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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금강경 강해](/img_thumb2/9791173078569.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91173078569
· 쪽수 : 287쪽
· 출판일 : 2025-02-28
책 소개
목차
서문
자서
금강경
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6. 정신희유분(正信稀有分)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2.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부록
천친(天親)의 27단의(斷疑)
무착(無着)의 18주(住)
미륵(彌勒) 80행 게(八十行 偈)
해설
한역자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여법하게 받아 지니다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이 무엇이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경은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닐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 부처가 반야바라밀이라 말하는 것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을 설한 것이 있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법을 설하신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 대천세계에 먼지 티끌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먼지 티끌은 먼지 티끌이 아니므로 먼지 티끌이라 하며, 여래가 말한 세계도 세계가 아니므로 세계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32가지 신체의 모습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32가지 신체의 모습으로는 여래를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32가지 신체의 모습은 곧 모습이 아니므로 32가지 모습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목숨을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네 구절만이라도 익혀 지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하면 이 사람의 복이 더욱 많으니라.”
第十三 如法受持分
爾時에 須菩提이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當何名此經이며 我等이 云何奉持리이까 佛告須菩提하시되 是經은 名爲金剛 般若波羅蜜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持니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佛說般若波羅蜜은 則非般若波羅蜜이요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所說法不아 須菩提이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如來無所說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三千大千世界 所有微塵이 是爲多不아 須菩提言하되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諸微塵은 如來說非微塵일새 是名微塵이니 如來說世界도 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見如來不아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으로 得見如來니 何以故오 如來說이 三十二相은 卽是非相일새 是名 三十二相이니이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 善女人이 以恒河沙等身命으로 布施하고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여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甚多니라
해설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하게 수지한다는 것은 정법(正法)을 바로 실천한다는 것이다. 수보리가 경의 이름을 물으매 ‘금강반야바라밀’이라 일러 주고는 다시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했다.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닌 반야바라밀경을 잘 받들어 지니라는 부처님의 분부인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불교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는 《금강경》의 사상(思想)을 즉비 사상(卽非思想)이라고 표현했다. ‘무엇이 무엇이 아니고, 이름이 무엇이다’라는 논리는 《금강경》 전문에 걸쳐 여러 차례 나온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이름이 중생’이라는 등의 표현이 곧 개체 사물의 이름을 들어 놓고 그것을 부정해 버리는 논리다. 이를 ‘즉비 사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역시 상을 부정하는 말로, 사물에 대한 관념적 고집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일 뿐, 어느 것도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경도 경이 아니라는 말은 당연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은 단순히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또한 지식의 내용도 아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을 낳는 모체가 되는 경으로 반야 자체를 가리킨 것이다. 금강과 같이 견고해 번뇌를 끊고 무명의 어리석음을 부수는 지혜덩어리가 바로 경이다. 이것은 모든 관념과 지식의 경계를 초월해 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무분별지(無分別智)라 말하기도 한다. 누구나 본래 갖추고 있는 각성(覺性)으로 일체의 상을 여읜 공적(空寂)한 것이다.
모든 법이 공하다면 모양을 드러낼 수 없고 또 공한 법이 이름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수보리는 경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부처님은 금강반야바라밀이란 이름으로 받들지니라 하시면서도 이름이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이라는 말씀을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라 하셨다. 또 먼지 티끌이 먼지 티끌이 아니고,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는 말씀도 세계를 구성하는 먼지 티끌과 그것으로 이루어진 땅덩어리가 공의 이치로 보면 부정되어 한낱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름이란 사람이 쓰는 언어를 통해 방편으로 붙인 것이므로 모두가 가명이다. 진리의 본체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사실인즉 소용없는 일이다. 말을 떠나 있는 자리를 말로써 나타내는 것은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그러나 부득이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해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진여를 이언진여(離言眞如)와 의언진여(依言眞如)로 구분해 설명했다.
모든 사물의 진상(眞相)은 감각적인 모양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부정하고, 비어 공(空)해진 모양을 초월한 실상을 분별을 떠난 무분별의 세계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것이 《금강경》 설법의 중심 요지다.
법을 설해도 설한 바가 없다는 말씀은 오히려 부처님 설법의 참뜻을 더욱 높여 법문의 수승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