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88995447031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04-10-20
저자소개
책속에서
현대로 올수록 필연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는데 비해 운명이라는 말은 잘 사용되지 않죠. 운명이라는 말은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에는 사용되지만 학문적인 맥락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론적인 맥락에서 '운명'이라고 하면 좀 촌스러운 느낌이 들죠? 왜 그런가?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과거에 우리가 우연이나 운명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어떤 복잡한 메커니즘의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곤 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필연이라는 개념은 점점 강화되고 우연이나 운명은 더 약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몰랐던 인과 메커니즘의 발견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인간의 감정의 경우,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과거에는 '아! 이것은 내 운명이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자연과학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그것도 일종의 '호르몬 작용'으로 볼뿐이죠. 운명이라는 말은 사랑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호르몬 작용이라는 말은 사랑의 생리학적 인과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춥니다. 서로 사물을 보는 방식이 전혀 다른 것이죠.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은 한 사물/사건의 인과 메커니즘과 의미?가치를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필연과 우연-운명-우발은 얼핏 보기만큼 대립적이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필연인 동시에 우연이죠.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런 우주에서 태어나 그런 법칙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운명입니다. 이렇게 보면 스토아 학파의 'fatum'은 필연이자 우연=우발이자 또 운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필연에 저항하고 자유를 찾죠. 그러나 우리가 찾는 자유가 실제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필연을 벗어날 수 없는가? 아니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이런 문제가 제기됩니다.
- 본문 170 ~ 171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