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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88998153038
· 쪽수 : 422쪽
책 소개
목차
화 보
서 문. 2012년 개정판 / 2004년판
서 설. 한국 고대문화의 형성과 발전
| 구석기 | 한민족의 원류
1. 구석기 유적의 발견 / 2. 고대 인류화석의 출현
| 신석기 | 발해연안문명의 여명
3.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발생 / 4. 돌무덤의 시원과 홍산문화 / 5. 고인돌무덤 문화 / 6. 강화도의 고인돌무덤 / 7. 용 신앙의 탄생과 곡옥(曲玉) / 8. 지모신의 숭상 / 9. 부호문자 / 10. 갑골문화와 점복신앙 / 11. 동방의 예악
| 청동기 | 청동기 문화의 기원
12.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창조 / 13. 기하무늬 거울의 극세공 / 14.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동물문양 / 15. 진주 남강 옥방 유적
부여 문화의 발흥
16. 부여의 갑골 습속 / 17. 부여의 황금문화
고구려의 영광
18. 고구려 건국의 터전 / 19. 고구려의 산성 / 20. 길림성의 고구려 유적 / 21. 고구려 피라미드의 웅자(雄姿) / 22. 광개토대왕릉비의 웅혼 / 23. 안학궁의 장엄 / 24. 고구려의 장려한 건축예술
동방 회화의 금자탑
25. 고구려 고분 벽화의 극치 / 26. 불교회화의 완성 / 27. 씨름과 태권도 / 28. 마상무예 / 29. 사신도의 아름다움 / 30. 고구려의 유민과 성당(盛唐) 문화
동북아시아의 철과 무기
31. 대장장이 신과 제륜신 / 32. 동북아시아 최고의 마구
한강 유역의 백제
33. 서울 백제왕궁의 발견 / 34. 몽촌산성의 고구려식 백제토기
신라의 황금예술
35. 세계 최고의 왕관 / 36. 황금 귀고리의 영화 / 37. 신라문화의 ‘북방기원설’ 재론
발해의 건국
38. 발해-고구려의 계승 / 39. 발해의 향당
고려의 통일
40. 왕건릉의 발굴 / 41. 고려 통일의 터전-만월대
부 록
참고문헌 / 도판 수록 문헌 / 자료수집 및 출판에 협조해 주신 분과 기관 / 동양삼국 연표
저자소개
책속에서
최근[2010]에 카자흐스탄에서 출토된 청동단검을 발해연안에서 흔히 출토되고 있는 비파형청동단검[혹칭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조형(祖型)으로 보는 ‘북방전래설[시베리아기원설]’을 다시 들고 나왔는데[김정배 ; 「비파형동검과 훼도롭문화」], 저자는 의견이 다르다.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은 양날에 돌기처럼 생긴 곡인부(曲刃部)가 칼날(刃部)의 중앙에 있는데 반해 카자흐스탄의 청동단검은 곡인부가 자루부분(柄部) 쪽에 있다. 즉 인부를 장식한 것이 아니라 병부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발해연안식 청동단검의 형태와는 같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청동단검의 연대 문제인데, 이를 소개한 김정배 교수는 기원전 15~14세기의 ‘훼도롭(Fyodorov) 문화’의 소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가 확인한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에서 발행한 도록 “The Ancient of The Kazakh Altai”[2009, p.30, p.192]의 해설문에는 훼도롭 문화를 기원전 1000년기(紀) 전반기[B.C 999~500]에 존속한 문화라 하였다. 또한 김 교수가 기원전 15~14세기라고 주장한 청동
단검과 동일한 유형의 청동단검의 연대를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의 도록에서는 기원전 9~8세기로 편년하였다. 청동단검이 출토된 석곽묘나 석관묘를 훼도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일찍이 발해연안 대능하유역의 홍산문화에서 시작했던 동이족의 고유한 묘제이다.
우리나라 고인돌무덤은 그 수량과 특유의 무덤 구조, 형태의 다양성으로 인해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나라 고인돌무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무덤은 무려 2만 기가 넘게 전국적으로 발견되고 있어 그 숫자 면에서 세계 제일일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상 초기 국가 형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역사 유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북아시아 일대 청동기시대의 수장(首長)급들의 무덤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나 서슴없이 광개토대왕을 꼽을 것이다. 대왕은 18세의 나이로 고구려 제19대 왕에 등극하여 39세에 기국(棄國)할 때까지 22년 동안 재위하면서 고조선의 강역인 만주 일대를 회복하고 고구려가 200~300년 가까이 동북아에서 가장 강성하고 안정된 국가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그래서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이 즉위 2년[414]에 선왕의 큰 공덕을 기리기 위해 왕릉을 만들고 높이 6.39m의 거대한 비를 세워[414] 4면에 1,802자에 달하는 비문을 새겼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광개토대왕과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연구를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추진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재원의 확보와 연구 인력을 배양할 수 있는 연구센터 설립, 그리고 탁본의 구입 및 전시관 건립 등 연구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역사의 진리에 접근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저자는 자하(子夏)의 말처럼 일[역사연구]과 봉사[문화재보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일은 올해[2012]가 고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 붕어(崩御)한지 1,60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정부와 국가 박물관이나 관계 기관 등에 ‘광개토대왕 붕어 1,600주년 기념 특별전 및 심포지움’을 개최하자고 요청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한 일이다. 2014년에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1,600주년[414년 9월 29일]을 기념하는 일은 꼭 성사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