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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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성 낙양 출신으로 당나라 초기에 주로 활동했던 승려다. 속성은 진(陳)이고 이름은 위(褘)다. 13세에 낙양 정토사에서 출가했으며, 《열반경》·《구사론》 등을 공부하여 중국 법상종 및 구사종의 시조가 되었다. 627년에 산스크리트 원전을 배우기 위해 인도로 가서 거의 3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불학을 연구하고 돌아와 불경을 번역하여 74부 1335권의 번역서를 냈다. 삼장법사(三藏法師)로서 《대당서역기》라는 인도 기행서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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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측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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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승려로서 법호는 문아(文雅)다. 3세에 출가하고 15세에 당나라로 가서 유식학을 배웠다. 당나라 태종으로부터 도첩을 받아 원법사(元法寺)에 기거하며 불학을 연구하여 고금의 논장(論藏)에 통달했다.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와 경전 해석의 문제를 두고 대립했으며, 정확한 불전 해석을 지향했다. 신라의 왕이 그의 귀국을 종용했으나 측천무후가 그를 존경한 나머지 허락하지 않아 마침내 당나라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84세에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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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습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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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漢譯)자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은 범어 쿠마라지바(Kum?raj?va)를 음사한 말로 구마라습, 구마라십, 구마라집이라고 표기해 왔다. 고대 인도 구차국(龜玆國) 출신으로 명문 귀족 집안에서 아버지 구마염(鳩摩炎, Kum?r?yana]과 어머니 기바(耆婆, J?va)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구차국 왕의 누이동생이었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출가해 아버지의 고향인 서역(西域) 카슈미르 야르칸드에서 대승(大乘)·소승(小乘)을 두루 배우고 돌아와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그의 명성은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중국 후진(後秦) 시대 장안(長安)에 와서 약 300권의 불교 경전을 번역한 역경가로 알려졌지만 삼론종(三論宗)·성실종(成實宗)의 사상 토대를 마련한 불교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를 최초의 삼장 법사(三藏法師)라 불렀으며, 이후 250여 년 후 현장(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삼장이 등장했다. 구마라습은 현장과 더불어 2대 역경가(譯經家)로 꼽히며, 또한 진제(?諦), 불공(不空)과 함께 4대 역경가로 꼽기도 한다. 한때 384년 쿠차로 쳐들어온 중국 후량(後?)의 장군 여광(呂光)의 포로가 되기도 했으나 후에 후진의 황제 요흥(姚興)에게 국사(國師)로 봉해지기도 했다. 그의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차이가 있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413년에 70세로 입적했다는 설에 의거해 344년에 태어나 413년에 입적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그가 번역한 경전으로는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 《대지도론(大智度論)》,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 《십송율(十誦律)》,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 《성실론(成實論)》 등이 있고, 《마명보살전(馬鳴菩薩傳)》,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제바보살전(提婆菩薩傳)》 등 전기류도 번역했다. 구마라습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하고 후에 당대(唐代)에 와서 현장이 번역한 것을 신역(新譯)이라 했다. 구마라습이 《금강경》을 번역한 해는 402년이었다. 한역(漢譯) 육본(六本) 중 최초의 번역이었다. 이어 보리유지가 509년에 번역했고, 진제가 562년에, 급다가 590년, 현장이 663년, 의정이 703년에 번역했다. 구마라습과 현장이 번역한 시대 차이는 260여 년에 이른다. 여섯 명의 번역가 중 네 명은 인도 출신으로 중국에 와서 번역했고, 현장과 의정은 중국 사람으로 인도에 가서 범어를 공부하고 와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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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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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북조 때 승려로 중국 선종의 개조(開祖)다. 남인도 파사국(波斯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반야다라(般若多羅)의 법을 계승했다. 달마라고도 하며, 도법(道法)으로 번역된다. 중국으로 가서 양무제(梁武帝)를 만난 다음 숭산의 소림사로 들어가 9년 동안 면벽(面壁)을 하고 청정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2조인 혜가(慧可)에게 선법을 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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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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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송계도인(松溪道人)이라는 아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방외(方外)의 취향을 지녔던 유지불(儒之佛)로서 유불(儒佛)을 섭렵한 인물인 듯하다. 원나라 당원(唐元)의 《균헌집(筠軒集)》 권4에 〈송계도인가(松溪道人歌)〉가 실려 있고, 명나라 여곤(呂坤)의 《신음어적(呻吟語摘)》 권하 〈외편(外篇)〉에 ‘무구자’라는 기록이 보여 원나라와 명나라 이전의 인물로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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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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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안전(案前)에서 《천자문》을 읽던 유아 시절, 한문 교리 경전을 읽던 학창 시절, 《한문학사》를 접하고 매료된 학부 시절이 한문과 인연을 맺고 학문을 하게 된 동기다. 교직과 학문의 갈림에서 열망은 고학(苦學)의 길을 택해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리고 과외(課外)의 한문 및 불전(佛典) 연수 과정에서 은사들의 학은을 입은 것이 학문을 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학위를 받기 전부터 줄곧 공부하고 강의하고 연구하고 저술하면서 진지한 학문 자세를 유지했다. 학문의 즐거움을 성찰하고 절충하는 일상 속에서 정일(精一)한 자신(自新)의 학문을 추구하며 고전을 참구(參究)하는 무외정사(無外精舍)의 서안(書案)을 지키고 있다. 연세대·강원대·경찰대·공주교대 등에 출강했고, 연세대 국학연구원·연세대 철학연구소 등에서 활동을 했으며,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다. 《대학장구상설》·《논어집주상설》·《청주판 명심보감》 외에 다수의 번역서와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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