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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94606231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13-10-14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서론 사회와 이데올로기
조선 후기의 사회상 | 유교의 전래 | 신유학의 초기 형성 | 변화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유학
1장 신유학 수용 전의 과거, 고려 사회의 재구성
친족과 출계 | 계승과 상속 | 혼인의 정치사회적 측면 | 혼인의 제도적 측면 | 상복과 장례 | 다시 생각해 본 고려 사회
2장 신유학, 조선 초기 개혁 입법의 이데올로기적 기초
조선 왕조 건국 세력의 등장 | 신흥 엘리트의 지적 형성 | 고려 사회의 해체와 불교 문제 | 새로운 사회 모델의 모색 | 사회의 재편 | 신유학자의 연구 전거와 제도 | 고대 모델의 타당성 | 동화와 갈등 | 엘리트주의와 이데올로기
3장 종법과 계승 문제, 그리고 제사
신유학의 사회관 | 제사의 도입 | 종법 개념의 초기 형태 | 승중과 제사 | 제사와 서얼 | 제사와 여성 | 외손의 제사 계승 관행 | 족보, 출계집단의 도해 | 봉사자의 경제적 지위 | 조상 의례의 제도적 측면 | 예학과 예서 | 조상 의례의 종교적 측면 | 장자 중심의 제사 정착
4장 상장례의 변화
상례 개정의 전주곡 | 오복제도의 변화 | 상례와 사회적 위계 | 장례식과 풍수지리
5장 상속, 균분에서 장자 우대로
국가와 사유재산 | 종법과 상속 | 상속문서의 효력과 규정 | 상속과 여성 | 장자 상속제의 정착
6장 신유학의 입법화와 여성에게 일어난 결과
처첩의 제도화 | 혼인 규정과 전략 | 『주자가례』와 혼례식 | 왕실의 혼례식 | 조선의 혼례식 | 여성에 대한 훈육과 교화 | 시집살이 | 기혼 여성의 법적·의례적 역할 | 첩과 서얼 | 혼인관계의 해소 | 과부와 재혼 | 변하지 않는 유교적 여성 이미지
결론 종족사회의 출현
저자 후기
옮긴이 개정판 후기
옮긴이 초판 후기
부록1 친족용어 풀이와 개념
부록2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연구 업적
참고문헌
미주
인명·씨족 찾아보기
내용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이 책은 두 가지 중요한 가설을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첫째, 조선 후기 한국의 사회상이, 윤곽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고려시대 한국의 사회상과는 뚜렷이 다르다는 가설이다. 이렇듯 현저한 차이는 틀림없이 한국 사회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전환기에 일어난 근본적 변동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변동을 일으키고 연출한 원동력은 정치적 또는 경제적 요소가 아니라-정치적 또는 경제적 영역에서는 지속성이 상당하다- 신유학이라는 가설이다. 고려 후기부터 중요한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의 신유학은 한국의 학자 관료계급(사대부)에 사회조직에 대한 특별한 이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이 이것을 환경에 이식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 시작된 한국 사회의 재조직화는 다른 어떠한 곳에서도 사회적 행동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이와 넓이에 이르렀다. 이것은 시기나 연대를 산정할 수 있는 어떤 단일한 사건과 결부되지 않았으므로 특정 시기의 것도 아니고 명칭도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유교를 기초로 한 변동은 한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린 것이다.
고려에서 사람들이 성장하는 데 가장 있을 법한 사회 환경은 모친이 원래 출생한 집단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부친은 혼인하면서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 신부집으로 이주할지 선택하였다. 처가 거주제도〔婦處制〕는 고려에서 흔한 일이었다. 거주지를 선택하는 데 뚜렷한 제약은 없었다. 처가 거주제도냐 본가 거주제도〔夫處制〕냐에 관계없이 부모의 거주 형태가 아이들의 신분을 결정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집에서 아이들은 어머니 쪽 친족에 둘러싸였다. 어머니의 남자형제들은 출생 서열에 따라 각기 다른 혈연 용어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아마도 아이의 인생 초기에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이 아마도 미래의 장인이 되었을 것이다. 외사촌과 혼인하는 일이 적어도 고려 초기에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선호까지 한 것 같다. 집안의 연장자는 외조부모로, 이들의 사랑과 관대함에 상응하여 1년 동안 상복을 입는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서자 차별은 부분적으로 한국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규제방식의 직접적 결과이다. 중국에는 이와 대응하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더라도 서자는 모친의 지위가 낮아서 계보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 유대가 약했으므로 서자 출계집단은 서자를 주변화했다. 그러므로 서자는 기껏해야 자신의 아버지 계통을 잇는다는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나, 조상을 돌보는 일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중략)
여성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유로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조상들, 다시 말해서 그 자신과 남편의 조상에 대한 여성의 위치는 애매하였다. 여성이 그들 자신의 출계집단의 실제 일원이었던 조선 전기에는 남자형제들과 제사 책무를 나누어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성이 남편 출계집단에 차츰 병합됨으로써 상징적으로나 때로는 지리적 거리에서도 자신이 출생한 집과 거리가 멀어졌다. 조상들에게서 분리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상속권 상실을 초래하였다. 혼인한 여성은 남편 조상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그러므로 여성에게는 결코 자신의 인족의 사당에서 의례에 참여하는 자격이 부여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