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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8742638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6-04-30
책 소개
목차
제1장 오대산의 학(鶴) • 007
제2장 무너진 하늘 • 049
제3장 언 땅 밑에서도 봄은 준비되고 있다 • 073
제4장 인연, 그 아름다운 고리 • 105
제5장 새로운 시작 • 153
제6장 혹한을 견뎌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 • 183
제7장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 • 223
제8장 해방, 그 공간 안의 불교 • 249
제9장 부촉, 이별의 준비 • 265
제10장 숭고한 작별 • 287
저자 후기 • 312
한암 선사 연보 • 314
저자소개
책속에서
겨울산은 평지보다 해가 짧다. 그래서 해질녘에 산길을 오르는 스님들의 발길은 더욱 바빠진다. 한암 스님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해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 깊은 산속에서도 두 길을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부처를 향한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을. 석양을 받으며 전나무 숲 속으로 멀어지는 스님의 뒷모습이 고고하고 강건하다.
한암 스님은 비바람만 겨우 피할 수 있게 얽어 놓은 토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정좌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12시간을 꼿꼿이 앉아 계신 동안 주위의 어둠은 스러지고 높고 낮은 산세가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벽이 된 것이다. (……) 보궁에서의 하룻밤은 칼날 위에 선 것 같은, 털끝만큼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결가부좌를 풀고 토굴 밖으로 나온 한암 스님은 편안한 자세로 포행을 했다. 한 발, 한 발, 보궁 앞을 걷던 한암 스님은 높고 낮은 산세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궁에서 내려왔다.
밤새도록 사륵사륵 내린 눈이 상원사 앞뜰을 하얗게 덮고 있다. 좌복에 앉아서 용맹 정진하던 스님들은 죽비소리를 듣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몸을 풀었다(좌선 후에 일어서서 걷는 것, 몸을 푸는 것을 경행(經行), 보행(步行)이라고 한다). 두 손을 비벼서 얼굴을 문지르기도 하고, 두 팔을 깍지 껴서 좌우로 몸을 돌리기도 하고, 다리를 펴서 무릎을 주무르기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푼 스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온 천지가 순백으로 변해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은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은 청정무구 그 자체였다. (……) 불기 2953년(1926년) 병인년 새해가 서설과 함께 찾아왔다. 해가 바뀌는 날이라 스님들은 용맹정진으로 밤을 새웠다. 그래서 참선을 끝내고 예불을 드리게 된 것이다. 스님들은 새벽예불을 드리고 곧바로 조실로 갔다. 한암 스님께 세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가사장삼을 수한 8명의 스님들이 자리를 잡고 서자 한암 스님도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세배 받을 차비를 하였다.
“조실스님, 세배 올리겠습니다. 올해도 법체 강령하십시오.”
선임수좌가 이렇게 말하며 세배를 하자 다른 스님들도 같은 말을 하며 세배를 했다.
“우리가 중으로 살고 있는 것은 부처님 지혜에 다가가기 위함일 테니, 공부가 익어가도록 노력하기 바라네.”
한암 스님은 합장으로 세배를 받으며 간곡하게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