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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수서 식화지·형법지

[큰글씨책] 수서 식화지·형법지

위징, 영호덕분 (지은이), 권용호 (옮긴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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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수서 식화지·형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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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큰글씨책] 수서 식화지·형법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중세사(위진남북조~당,송)
· ISBN : 9791128857294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21-07-28

책 소개

국내 최초의 수나라 역사서, ≪수서≫. 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다.

목차

권24 지 제19(志第十九)
식화(食貨)

권25 지 제20(志第二十)
형법(刑法)

부록 : ≪수서(隋書)≫ 전체 구성과 전체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위징 (지은이)    정보 더보기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이다. 자는 현성(玄成)이고, 거록군(巨鹿郡) 하곡양현(下曲陽縣) 사람이다. 일찍이 수(隋)나라의 위공(魏公) 이밀(李密)을 따라 수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당(唐) 고조(高祖) 무덕(武德) 원년(618년)에 당나라에 귀순했다. 정관(貞觀) 원년(627년)에 간의대부(諫議大夫)·비서감(秘書監) 등을 지냈고, 고적(古籍)을 정리하고 ≪수서(隋書)≫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후에 시중(侍中)·태자태사(太子太師)에 임명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직언을 잘했고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태종(太宗)을 보좌해 정관지치(貞觀之治)를 이룩했다. 정관 17년(643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수서≫를 비롯해 ≪정관정요(貞觀政要)≫·≪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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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덕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당나라 초기의 대신이자 사학자다. 자는 계형(季馨)이고, 의주(宜州) 화원(華原) 사람이다. 문학과 역사를 두루 섭렵했고 글을 잘 지었다. 수나라 말에는 약성현령(藥城縣令)으로 있었다. 당 고조 이연(李淵)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에게 귀순했고, 예부시랑(禮部侍?)·태상경(太常卿) 등을 지냈다. 당 고조에게 양(梁)·진(陳)·북주(北周)·북제(北齊)·수(隋)나라의 정사를 편찬할 것을 처음으로 주청했고, 직접 ≪주서(周書)≫의 편찬을 맡기도 했다. 당 고종(高宗) 이치(李治) 건봉(乾封) 원년(666년)에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작으로는 ≪오대사지(五代史志)≫·≪태종실록(太宗實錄)≫·≪능연각공신고사(凌煙閣功臣故事)≫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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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국 고전 문학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역서가 대학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와 세종도서(학술부분)에 네 차례(2001년, 2007년, 2018년, 2020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에 한 차례(2024년)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중국 문학의 탄생》, 《아름다운 중국 문학》,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 있고, 역서로는 《초사》, 《장자내편 역주》, 《서경》, 《한비자 1~3》, 《경전석사》 등이 있고, 중국의 정사 《수서》를 13권으로 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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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개황 13년(593년), 황제는 양소에게 도성을 나가 기주(岐州) 이북에 인수궁(仁壽宮)을 지을 것을 명했다. 양소는 산과 골짜기를 메워 큰 누대와 높은 궁실을 지었다. 노역이 가혹해 상당수의 정부(丁夫)가 사망했다. 과로로 쓰러진 사람들은 구덩이에 밀어 넣어 매장한 후, 흙과 돌로 덮어서 그 위를 평지로 만들었다. 죽은 사람을 만(萬)으로 헤아렸다. 궁전이 완성되자 황제가 직접 행차했다. 당시 마침 여름이라서 죽은 사람들이 길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양소는 이들을 전부 불태워 없앴다. 황제는 이를 알고 언짢아했다. 새로 지은 궁전에 들어가 들러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또 양소를 충신이라고 말했다.


관리들은 법이 두려워 구휼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더욱 어려움에 처했다. 처음에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가 점차 나뭇잎을 먹었다. 나무껍질과 나뭇잎을 다 먹고 나면, 흙을 삶거나 볏짚을 가루로 빻아 먹었다. 이후에는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


(북제 문선제) 천보(天保) 6년(555년) 이후, 황제는 결국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잔혹하고 폭압적인 짓을 일삼았으며, 술주정을 부리며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발설했다. 큰 솥, 긴 톱, 가루로 만드는 방아 같은 형구를 만들어 뜰에 늘어놓았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친히 사람을 찢어 죽이거나 좌우의 시종에게 명해 잘게 저며서 먹게 하는 것으로 만족을 얻었다. 당시 상서복야로 있던 양준언(楊遵彦)은 어사(御史)에게 먼저 사형수를 결정하게 한 다음 이들을 의장대 안에 배치토록 했다. 황제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면 즉시 끌고 나와 그 명에 부응했다. 이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죄수’라는 의미에서) ‘공어수(供御囚)’라고 했다. 3개월이 지나도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사형을 면해 주었다. 황제가 금봉대(金鳳臺)에 행차해 불계(佛戒)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사형수를 불러내어 대자리를 날개 삼아 뛰어내릴 것을 명하고, 이를 ‘방생(放生)’이라 했다. 사형수들이 떨어져 모두 죽자, 황제는 웃으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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