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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25594291
· 쪽수 : 800쪽
· 출판일 : 2015-07-15
책 소개
목차
Prologue
맹수의 침실에 초대받다
만월의 밤
서로의 자리
Interlude 오시리아
징조
Interlude 제라온
당신의 세계
Peripeteia
외전 - 희구希求
2권
재회
모래 위의 평온
불안의 이름
Monologue 소담
모래꽃이 피다
최후의 결전
선택이 낳은 것
Hidden Page
Denouement
외전 - 언약의 밤
외전 - 전대, 소담의 로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너는 돌아갈 테지.”
“어, 아마도?”
쉬운 물음이 아니었는데 대답은 너무 쉽게 나온다. 진은 그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빤히 응시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가 들통난 데 대한 놀람이나 당황 따위는 어느새 찾아볼 수가 없어 그는 느낀 적 있었던가 싶도록 묵은 감정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하지만 더는 상관없다.
진은 그녀의 콧등에 입을 맞췄다. 지금 아무리 이 여자를 안고 또 안아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안다. 천 아래에 닿는 온기를 힘주어 안고서 그 또한 편히 몸을 기댔다.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닌가. 진이 자세를 편하게 잡는 것을 확인한 윤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가상 공간에서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체력 소모가 심해서 좀 자고 싶었다.
얼마 후, 규칙적인 숨소리가 흐르자 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이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내키면 잠을 청했다. 그는 감긴 눈꺼풀과 살짝 벌려진 입술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깰 법도 하건만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어쩐지 픽, 웃음이 났다. 천으로 가려지지 않은 살결을 음미하듯 감상하다가 그 귓가에 입술을 댔다. 검은 속눈썹이 잠시 흔들린다 싶었으나 이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라앉는다. 그는 작은 숨을 뱉어 귓가에 속삭였다.
“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년의 장난 때문이라. 아마 그 빌어먹을 년이란 윤이 있던 세계의 다른 인간을 말하는 것이겠지. 마음만 내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겠는가. 아마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있을 것이다. 아직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거야 차차 알아 가면 될 문제니까 상관없다. 진은 그녀를 놓아주고 소파를 빠져나와 창가의 커튼을 젖혔다. 창밖에는 기운 달이 나무 끝에 걸려 있었다. 그 모양을 창 위로 더듬으며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너의 세계를 부숴서라도.”
- 1권
“나를 어떻게 부른 거야?”
“말했지 않나. 내가 부르니까 곧 올 거라 생각했다고.”
“굳이 사흘 전 상황을 반복하고 싶진 않아.”
윤은 그렇게 말하고서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서로 피할 것 없는 두 개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맞붙는다. 등받이에 기대고 있는 중에도 진의 시선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는다. 결국 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른다고 불러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당신은 내 세계에 간섭할 수 없어. 아니, 없어야 해. 그런데 당신은 상위 세계의 존재인 나를 이리로 불러냈지.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야?”
“이미 말한 그대로다, 윤.”
노을이 비쳐 붉게 물든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말을 꺼냈다. 윤은 뭐라 대꾸하는 대신 다시 기다렸다. 막 타오르는 석양에 짙어진 머리칼은 곱게 빗어 다듬은 맹수의 갈기처럼 찬란했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사막의 왕, 상상이 빚어낸 가장 완벽한 피조물.
그의 손이 윤의 얼굴을 가만히 매만졌다. 선을 타고 움직이는 손끝이 새삼스레 윤의 마음까지 더듬는다. 윤은 그 행동 또한 하나의 대답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은 그녀의 턱에 다다른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너를 불렀을 따름이다. 계속해서, 네가 사라진 후 조금도 쉬지 않고. 그래, 네 말은 분명히 옳다. 나는 하위 세계의 인간. 본디라면 상위 세계에 간섭할 수 없는 게 맞지.”
상위 세계와 하위 세계를 입에 담는 그 눈에는 잠깐의 흔들림도 없었다. 윤은 그 사실에 미약하게 감탄했다. 이렇게나 강한 사내다, 제가 한갓 생각 속의 존재라는 것을 알아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과 이 세계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도 스스로 군림하는 오만한 지배자.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얽매여 포기하기엔 너무 절박했다.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 윤.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고, 절망에 절망을 느꼈다. 너와 나의 세계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네 세계에서는 허깨비에 불과할 나를 수백, 수천 번 되짚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홀로 침잠하던 끝에 드디어 결론을 내었다.”
격정도, 흥분도 없는 목소리가 담담하게 떨어졌다.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깊은 물 속이 파도에 구애받을 것 없이 잔잔하듯 고요한 목소리였다.
“당연한 모든 것을 그냥 버리기로 했다. 생각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세계의 법칙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윤, 너를 되찾는 것뿐이지 않나. 그리하여 그저 염원했다. 너를, 윤을, 내 세계의 창조주를. 대단한 주술도, 진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너를 내 곁으로 불러오겠노라 염원했다.”
미미하게 휜 눈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네 세계를 부숴서라도.”
- 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