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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98697938
· 쪽수 : 358쪽
· 출판일 : 2021-03-31
책 소개
목차
주말여행 • 9
화염소녀(火焰少女) • 49
검은 바다에 나 홀로 • 117
붉은 고양이 흰 고양이 • 147
먹는다 • 191
아비(阿鼻) • 233
장거리 연애 • 273
리뷰
책속에서
요즘 너무 좀? 웃기시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요즘’이라니, 그게 정말 요즘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겨우 주말 오후의 드라이브 정도로 풀어질 문제라고 생각해?
인택은 언제나 그랬다. 그는 단 한 번도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적이 없었다. 연애시절 양다리를 걸치다 들켰을 때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것으로 무마했다. 정작 상대 여자와는 연락을 계속하면서. 그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당장 이 순간만 모면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카드 명세서에 나온 금액이 월급보다 더 많을 때, 인택은 카드를 꺾지 않고 현금서비스를 받았다. 현주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차는 이미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인택은 그제야 서프라이즈 주말여행을 가는 길이라고 실토했다.
“서프…… 뭐?”
현주는 제대로 되물을 기력도 없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주말…… 여행…….
쟤야 쟤,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오고도 몇 군데 살짝 덴 자국 말고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아이야. 어른들은 모두 죽었는데 혼자서 빠져나와 생명을 건졌다지? 굉장히 큰 불이었다면서, 집이 전소했다던데? 대놓고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거기다 큰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불쌍한 아이. 다행히 몸은 멀쩡하더라도 아마 평생을 고통스런 기억을 짊어지고 외롭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어울릴 만한 표정으로 병원 복도를 느리게 걸어 다녔다. 그러면 조금 전까지도 천박한 호기심으로 수다를 떨어대던 사람들이 쯧쯧 혀를 차며 가엾은 아이를 위해 가슴 아파해주었다. 그들의 싸구려 동정심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 지만, 덕분에 몸의 상처가 다 나은 뒤에도 정신과 치료를 핑계로 병원에서 조용히 머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우미야, 우리도 여행이나 갈래?”
“너까지 왜 그래. 너도 공연서한테 물들었어? 난 여행에 취미 없다. 이번에도 연서 결혼식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간 거지, 아무리 오성급 호텔이라도 내 집만 못해. 넌 여행 얘긴 한 번도 안 하다가 갑자기 웬 여행이야?”
“그냥.”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나도 카이로에 가볼까. 그 시장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그 크고 어지러운 시장에 가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먹고, 다른 어떤 곳에서도 팔지 않을 것 같은 기이한 물건도 만나고, 그것에 얽힌 이상한 이야기도 듣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지?
“참, 연서가 우리한테 엽서 보낸다던데 아직 안 왔더라. 너도 못 받았지?”
엽서는 오지 않았어. 너는 다이빙 사고로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