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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88997712120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4-01-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왕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기백 _죽음은 피할 수 없다
방탕한 생활에 빠진 소년 황제 _찬연히 빛나는 왕관을 쓴 여장한 사내아이가 그곳에 있다
바르바로사 신화 _황제는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지옥에 떨어진 교황 _내 목을 가져가라
캔터베리 대성당의 참극 _나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캐롤라인 왕비 사건 _여론은 압도적으로 왕비에게 동정적이었다
머리는 어디에 _머리를 가져간 범인은 누구인가,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
황제가 되지 못한 사나이 _그는 결국 날지 못했다
제2장 백성
로댕의 걸작 <칼레의 시민> _하나같이 누더기를 걸친 채 피곤에 지친 여섯 명의 남자들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 _사랑의 끈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은자 피에르와 민중 십자군의 전말 _나는 이와 같은 영예를 받은 자를 지금껏 본 적이 없다
50년 후에 남편의 유언을 전한 아내 _살아있는 동안 실현할 수 있을지 전혀 확신이 없었다
악덕 교황에게 도전한 남자 _이제 당신은 목자가 아니다, 더 이상 로마 교회의 대표자도 아니다, 당신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쾨페니크 사건 _제복은 개성을 감춘다
제3장 전쟁
로마를 격파한 완벽한 일전 _나쁜 짓을 하면 한니발에게 잡혀가요
신사의 나라 영국도 천 년 전에는 무법지대 _그것은 어느 왕국의 이변의 징조였다
무솔리니에게 패배한 시인 _놀라운 대중 선동가이지만 사령관으로서의 자질은 없다
발슈타트의 진실 _우리들은 신의 가호로 이 시련을 견뎠다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축구 경기 _어둡고 쓰라린 과거의 잔재는 아직도 남아 있고, 전쟁은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히틀러의 스승 _독일이여 깨어나라, 깨어나라!
제4장 개척
숨 가쁘게 살다 간 천재 수학자 _이 증명을 완성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
환시로 천국을 본 수녀 _나는 어느 천국의 모습을 보았다
변두리의 왈츠 _나는 참으로 노쇠한 시대에, 참으로 젊게 태어났다
아내의 명성에 가려진 남자의 기백 _자식 놈이 죽었습니까, 이번에는 대체 무엇을 꿈꿨던 것일까요
봉인열차 여행 _군중은 ‘만세!’를 외치며 그를 맞이했다
책속에서
이례적으로 민중들에게 사랑받았던 황제의 죽음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했고, 후에 ‘프리드리히 신화’가 탄생했다. 이 신화는 튀링겐 하르츠 산맥의 키프호이저 산의 동굴 속에서 부하와 함께 잠들어 있는 프리드리히 1세가 까마귀가 산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을 멈추면 부활해 독일을 종말에서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신화는 1250년, 프리드리히 1세 못지않게 영명했던 슈타우펜 왕조의 프리드리히 2세가 죽었을 때, 한 여성 예언자가 ‘황제는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 것에서 유래됐다. 그리고 중세 말기에 이 신화의 주인공이 프리드리히 1세로 바뀌었고, 나폴레옹 점령기에는 독일 해방에 대한 희망을 품고 널리 유포되었다. 이를 본떠 1941년 6월 22일,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했을 때의 작전명도 ‘바르바로사 작전’이라고 이름 붙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붉은 수염왕은 눈을 뜨지 않았지만 말이다.
‘바르바로사 신화’ 중에서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황실의 존재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로열패밀리의 소식은 국민들에게 공개되었고, 국민들이 국왕 일가에게서 이상적인 가족상을 보길 원했기 때문에 국왕은 이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4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동생 윌리엄 4세는 왕실의 이미지 제고 문제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1837년에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은 국민들에게 부군인 앨버트 공과 일심동체임을 계속적으로 어필했다.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비의 검소한 결혼식이 과연 다이애나비의 비극적 죽음과 찰스 황태자의 재혼으로 다시금 여론의 거센 비판 앞에 놓인 황실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캐롤라인 왕비 사건’ 중에서
고문과 함께 엄격한 심문으로 초췌해진 세 명이 처형장이 된 시뇨리아 광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1498년 5월 23일이었다. 사보나롤라는 십자가를 손에 쥐고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결국 세 명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공중에 매달린 사체 주변에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침을 뱉고 돌과 오물을 던졌다. 이윽고 교수대 아래에 장작이 쌓아올려지고 불이 점화되었다. 그토록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매료되어 환호성을 지르던 군중은 또다시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의 사체를 아르노 강에 던졌다고 한다.
기성 권위에 과감하게 도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막상 권력의 자리에 앉아 평소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커서 민중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덕스러운 민심을 사로잡기란 어려운 법이다.
‘악덕 교황에게 도전한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