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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현대철학 일반
· ISBN : 9788961953986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08-28
책 소개
정동(affect)은 흔히 감정이나 기분과 혼동되지만, 단순한 심리적 상태를 넘어서는 힘이다. 정동은 언어나 의식, 재현 이전에 작동하며, 신체와 환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강도와 역량의 움직임을 뜻한다. 정동은 개인적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우리가 아직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몸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정동은 “무엇을 느끼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제기한다.
실제로 정동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감정’과 ‘정동’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동 연구의 목적이 정동이라는 개념을 특권화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정동 연구 지도제작』의 역자들은 설명한다. 다만 차이를 설명하자면, 감정은 정동이 특정한 형식 속에 고착된 상태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고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정동의 운동 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정동은 신체에 달라붙어 그 신체를 일정한 방향으로 ‘정향’시키며, 그 정향성이 규범적 질서와 일치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어떤 신체의 ‘몸 둘 바’가 결정된다. 사라 아메드가 『퀴어 현상학』이나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보여주었듯, 감정과 정동은 엄밀히 분리되기보다는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 그럼에도 굳이 구분하자면, 정동은 특정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회로로서, 경계와 위계, 관계를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흔히 우리는 감정을 ‘주체’의 내면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런데 정동은 고정된 내적 상태가 아니라, 주체와 주체, 곧 신체와 신체 ‘사이’에서 경계와 위계, 관계를 배열하는 힘이다. 그렇기에 정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공간적이고 지리적인 차원을 가진다. 동시에 이러한 배열은 시간 속에서 축적·변화하기 때문에 역사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동은 개인의 심리 상태를 넘어, 역사와 지리, 정치의 질서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다.
정동이란 무엇인가 2 : 스피노자-들뢰즈라는 계보?
보통 정동 이론의 계보를 묻는 질문에는 이미 하나의 전제가 담겨 있다. 흔히 정동 개념은 스피노자를 ‘원류’로 삼고, 그 철학적 계보가 들뢰즈에게로 이어진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스피노자는 정동을 ‘신체가 다른 신체와 만날 때 변화하는 역량’으로 정의했고, 들뢰즈는 이를 현대 철학 속에서 재구성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동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스피노자나 들뢰즈의 사상을 반복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동은 젠더와 인종을 비롯한 소수자 정치의 맥락에서,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필요에 의해 다시 호출되었다. 근대 사회에서 ‘인간’이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보편적인 존재로 상정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성, 퀴어, 흑인, 유색인종, 장애인, 빈곤층 등 이른바 ‘몫 없는 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정동, 곧 신체의 역량을 둘러싼 논의가 오히려 배제의 정치적 근거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 정동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따라서 정동 이론을 스피노자를 단일한 ‘기원’으로 삼는 수목적(樹木的) 구조를 가진 어떤 것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정동이라는 힘 자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소수자 정치의 맥락 속에서 다층적으로 호출되고 변형되어 왔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처럼 정동 이론은 단일한 철학적 전통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수자의 삶과 투쟁을 새롭게 사유하고, 이를 위한 학문과 실천의 영역을 갱신하도록 요청하는 방법론으로 발전해 왔다.
남태령 대첩과 정동
정동 연구는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발전해 왔다. 페미니즘, 퀴어 운동, 장애인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 다양한 소수자 정치의 장에서 정동 연구는 억압의 구조를 드러내고 저항의 감각을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특히 촛불 집회, 페미니즘 시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연대하는 움직임에서 정동은 집단적 에너지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정동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오가는 분위기·기류·몸의 반응 속에서 탄생한다. 말보다 먼저 몸이 움찔하고, 시선이 모이고, 숨이 고르며, 서로를 의식하게 만드는 현장의 공기다. 정동 연구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흐름을 누가 함께 움직이고 멈추는지, 즉 정치적 행동의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묻는다.
2024년 남태령 투쟁은 그 연결고리를 분명히 보여준다. ‘곧 진압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SNS에 뜬 짧은 글과 영상이 불안과 긴박함을 공유하게 했고, 사람들은 구호나 조직의 지시 없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돌봄과 안전의 장치를 만들었다. 택시기사는 자발적 셔틀이 되었고, 화장실에는 생리대·핫팩이 놓였고, 오픈채팅으로 필요한 물품이 모여 현장에 배분됐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스트리밍과 실시간 위치 공유, 배달 앱을 통한 음식과 난방버스 지원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한덩어리처럼 작동했다.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도착하자 농민들을 향할 뻔했던 경찰의 강경 진압 분위기가 주춤해졌다는 체감은 안도와 보호의 분위기를 키웠고, 그 공기가 더 많은 참여를 불러냈다.
