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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94418988
· 쪽수 : 203쪽
· 출판일 : 2015-09-2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대한민국의 저울이 흔들리고 있다
서장 1997년이 남긴 ‘지금’
1997년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
미래를 우리 스스로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
제1장 정치보다 경제에서 유린되는 민주주의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민주주의는 경제적이다!
1%의 뻔뻔함
개인이 사회의 비대칭성을 깨뜨릴 수 있는 현실적 대안
왜 보수가 집권하면 자살률이 증가할까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와 석관동 두산아파트, 우리는 어디를 꿈꾸는가
감동을 불러일으킨 몬드라곤 협동조합 이야기
시간주권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
‘자유로운 개인’이 연대하는 사회가 답이다
제2장 오르지 못하는 부러진 사다리, 교육
교육이 행복을 보장할 확률
수시입학, 소수를 위한 특혜
교육은 진보다
고진감래, 교육에서 사라져야 할 말
10대의 삶이 100세 시대의 인생을 결정하는 시대
사교육을 과감히 자신의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방법
교사가 다른 직업과 달라야 하는 이유
국민교육헌장은 정말 사라졌을까
사과도 교육이다
전교조는 빨갱이인가
교육계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입을 닫으라?
왕따와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적 연대감
대학은 언제나 공사 중
사학법 파동이 남긴 것, 기득권에 대하여
교육의 궁극적 목적과 주제와 주체는 인간이다
제3장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들이 만들어낼 수평사회
새로운 노인상을 세울 의무와 능력이 있는 세시봉 세대의 등장
삶의 재교육 시스템은 수평사회를 향한 또 하나의 과제
‘1%의 그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문제
공부하는 실버가 삶과 세상을 바꾼다
실버 정당을 창당하라
눈치 안 보고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건 중년의 특권
세대 간, 도농 간 수평적 사회의 실현
진정한 웰빙의 삶은 실버의 몫이다
노년의 청년을 향한 ‘사회적 내리사랑’
세시봉 실버 세대가 망국적 지역감정을 끝내야
에필로그 이 땅의 검찰들에게 당부함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기 저울이 있다. 저울은 무게를 재고 값을 정한다. 저울은 판단과 측정의 기준이고 객관성과 보편성의 잣대가 된다. 저울은 수평을 유지했을 때 제 기능과 역할을 완수한다. 그러나 지 금 우리 앞의 저울은 기울어져 있고 추는 저울을 쥐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 정한다. 그런 저울 은 현재를 망칠 뿐 아니라 미래까지 깡그리 망쳐버린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산다.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의 삶은 보다 나을 것이라는, 나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 저울의 수평성은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수평사회의 기준과 밑돌이 된다. 수평사회는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결정적 열쇠다. 지금 우리는 고장난 저울을 버리고 새로운 저울을 마련해야 한다. 올바른 저울이 필요하다. (중략) 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당면한 미래 의제를 세 가지로 뽑았다. 경제·교육·세대가 바로 그것으로, 망가진 저울을 여기부터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이 미래의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민주주의적 수평성을 이루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왜 99퍼센트의 못 가진 사람들이 1퍼센트를 위한 정당에 표를 줄까?” 문제는 저소득층에게 복지 혜택을 ‘거저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품는 건 부자들인데, 왜 가난한 사람들까지 거기에 편승하는가 하는 물음이 정신의학자이자 정신과 교수인 뉴욕대 제임스 길리건의 의문이다. 그에 따르면 공화당은 중상류층과 중하류층이 최하류층을 미워하게 만드는 ‘분할 정복’ 전략을 발판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계급배반형 투표’가 성행하는 것은 길리건의 분석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0오히려 베블렌의 지적과 비판이 우리에게 딱 적절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의 유한계급론에 따르면, 부자들이 굳이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보수적인 것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이 되는 까닭은 가난한 하위 소득계층은 현제도와 생활양식 속에서 당장의 일상과 생활에 급급해 변화와 대안을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기존의 방식에 순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엉뚱하게 보수적이고, 부자의 ‘꿈’을 안기는 이미지에 주저하지 않고 표를 던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장노년층, 시골의 농부들과 어부들, 쪼들린 살림살이에 전전긍긍하는 대부분의 가정주부, 무엇보다 가장 절망을 체감하는 청년들까지 무기력해지고 보수화되는(건강한 의미의 보수가 아니라 체념과 순응의 보수) 현실을 볼 때, 우리 사회가 불의와 탐욕, 민주주의의 퇴행과 비인격화의 자행을 그저 빤히 바라만 보면서 내 일만 아니면 된다는 자포자기의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적응마저도 실패한 젊은이들이 지금도 매일 7명씩 삶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야만의 상태가 지속되게 내버려둔다면 결국 우리가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왜 보수가 집권하면 자살률이 증가할까> 중에서
수시입학제도는 입시정보의 접근이 용이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재력과 인력이 있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예 이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대도시의 좋은 학군들에서 거의 독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취지와, 암기 위주의 주입식 학습을 탈피하여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을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소수의 상류계층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15%까지만 수시입학으로 뽑던 것이 이명박정부 들어서 50%에 육박했고 지금은 그 수치조차 무색할 지경으로 별별 명목의 수시입학제도가 널려 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행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소수의 특권계층에 거의 일방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이러한 방식에 대해 이제는 재고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로 유리한 입장에 있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는 수시입학제도는 교육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실패작이다. 좋은 취지와 내용에서 시작되었고 그런 입시로 뽑은 학생들의 자질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다수의 약자들에게서 입학시험 기회의 절반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교육이 아니다.
<수시입학, 소수를 위한 특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