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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어린이를 위한 고전
· ISBN : 9788994963242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1-12-29
책 소개
목차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매 / 이무기 연못 / 꽃이 지네 / 바람에 흩어지니 / 복사꽃 / 불경을 읽었다고 / 예절을 배웠다고 / 감옥에 갇혀 시를 읊다 / 성옹을 칭송하다
말발굽 소리 속에 세월은 가고
책을 벗 삼아 / 글을 벗 삼아 / 눈 오는 밤 벗들과 모여 시를 짓다 / 떡 노래 / 손곡 선생님 / 아내의 편지를 받고 / 관운장의 사당 앞에서 / 스님과 저녁을 보내고 / 이국땅을 떠나며 / 추석날 밤에 / 피란길에 시를 짓다
보고 들은 대로 쓰다
늙은 아낙의 통곡 / 어느 노파의 원통한 이야기를 듣다 / 까마귀를 먹이네_궁사에서 / 잡귀를 쫓다_궁사에서 / 본 적이 있어야지_궁사에서 / 궁녀의 삶_궁사에서
세상으로 나아갈지 고향으로 물러날지
고향 땅에 이르러 / 저물 무렵에 / 손님을 보내고 홀로 앉아 / 군수가 되어 화학루에 오르다 / 벼슬살이 / 백상루에 올라 / 한밤중에 돌아다니다
쓰라린 눈물 옷깃을 적시니
슬픈 칠석날 / 죽은 아내에게 첩지를 올리며 / 꿈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 계랑의 죽음을 애도하며 / 다시는 시를 읊지 않으리라
리뷰
책속에서
감옥에 갇혀 시를 읊다
의금부 앞에서
옷과 두건을 벗어 놓으며
한 해에
두 번이나 오니
너무 잦은 게 아니냐며 웃는다.
지옥도 천당도
모두 다 정토이니
내 몸을 묶은
한낱 오랏줄을
어찌 싫다 하겠는가.
우리 나이로 마흔 두 살이 된 그해, 허균은 몹시 험난한 한 해를 보냅니다. 봄에는 명나라에 갈 사신으로 임명되었으나 몸이 아파 사퇴했다가 의금부에 잡혀갑니다. 허균이 친구에게 “몸이 아파 사신 길을 못 가겠다고 했네. 살고 나서야 벼슬도 있는 것이지”하고 편지를 써 보낸 것만 보아도 핑계가 아니라 실제로 몸이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랬다가 가을에 나주목사로 임명되지만 곧 쫓겨나고, 11월엔 과거 시험 심사위원이 되었다가 조카와 조카사위를 뽑는 바람에 다시 의금부에 끌려가고, 12월에는 전라도 함열로 귀양을 가니 말입니다. 몸이 아파 사신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건 결코 죄가 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허균을 트집 잡았던 반대파들은 그조차 허균의 꾀병이라 몰아붙이고 임금을 무시한 죄로 벌을 주었습니다.
책을 벗 삼아
붓이란 오로지
시름이나 적고
즐거움은
돈으로 부르는 것인가.
세상의 정이란 것이
몹시도 삭막하여
내 길은 나날이
더 어렵기만 하다.
긴긴 밤
은하수도 어두워져
산마다
눈비 내려 차가우니
작은 등잔불만이
내 듬직한 벗
옛글을 비추어
환히 읽게 해 주는구나.
앞서 얘기했지만 허균은 중국에 사신으로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외국과의 무역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조선의 물건을 가져다 팔거나 중국의 물건을 사 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신들의 경우는 여비를 나라에서 모두 댈 수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물건을 가져가 팔아서 여비를 만들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자유 무역의 권리를 준 것이지요. 그래서 사신들은 오가면서 인삼 같은 우리의 특산품을 가지고 가 큰돈을 벌어오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허균은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있는 돈을 다 퍼부어 책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심지어는 집안의 돈을 다 긁어 가 몇 수레나 되는 책을 사 온 일도 있었답니다. 미국에 출장 간 사람이 책만 몇 십 상자 사 왔다고 생각해 봐요, 그것도 재산을 다 털어서!
손곡 선생님
머리가 온통
하얘질 때까지
손곡 선생은
시를 읊었네.
시마다
어찌 아름다운지
당나라 유장경도
저리 가라네.
지금 사람들은
겉만 보고서
어리석다
손가락질에 비웃지만
강물은
만고에 흐르리니
어찌 그것을
막을 수 있으랴.
손곡은 우수한 시인이었지만 서자 출신이라 벼슬길엔 나설 수가 없어서 평생을 가난하고 불우하게 보냈어요. 거기다 몹시 형편없는 모습으로 다녀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허균은 그런 바보 같은 세상에 일침을 놓으면서 손곡의 시가 강물처럼 오래오래 살아남을 거라 예언한 것이지요. 허균의 예언대로 손곡의 시는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허균은 손곡처럼 뛰어난 인재가 과거에 응시도 할 수 없는 조선의 제도를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그런 제도를 고치려고 애썼답니다. 하지만 손곡의 시를 인정하면서도 허균은 자신의 시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허균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허균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