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할 말이 있다

할 말이 있다

허균, 이경혜 (지은이), 정정엽 (그림)
알마
13,8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12,420원 -10% 2,500원
690원
14,23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판매자 배송 25개 1,000원 >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할 말이 있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할 말이 있다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어린이를 위한 고전
· ISBN : 9788994963242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1-12-29

책 소개

샘깊은오늘고전 시리즈 13권. 백상문화출판상 수상 작가 이경혜가 허균의 시 가운데 허균의 일생과 그의 생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서른여덟 편의 시를 가려 뽑아 누구나 알기 쉽게 옮겨 다듬고, 그 시에 설명을 덧붙였다. 덧붙은 글에는 허균이 어떤 삶을 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보여주는 삶의 단편들이 깊숙이 녹아 있어 그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목차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매 / 이무기 연못 / 꽃이 지네 / 바람에 흩어지니 / 복사꽃 / 불경을 읽었다고 / 예절을 배웠다고 / 감옥에 갇혀 시를 읊다 / 성옹을 칭송하다

말발굽 소리 속에 세월은 가고
책을 벗 삼아 / 글을 벗 삼아 / 눈 오는 밤 벗들과 모여 시를 짓다 / 떡 노래 / 손곡 선생님 / 아내의 편지를 받고 / 관운장의 사당 앞에서 / 스님과 저녁을 보내고 / 이국땅을 떠나며 / 추석날 밤에 / 피란길에 시를 짓다

보고 들은 대로 쓰다
늙은 아낙의 통곡 / 어느 노파의 원통한 이야기를 듣다 / 까마귀를 먹이네_궁사에서 / 잡귀를 쫓다_궁사에서 / 본 적이 있어야지_궁사에서 / 궁녀의 삶_궁사에서

세상으로 나아갈지 고향으로 물러날지
고향 땅에 이르러 / 저물 무렵에 / 손님을 보내고 홀로 앉아 / 군수가 되어 화학루에 오르다 / 벼슬살이 / 백상루에 올라 / 한밤중에 돌아다니다

쓰라린 눈물 옷깃을 적시니
슬픈 칠석날 / 죽은 아내에게 첩지를 올리며 / 꿈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 계랑의 죽음을 애도하며 / 다시는 시를 읊지 않으리라

저자소개

이경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진주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동화와 소설을 쓰며, 그림책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92년 문화일보 동계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마지막 박쥐공주 미가야>, <유명이와 무명이> 등의 책을 냈습니다.
펼치기
정정엽 (그림)    정보 더보기
화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가. 일하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곡식, 나물, 감자 싹, 나방처럼 작고 미약한 존재들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표현해왔다. 1980년대부터 회화뿐 아니라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세상의 소외된 가치와 약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변함없이 지켜온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이중섭미술상(2022), 양성평등문화상(2020), 고암미술상(2018) 등을 수상했다. 팥과 콩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진 그는 씨앗이자 열매인 곡식을 통해 우리에게 근원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화면 가득히 한 알 한 알 수행적으로 그려낸 팥과 콩은 여성의 반복되는 노동을 표현하는 한편, 작은 존재들의 고유성과 응집된 생명력을 보여준다. 국내외 유수의 갤러리에서 26회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을 통해 왕성히 활동해왔다. 개인전 「모욕을 당한 자이며 위대한」(2023, 갤러리 밈) 「조용한 소란」(2021, 서울식물원) 「최초의 만찬」(2019, 이응노의 집) 「지워지다」(2006, 아르코미술관)을 열었고, 기획전 「The 3rd Two」(2024, BBK, 뮌헨) 「접속하는 몸」(2024,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여성 미술제」(2012,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후쿠오카) 지은 책으로 『한국 현대미술선 002: 정정엽』(헥사곤, 2011), 『나의 작업실 변천사』(헥사곤, 2018), 『작고 물렁하고 위대한』(미디어버스, 2025)이 있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펼치기
허균 (원작)    정보 더보기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감옥에 갇혀 시를 읊다

의금부 앞에서
옷과 두건을 벗어 놓으며

한 해에
두 번이나 오니
너무 잦은 게 아니냐며 웃는다.

지옥도 천당도
모두 다 정토이니

내 몸을 묶은
한낱 오랏줄을
어찌 싫다 하겠는가.

우리 나이로 마흔 두 살이 된 그해, 허균은 몹시 험난한 한 해를 보냅니다. 봄에는 명나라에 갈 사신으로 임명되었으나 몸이 아파 사퇴했다가 의금부에 잡혀갑니다. 허균이 친구에게 “몸이 아파 사신 길을 못 가겠다고 했네. 살고 나서야 벼슬도 있는 것이지”하고 편지를 써 보낸 것만 보아도 핑계가 아니라 실제로 몸이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랬다가 가을에 나주목사로 임명되지만 곧 쫓겨나고, 11월엔 과거 시험 심사위원이 되었다가 조카와 조카사위를 뽑는 바람에 다시 의금부에 끌려가고, 12월에는 전라도 함열로 귀양을 가니 말입니다. 몸이 아파 사신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건 결코 죄가 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허균을 트집 잡았던 반대파들은 그조차 허균의 꾀병이라 몰아붙이고 임금을 무시한 죄로 벌을 주었습니다.


책을 벗 삼아

붓이란 오로지
시름이나 적고

즐거움은
돈으로 부르는 것인가.

세상의 정이란 것이
몹시도 삭막하여

내 길은 나날이
더 어렵기만 하다.

긴긴 밤
은하수도 어두워져

산마다
눈비 내려 차가우니

작은 등잔불만이
내 듬직한 벗

옛글을 비추어
환히 읽게 해 주는구나.

앞서 얘기했지만 허균은 중국에 사신으로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외국과의 무역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조선의 물건을 가져다 팔거나 중국의 물건을 사 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신들의 경우는 여비를 나라에서 모두 댈 수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물건을 가져가 팔아서 여비를 만들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자유 무역의 권리를 준 것이지요. 그래서 사신들은 오가면서 인삼 같은 우리의 특산품을 가지고 가 큰돈을 벌어오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허균은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있는 돈을 다 퍼부어 책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심지어는 집안의 돈을 다 긁어 가 몇 수레나 되는 책을 사 온 일도 있었답니다. 미국에 출장 간 사람이 책만 몇 십 상자 사 왔다고 생각해 봐요, 그것도 재산을 다 털어서!


손곡 선생님

머리가 온통
하얘질 때까지

손곡 선생은
시를 읊었네.

시마다
어찌 아름다운지

당나라 유장경도
저리 가라네.

지금 사람들은
겉만 보고서

어리석다
손가락질에 비웃지만

강물은
만고에 흐르리니

어찌 그것을
막을 수 있으랴.

손곡은 우수한 시인이었지만 서자 출신이라 벼슬길엔 나설 수가 없어서 평생을 가난하고 불우하게 보냈어요. 거기다 몹시 형편없는 모습으로 다녀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허균은 그런 바보 같은 세상에 일침을 놓으면서 손곡의 시가 강물처럼 오래오래 살아남을 거라 예언한 것이지요. 허균의 예언대로 손곡의 시는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허균은 손곡처럼 뛰어난 인재가 과거에 응시도 할 수 없는 조선의 제도를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그런 제도를 고치려고 애썼답니다. 하지만 손곡의 시를 인정하면서도 허균은 자신의 시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허균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허균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요.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