이렇게 보면 정동은 정치의 ‘부산물’이 아니라 정치가 생겨나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서 퍼진 감정의 신호가 사람들의 현존(남태령에 나가겠다는 결정)을 낳고, 현장에서의 작은 실천(태워주기, 나눠주기, 이야기 들어주기)이 관계와 신뢰를 쌓는다. 그 누적이 곧 장소의 힘이 되고, 발언대의 이야기와 중계 화면을 통해 다시 공적 주목을 만들며, 제도 바깥에서도 상황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정동 → 결집 → 돌봄 → 가시화의 연쇄가 정치적 실천의 메커니즘이라는 점이 남태령에서는 뚜렷했다.
정동은 또 누가 정치의 주체로 보이는가를 넓힌다. 응원봉 아래 모인 ‘우리’ 속에서 중국계 이주민 2세, 성소수자, 지방대 학생, 여성 농민, 휠체어 이용자 등 서로 다른 삶의 자리가 얼굴을 얻었다. 이들은 익명성의 안전지대를 떠나 몸으로 말하기를 선택했고, 그 발화는 현장의 공기를 바꾸었다(두려움을 안도로, 분노를 다정함으로). 정동 연구는 이런 새로운 주체성의 출현을 포착함으로써, 대의제에 갇힌 정치의 범위를 넘어 관계 맺기와 돌봄, 즉각적 협업을 정치의 핵심으로 다시 배치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실천이 ‘일회적’이라는 의심에 정동 연구는 다른 답을 건넨다. 그날의 공기와 몸의 기억, 채팅방과 중계의 기록, 동선과 물품 배치의 노하우는 그 다음의 장면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인프라로 남는다. 정동은 길게 이어진 조직이 아닐 수 있지만, 다시 호출 가능한 감각과 기술로 축적되어 재등장한다. 그래서 정동 연구는 “무엇을 주장했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움직이게 되었나”를 설명하며, 정치의 지평을 사람들의 감응·돌봄·협업이 만들어내는 생활의 기술로까지 확장해 보여준다.
정동 연구와 감정 연구, 군중심리학, 정신분석학
정동 연구와 감정 연구, 군중심리학, 정신분석학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정동 연구는 기존의 학문적 전통과 단절하기보다는, 그것들과 긴밀히 맞물리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접근이다.
감정 연구는 주로 감정을 개인의 심리적 상태나 언어적으로 표현 가능한 경험으로 다룬다. 그러나 정동 연구는 감정을 그저 주체 내부의 반응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 뒤에 작동하는 역사적·지리적 맥락과 권력적 배열을 추적한다. 다시 말해 감정이 이미 형성된 ‘효과’라면, 정동은 그러한 효과를 가능케 한 배치의 힘과 과정에 주목한다.
군중심리학은 흔히 집단을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존재로 설명해 왔다. 반면 정동 연구는 군중을 단순히 “이성의 결핍”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정보와 이미지, 신체적 반응이 집단 내부에서 어떻게 순환하고 증폭되는지, 즉 정동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 자체를 탐구한다. 이로써 군중의 행동을 이해하는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정신분석학은 개인의 내면, 특히 무의식과 욕망의 구조에 집중해 왔다. 정동 연구는 이러한 개인적 차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사회적·정치적 지평 위에서 다시 사유한다. 즉, 개인의 내적 갈등이나 트라우마를 사회적 환경, 역사적 맥락, 신체 간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동 연구는 기존 학문들과 ‘차이’를 통해 독창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분석의 지평을 연다. 감정 연구, 군중심리학, 정신분석학이 놓치기 쉬운 지점, 즉 감정의 역사성과 지리성, 군중의 정동적 매개 과정, 개인과 사회의 상호 얽힘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동 연구는 다른 접근들과 경쟁하기보다, 그 틈새를 메우고 확장하는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한다.
