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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88994606361
· 쪽수 : 286쪽
· 출판일 : 2015-04-2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장 400년 엇갈린 기억
2장 서애와 송강의 일생
3장 선조 23년? 24년?
4장 추국청이라는 공간
에필로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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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안방준은 송강이 옥사를 처리할 때 과실이 있었고, 또 남들이 자신에게 혐의를 둘까 지레 위축되어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미온적으로 처리하여 오히려 선조에게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말을 들었던 점까지 둘 다 드러내고자 했다. (중략) ‘다음대로 결정한다’는 선조의 말은, 이발이 귀양 가다가 다시 압송되었을 때 송강이 “경연관 중에서 정여립 같은 자가 나온 것도 이미 불행한 일이온데, 어찌 정여립이 둘씩이나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이발에게는 반역의 혐의가 없다고 말한 데 대한 선조의 힐난이었다. 정여립도 홍문관 수찬으로 경연관을 지냈고, 이발 역시 홍문관 부제학으로 경연관을 지냈기 때문에 송강이 이렇게 말한 것인데, 선조는 송강이 사안을 축소한다고 본 것이다. 안방준은 이런 송강의 태도를 심수경만 못하다고 판단했다. 심수경은 좌의정이던 송강 대신 우의정으로 위관을 맡았다.
안방준의 편찬 원칙 및 태도는 서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그는 왜적과 화친을 주장했다고 서애를 비난하는 주장에 대해, 그런 주장은 서애가 영의정으로 논의를 주관했던 것을 두고 편파적으로 헐뜯는 데 불과하다고 반론하면서도 위관이었을 때 이발의 노모 죽음을 방관한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반역 사건을 다루는 조선 형정의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추국청은 위관부터 당상관, 낭청으로 구성된 하나의 제도이자 조직이었다. 그 조직은 조사 결과를 국왕에게 보고하여 처결을 논의한다. 추국 자체의 일반 절차는 고변→심문→진술→형신(刑訊, 신문)→재심문→자백→결안(結案, 진술서)→조율(照律, 관련 법규 적용)→처형으로 이루어지지만, 추국청 심문 문서를 포함한 추국 상황을 수시로 국왕에게 보고한다. 보고하는 자리에서 사안의 처리, 이를테면 ‘아무개는 혐의가 없는 듯하니 석방하자’라든지, ‘아무개는 누구의 진술에서 나왔으니 다시 심문하자’는 등의 논의 속에서 추국이 진행되었다.
특히 기축옥사는 의금부 단독 추국이 아니었다. 국왕의 친국이거나 위관이 있는 추국청에서 이루어졌고, 적어도 삼성추국으로 이루어졌다. 친국은 국왕이 위관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통상의 정국(庭鞫, 궐정 추국)과 차이가 있다. 삼성추국은 규모가 조금 작다. 그리고 의금부는 주관 관청이므로 자연히 포함되었다. 사건의 중요도나 죄의 경중에 따라 추국의 방법과 형식이 결정되었는데, 장소와 참여 관원, 좌차(座次)에 따라 추국청의 규모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친림추국(친국) > 궐정 추국(정국, 추국) > 삼성추국 > 의금부 추국(나국)
기축옥사는 처음에 친국으로 시작하여 정국, 삼성추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거기서 끝났다. 쉽게 말해 기축옥사는 전 과정에 걸쳐 정승과 양사가 참여하였고, 국왕의 재가를 받아가며 이루어진 옥사였다. 송강이 술김에 서애에게 ‘왜 이발의 노모와 어린아이를 살리지 못하고 죽게 두었느냐’고 했다지만, 그 일은 서애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서, 서애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추국청의 조건 때문이기도 했다. 북인 일각에서 송강이 기축옥사를 조작한 듯이 말하지만, 이렇게 여러 정파가 함께 참여하는 추국청은 누구 혼자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