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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교육학 > 교육에세이
· ISBN : 9788997206056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12-08-2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동그란 손 망원경 속에 들어온 배움의 시간들
‘남한산’이 우리에게 준 ‘특권’ ∥ 김성은
‘지금 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을 배우다 ∥ 정동녘
온몸으로 배우고 함께 달리다 ∥ 권새봄
치열했던 놀이의 흔적이 소중한 기억 ∥ 김대훈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한 학교 ∥ 이재경
자연이 주는 느낌 그대로 자유로운 삶을 찾아 ∥ 이정
세상 소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학교 ∥ 김찬울
에필로그
- PD수첩 취재로 본 남한산초등학교, 그리고 그 후의
저자소개
책속에서
‘남한산’에서 첫 수업은 모둠끼리 ‘이글루’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이곳이 마냥 천국인 줄 알고 좋아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남한산다운’ 수업이었다. 어떻게 해야 상상 속 그 아늑하고 완벽한 이글루를 만들 수 있을지, 각기 모둠들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스무 명 혹은 서른 남짓은 되었을까. 그 인원이 다섯 모둠 정도로 나뉘었던 것 같다. 준비해 온 반찬 통으로 눈을 퍼 담아 이글루를 만드는 모둠이 있었는가 하면(우리 모둠이 택한 방법이다.), 어떤 기막힌 모둠은 해변에서 모래성 쌓듯이 그냥 눈을 쌓아서 제법 집의 형태까지 갖추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상적이고 완벽한 이글루를 만든 모둠은 딱 한 모둠이었고, 그 모둠은 알맞은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 반찬통으로 눈을 퍼 담아 이글루를 완성했다. 이 모둠만 이글루를 완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딱 두 가지였다. 협동심, 그리고 인내!
나는 학교에 있는 모든 시간이 배움이었다고 단언한다. 치사하지 않게 이기는 법과 당당하게 지는 법은 그 어느 교과서 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술래가 되어 깡통 차기를 하면서 걷는 모습 하나, 눈동자의 깜빡임 하나 보고 그 친구가 누군지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시간만이 가능케 하는 것도 아니다. 놀이가 얼마나 중요하고 당연한 배움인지 알지 못하는 어른들은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정신 못 차린다고 한마디 한다.
그 후로 우리 반에서는 수업 시간에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단연 나 때문이다. 선생님의 질문에 유일하게 내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도 나 하나였고 질문 없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있다고 손든 아이도 나 하나가 유일했다. 처음엔 다른 친구들이 나를 잘난척하는 모범생이나 나대는 성격의 아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진짜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발표를 많이 하느냐는 거였다. 나는 그 질문에 당황했다. 왜냐고? 궁금하니까. 더 알고 싶으니까.
― 김성은, ‘남한산’이 우리에게 준 ‘특권’ ―
철이 일찍 들었다기보다는 일명 ‘착한 아이 증후군’이었다. 착 한 아이 증후군(The Good Child Syndrome)이란 어린이가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혹은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강하고도 두려운 마음이, 일 때문에 늘 바쁘신 부모님에게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감정이 나에겐 계속 있었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착한 아이처럼 되었다. 이런 나에게 나의 감정을 계속해서 물어봐 주시고 위로해 주셨던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나의 감정을 모른 채, 속인 채 살아왔을 것이다. 슬프거나 힘들 때는 울어도 되고 화날 때는 화내도 된다고 하시면서, 제가 울적해 보일 때마다 드라이브도 시켜주셨던 그런 김철수 선생님이 나에겐 너무나 기억에 남는 분이시다.
산속 아지트도 비슷했다. 뒷산에 선생님은 모르시는 곳에 우리들끼리 아지트를 만들어서 가끔 가서 우리끼리만 놀고 즐겼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는 왜 그렇게 노는 것이 재미있었을까? 또 방학 때 오두막을 만들었던 적도 있다. 초등학생이 그 커다란 오두막을 만들기란 정말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이걸 정말 우리들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겠느냐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중략> 이런 경험 등을 통해 같이 수고하고 같이 땀을 흘렸던 기억들이 우리의 유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서로 더 친밀해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 정동녘, ‘지금 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을 배우다 ―
그날부터 방학 때까지는 수업 같지 않은 수업들이 계속되었다. 교과서라고는 없었고 교실도 따로 없었다. 눈이 숨 막히게 내린 다음 날에는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이글루를 보다가 학교가 끝났고, 그 다음 날은 그 이글루를 따라 만들다 집에 가는 식이었다. 어느 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예 등교를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연극 공연은 조촐하게 우리만의 박수로 끝났다. 이게 무슨 학교인가 생각이 들 수밖에.
엄마는 딸이 드디어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는 사실이 참 기뻤던 듯했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난시와 근시가 있어 안경을 쓰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한산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시력이 2.0, 1.5까지 올라갔다. 그 이유에는 책에서 눈을 떼고 산을 보며 놀았던 것도 적잖이 있었을 것이다.
- 권새봄, 온몸으로 배우고 함께 달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