정동 연구와 페미니즘, 장애학, 퀴어 이론
사라 아메드에 따르면 정동은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느낌들이 어떻게 특정 신체들에 달라붙는지를 살피는 데 유효하다. 예를 들어, 차별이나 증오의 대상이 정동의 순환과 달라붙음을 통해서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신체는 정동하거나 정동될 수 있는 역량을 다른 신체들과 비교하여 다르게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정동은 어떤 신체들이 이 사회에서 불공평하게 배치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정동 이론과 페미니즘, 장애학, 퀴어 이론의 만남은 여러 시너지 반응을 일으켰고 앞으로도 일으킬 것이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정동 이론을 통해 우리는 페미니스트나 퀴어에게 높은 확률로 달라붙어 있던 부정적인 느낌을 새로이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울해하고 분노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혹은 수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유통된 게이/퀴어 서사 등은, 이들이 부정적인 느낌을 “극복”해야 한다는 당위의 서사로 나아갔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을 갉아먹는 이 우울과 수치를 극복하고 소수자로서 행복해지고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동 이론은 이러한 방향성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 부정적인 느낌들을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여성이나 퀴어를 구성하는 요소로 적극적으로 인식하게 했다. 즉, 이 부정적 느낌 자체가 지니는 역동성과 생산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울하고 분노하는 여자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수치스러운 퀴어들이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퀴어 운동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퀴어 이론과 정동 이론의 만남은 성적 지향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넘어서서 인구학적이거나 화학적이고 분자적인 수준에서 퀴어함을 둘러싼 정치적인 배치를 사유할 수 있게 했다. 약물과 의학을 통해 성 정정을 할 수 있는 신체와, 그러한 이분법적인 성 정정을 거부하거나 할 수 없는 신체 사이에는 변용하고 변용될 수 있는(정동하고 정동될 수 있는) 역량의 위계가 생긴다. 이러한 위계는 인종이나 장애를 지닌 신체와 교차시키면 더욱 정교해진다. 정동 이론은 성적 인간의 형태를 지닌 개인의 신체의 범주를 넘어서서, 약물이 작용하는 미시적 단계에서부터 전 지구적인 정동적 위계를 바라볼 수 있는 거시적 단계까지 페미니즘, 장애학, 퀴어 이론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
문학, 예술과 정동 연구
문학 예술은 흔히 개별 인물의 감정과 그 재현을 다루는 영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동 연구는 연결성 자체에 주목하기에, 이러한 인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질문하게 한다. 가령 등장인물 한 명, 독자 한 명과 같은 주체를 특정하지 않거나, 창작 행위가 지니는 사회적 역량을 고찰하는 다른 방식들을 고려하게 한다. 즉 느낌을 보다 공적이며 집단적인 차원으로 바라보고, 문학 예술 작품 또한 단지 정적인 재현물(work)이 아닌 역동적인 객체(object)로 여길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시각은 인간, 작가, 주체 중심적 사고를 경계하며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비평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이 재현되지 않았는지, 혹은 재현되지 못했는지를 다시 질문할 수도 있고, 무언가를 재현하기를 거부하는 형식 실험도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정동 연구는 벽을 문으로 만드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학 예술 비평에 활용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젠더·어펙트연구소>의 활동과 『정동 연구 지도제작』
2018년에 설립된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는 젠더 연구와 어펙트(정동, affect) 연구를 접목해 새로운 연구 분야와 방법론을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정동 연구 지도제작』 역자들에 따르면 정동 연구는 이론적 토대에서 젠더 연구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 왜냐하면 두 연구는 모두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 공감, 관계성이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소는 정동을 하나의 보편적 경험으로 환원하기보다, 서로 다른 신체들이 맺는 다채로운 만남과 관계에 주목해 왔다. 다시 말해, 특정한 중심 이론으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정동의 양상을 탐구하고, 그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 연구소의 중요한 과제였다.
연구소 활동 과정에서 역자들은 알리 라라가 오픈 액세스 학술지 『아떼네아 디히딸』 특집으로 기획한 “Mapping Affect Studies”에 실린 일련의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이 글들은 정동 연구의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정동이라는 개념이 현실의 사회적·정치적 실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연구소에서 진행한 ‘젠더·어펙트 연구회’ 세미나 멤버들과 함께 논문들을 검토하고 토론했다. 그 결실이 『정동 연구 지도제작』의 번역 출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영어 중심의 지식 생산을 넘어 스페인어, 그리고 이번 한국어판까지 이제 『정동 연구 지도제작』은 세 개의 언어로 읽히게 되었다. 혹은 이 책의 엮은이 알리 라라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세 언어로 된 지도”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은 접근성을 넓히는 동시에 연구 생태를 다언어·탈식민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한국의 <젠더·어펙트연구소>가 축적한 세미나·번역·공동연구의 성과는 이 지도에 현장성을 부여한다.
