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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수서 식화지·형법지](/img_thumb2/9791128857294.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중세사(위진남북조~당,송)
· ISBN : 9791128857294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21-07-28
책 소개
목차
권24 지 제19(志第十九)
식화(食貨)
권25 지 제20(志第二十)
형법(刑法)
부록 : ≪수서(隋書)≫ 전체 구성과 전체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개황 13년(593년), 황제는 양소에게 도성을 나가 기주(岐州) 이북에 인수궁(仁壽宮)을 지을 것을 명했다. 양소는 산과 골짜기를 메워 큰 누대와 높은 궁실을 지었다. 노역이 가혹해 상당수의 정부(丁夫)가 사망했다. 과로로 쓰러진 사람들은 구덩이에 밀어 넣어 매장한 후, 흙과 돌로 덮어서 그 위를 평지로 만들었다. 죽은 사람을 만(萬)으로 헤아렸다. 궁전이 완성되자 황제가 직접 행차했다. 당시 마침 여름이라서 죽은 사람들이 길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양소는 이들을 전부 불태워 없앴다. 황제는 이를 알고 언짢아했다. 새로 지은 궁전에 들어가 들러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또 양소를 충신이라고 말했다.
관리들은 법이 두려워 구휼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더욱 어려움에 처했다. 처음에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가 점차 나뭇잎을 먹었다. 나무껍질과 나뭇잎을 다 먹고 나면, 흙을 삶거나 볏짚을 가루로 빻아 먹었다. 이후에는 사람이 사람을 먹었다.
(북제 문선제) 천보(天保) 6년(555년) 이후, 황제는 결국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잔혹하고 폭압적인 짓을 일삼았으며, 술주정을 부리며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발설했다. 큰 솥, 긴 톱, 가루로 만드는 방아 같은 형구를 만들어 뜰에 늘어놓았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친히 사람을 찢어 죽이거나 좌우의 시종에게 명해 잘게 저며서 먹게 하는 것으로 만족을 얻었다. 당시 상서복야로 있던 양준언(楊遵彦)은 어사(御史)에게 먼저 사형수를 결정하게 한 다음 이들을 의장대 안에 배치토록 했다. 황제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면 즉시 끌고 나와 그 명에 부응했다. 이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죄수’라는 의미에서) ‘공어수(供御囚)’라고 했다. 3개월이 지나도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사형을 면해 주었다. 황제가 금봉대(金鳳臺)에 행차해 불계(佛戒)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많은 사형수를 불러내어 대자리를 날개 삼아 뛰어내릴 것을 명하고, 이를 ‘방생(放生)’이라 했다. 사형수들이 떨어져 모두 죽자, 황제는 웃으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