왜 이 소설을 썼나
그는 국민으로는 애국자요, 승려로는 높은 보살이다. 중생을 건진다는 보살의 대원은 나는 때, 죽는 때에도 잊거나 잃는 것이 아니어니, 하물며 어느 때에랴. 보살의 하는 일은 모두 자비행이다. 중생을 위한 행이다. 혹은 국왕이 되고 혹은 거지가 되고 혹은 지옥에 나고 혹은 짐승으로 태이더라도 모두 중생을 건지자는 원에서다. 그러므로 원효대사의 진면목은 그의 보살원과 보살행에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 그릴 수 있는 것은 그의 겉에 나타내인 행이다. 만일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원효대사의 내심의 대원과 대자비심에 접촉한다 하면, 그것은 내 붓의 힘이 아니요, 오직 독자 자신의 마음의 힘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원효를 그릴 때에 그의 환경인 신라를 그렸다. 왜 그런고 하면 신라라는 나라가 곧 원효이기 때문이다. 크게 말하면 한 개인이 곧 인류 전체이지마는 적어도 그 나라를 떠나서는 한 개인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는 사람이어니와 신라 나라 사람이었고, 중이어니와 신라 나라 중이었다. 신라의 역사에서 완전히 떼어내인 원효란 한 공상에 불과하다. 원효뿐이 아니라 이 이야기에 나오는 요석공주도 대안법사도 다 신라사람이다. 그들은 신라의 신앙과 신라의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여기 민족의 공동 운명성이 있는 것이다.
원효는 저를 원망하고 제 마음이 단련되지 못하였음을 성화하였다. 원효는 스스로 이구離垢 행자라고 생각하였다. 아직 나는 자유자재한 자는 아니다. 억지로 저를 이기어 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때를 벗으려는 행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치로는 깨달은 듯하건마는 마음이 말을 아니 듣는다.’
원효는 이렇게 자탄하였다.
‘젖지 아니하고 물들지 아니하는 원효.’
이것이 되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효는 엄청난 자존심이 푹 줄어들어서 제가 몇 푼어치 아니 됨을 느꼈다.
원효는 어머니의 산소를 어두움 속에 다시 바라보았다.
‘어머니, 이 자식은 아직 어머니를 제도해드릴 힘이 없습니다. 저를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남을 제도합니까. 어머니, 이 자식의 나이가 벌써 사십을 바라봅니다. 그러하건만 아직 저를 건지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는 턱에 자란 수염을 쓸어보았다.
‘어머니, 세상이 이 자식을 원효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남의 스승이 될 사람이 아직 못 되었습니다. 다시 어머니 산소를 찾을 때에는 반드시 정말 원효대사가 되겠습니다.’
마침 사월 파일, 온 장안이 관불회로 집집에 등을 달고 아이 어른이 모두 새 옷을 입고 거리에 가득 찬 날, 원효가 서울 거리에 나타났다.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과 요석공주, 아사가, 사사마 등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유모에게 업힌 설총과 아사가를 데리고 앞을 서고 사사마가 칼을 차고 바람 이하 오십 명 도적의 두목을 숙마바로 손과 허리를 묶어서 그 끈을 사사마가 잡고 끌었다.
수백 명 거지떼가 의명의 인솔을 받아서 원효를 맞아 모두 절하고 뒤를 따랐다.
대각간 유신이 부인 지조공주와 함께 나와 원효를 맞고 수없는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길가에 도열하였다. 유신은 원효의 앞에 와서 말을 내리고 지조공주도 가마에서 내려서 형 요석공주와 만났다.
원효는 길에 무릎을 꿇은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 전날 죄를 뉘우치고 나라 법대로 벌을 받는다고 자진하여 결박을 지고 왔소.”
하고 또 사사마와 아사가가 충신 장춘랑의 후손인 것을 말하였다.
유신은 바람과 오십 명 두목을 향하여,
“너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하거니와 원효대사의 제도를 받았다는 뜻 들으시고 상감마마 분부하시기를 이로부터 나라에 충성하기를 맹세할진댄 모든 죄를 용서하실뿐더러 각각 재주 따라 나라 일에 씁신다 하셨으니 그리 알아라.”
하고 어명을 전달하였다. 바람과 일동은 머리를 조아렸다.
바람은 왕자의 대우를 받아 서당장군이 되고 다른 두목들도 각각 군직을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몇 해 뒤에 신라가 백제를 칠 때에 황산 싸움에 용감히 싸운 장수들이 이들이요, 또 죽기를 무릅쓰고 백제와 고구려의 국정을 염탐한 것이 거지떼들이었다.
원효는 산간에 숨어서 도를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요석공주와 아사가는 평생에 원효를 따르는 비구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