각 글의 내용 소개
정동 연구 지도제작 (알리 라라 | 권명아 옮김·해제)
알리 라라의 글은 정동 연구와 사회과학 및 인문과학의 다른 관련 분야들 간 교차 지점을 탐색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학문 분야들과의 차이를 교차하는 탐구를 위해서 필자는 이른바 정동적 전회가 함축하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전제와 방법론적인 도전, 그리고 그것이 함의하는 정치성에 대해 살펴본다. 그리고 또한 이 특집에서 두 분야 즉 정동 연구와 페미니즘, 정동 연구와 장애학의 교차적 탐색이 누락된 문제에 대해서도 관련된 정황을 함께 검토하였다.
정동과 노동 (기예르미나 알토몬테 | 이지행 옮김·해제)
이 글은 후기 자본주의에서 정동과 노동이 서로 얽혀 있는 방식에 주목하는 이론적 접근들을 검토한다. 특히 정동 노동, 재생산 노동, 감정 노동, 친밀 노동의 개념을 살펴보며, 각 모델이 어떤 지점을 조명하고 또 어떤 지점을 은폐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다양한 형태의 정동 노동 간에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인식하면서도, 생산과 재생산의 경계,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경계가 재배치되고 있다는 점을 이들 모델의 공통된 핵심 주제로 강조한다. 노동 개념 안에 정동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자의 동의, 소외, 착취를 둘러싼 전통적인 논쟁과 범주들을 학자들이 다루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노동과 정동에 대한 통찰이 교차하는 지점은, 동시대 노동의 변화 그리고 정동적 투자와 자본주의적 노동 수탈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정치적 기획들 사이의 긴장과 정렬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도구를 제공한다.
정동과 인종 흑인성 (콜린 P. 애슐리, 미셸 빌리스 | 권두현 옮김·해제)
이 글은 정동과 인종에 대한 논의가 이미 흑인성과 반(反)흑인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정동 이론이 인종 문제를 다루고자 할 때, 선험적으로 제기해야 할 질문은 흑인 존재론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인종을 새로운 담론적 메커니즘을 통해 이론화하는 정동 이론의 다양한 작업들, 대인적·감정적 정동을 이론화하는 연구들, 그리고 인종, 정동, 어셈블리지를 생명정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연구들을 검토한다. 이어서, 정동을 역량으로 이해하는 들뢰즈적 유산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면서, 아프로-비관주의와 흑인 낙관주의 ― 즉, 흑인 존재론 ― 이 인종화된 역량의 물질화, 가치, 생산에 대한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생산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흑인성의 정동적 역량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이 연구는 정동 이론이 더 이상 인종을 배제하거나 초월할 수 없으며, 보편적이면서도 은폐되거나 표지화된 포스트휴머니즘을 향한 시도 역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야 함을 강조하는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정동 이론과 문학·예술 : 재현 사이와 재현 너머 (산드라 모야노-아리자 | 윤조원 옮김·해제)
이 글은 정동 이론과 문학·예술이 교차하는 지도를 재현의 질문을 다시 검토함으로써 그리고자 한다. 정동 이론은 재현의 문제를 매개의 논쟁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활기를 가져다준다. 이는 문학·예술 작품에 관해 두 가지 비평적 경향을 생산했다. 한편으로 학술 연구는 정동을 인지 과정의 과잉으로 간주하며 ‘재현 사이’에 머문다. 문학·예술 비평을 하거나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정교화하고자 할 때, 정동이 어떻게 그러한 과정을 재현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하고 확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론은 정동을 매개에서의 자율적 실체로 보고 ‘재현 너머’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때 정동은 인간의 인지를 정동할 뿐 아니라 그를 넘어서는 역량을 가진다. 이러한 관점은 정동을 역량을 지닌 새로운 실체로 여기기에 존재론적 질문을 중시하며, 개념을 따지기보다는 정동이 그 자체로 무엇이며 신체에 무엇을 하는가를 묻는다.
가라앉음, 퇴보성, 기계됨을 느끼기 : 퀴어 이론과 정동적 전회 (리우 웬 | 정다연 옮김·해제)
퀴어 이론과 정동적 전회의 만남은 세 가지 갈래의 정동적인 학문을 만들어 냈다. 퀴어 부정성, 퀴어 시간성, 그리고 기계적 몸으로서의 퀴어다. 이들은 특히 역사적 발전과 성 정체성에 대한 후기구조주의적 비판에 몰두했던 기존 담론과 결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각 갈래는 퀴어 이론과 정동 이론 양쪽에 각기 다른 분석적인 도전과 잠재성을 제시했다. 이 글은 이들을 각각 가라앉음을 느끼기, 퇴보성을 느끼기, 기계됨을 느끼기로 명명한다. 이 세 유형의 학문은 퀴어 몸이 정동되도록 하는 다양한 형식의 사회성과 강도의 수준을 묘사한다. 또한 문화적 과정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하고, 시간적인 차원에서 인식론을 전환하며, 유럽-미국 중심적 경험에 공간적 특권을 부여하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성적 존재론을 확장함으로써,퀴어 이론에 세 가지 고유한 방식으로 기여한다.
정동, 인지 그리고 신경과학 (토니 D. 샘슨 | 이지행 옮김·해제)
21세기의 대다수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인문학 역시 뇌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받았다. 개념적으로 이는 정신과 육체에 관한 데카르트적 구분이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의식/무의식의 이원성을 고수하는 것과 같은 이전 세기의 주요 선입견 중 일부가 새로운 종류의 신경학적 관계, 즉 감소된 정신 기능과 지각 불가능한 비의식의 지배력 사이에 새롭게 확립된 관계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신경학적 비의식이라는 이론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 포스트인문학에서 서로 다르게 정향된 두 가지 갈래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 논의는 한편으로 논쟁적인 비의식 개념을 재구성된 인지 이론의 틀 속에 통합하려는 시도들에, 또 한편으로는 정동 이론에 대한 신유물론 관점에서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목차
우리의 한국어판 서문 (알리 라라 / 권명아 옮김) 6
정동 연구 지도제작 (알리 라라 / 권명아 옮김) 23
옮긴이 해제 : 젠더·어펙트 연구 지도제작 64
정동과 노동 (기예르미나 알토몬테 / 이지행 옮김) 79
옮긴이 해제 : 정동 노동의 양가성 ― 자본과 자율의 이중운동 121
정동과 인종 흑인성 (콜린 P. 애슐리·미셸 빌리스 / 권두현 옮김) 133
옮긴이 해제 : 정동 개념의 전환과 흑인성의 이론화 ― 정동적 역량, 인종적 위계, 그리고 느낌의 정치적 배치 166
정동 이론과 문학·예술 ― 재현 사이와 재현 너머 (산드라 모야노-아리자 / 윤조원 옮김) 181
옮긴이 해제 : ‘매개’하는 지도 그리기 229
가라앉음, 퇴보성, 기계됨을 느끼기 ― 퀴어 이론과 정동적 전회 (리우 웬 / 정다연 옮김) 243
옮긴이 해제 : 퀴어 이론과 정동 이론의 마주침이 생성한 세 갈래의 비판적 사유들 285
정동, 인지 그리고 신경과학 (토니 D. 샘슨 / 이지행 옮김) 303
옮긴이 해제 : 「정동, 인지 그리고 신경과학」을 읽기 위한 안내 337
엮은이·글쓴이·옮긴이 소개 348
인명 찾아보기 353
용어 찾아보기 359
저자소개
책속에서
장애학과 페미니즘 없이 정동 이론은 이론으로서의 역량을 가질 수 없다. 장애학과 페미니즘 없이 정동 이론은 아무것도 아니다!
― 우리의 한국어판 서문
정동 이론의 방법은 무엇인가? 정동 연구에서는 경험적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또 이를 어떻게 분석하는가? 이 방법을 요령 있게 사용하는 지침서는 없는 것인가? 실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정동 연구에 그런 건 없다.
― 정동 연구 지도제작
한국에서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활동가들, 혹은 연구 활동가들도 정동 연구에 관심이 크다. 한국사회에서는 페미니즘, 젠더 연구, 퀴어 이론, 장애학, 비판적 인종 연구 등 소수자 연구가 학문 영역보다 정치적 활동의 영역에서 더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옮긴이 해제 : 젠더·어펙트 연구 지도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