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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 시선

왕유 시선 (큰글씨책)

왕유 (지은이), 박삼수 (옮긴이)
  |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06-15
  |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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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 시선

책 정보

· 제목 : 왕유 시선 (큰글씨책)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30417318
· 쪽수 : 136쪽

목차

편년시(編年詩)
진시황릉을 찾아서 ·················3
9월 9일 고향의 형제들을 그리며 ···········5
도원행 ······················7
식 부인 ·····················12
하북성 성루(城樓)에 올라서 ············14
정주에서 묵으며 ·················16
이별 ······················19
기수(淇水) 가의 전원 풍경 ·············22
서늘맞이 ····················24
숭산으로 돌아가며 ················27
변각사에 올라서 ·················29
종남산 별장 ···················31
종남산 ·····················33
백원와 ·····················35
반 첩여 ·····················37
노상(盧象)과 함께 최흥종(崔興宗)의 숲 속 정각(亭閣)을 찾아서 ··39
콩새 ······················41
서시(西施) ····················42
늦은 봄날 규중(閨中)의 상념(想念) ·········45
산속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송별하며 ·········47
안서로 출사(出使)하는 원이를 송별하며 ·······50
그리움 ·····················52
≪망천집≫ ···················54
머리말을 덧붙임 ···············54
맹성요 ···················56
문행관 ···················58
녹채 ····················59
목란채 ···················60
궁괴맥 ···················61
유랑 ····················62
난가뢰 ···················64
백석탄 ···················65
죽리관 ···················66
신이오 ···················67
망천에서 한거(閑居)하며 배적에게 ·········68
여흔과 배적의 방문을 받고 ·············70
배적의 작은 누대에 올라서 ·············72
화감사(化感寺) 담흥상인의 산원(山院)을 찾아서 ···74
장마 진 망천장에서 ················76
재미스레 망천 별장에 적다 ·············78
산장의 가을 저녁녘 ················80
전원의 즐거움 ··················82
남전산 석문정사 ·················85
산중에서 ····················88
망천 별장을 떠나며 ················89
초가을 산중에서 ·················91
장 소부에게 ···················93
가을밤에 홀로 앉아 ················95
보리사에 갇혀 있으며 배적에게 ··········97
흰 눈 내린 겨울밤 호 거사의 집을 생각하며 ·····99

미편년시(未編年詩)
위수(渭水) 가의 농가(農家) ············103
송별 ······················105
날씨 갠 후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107
불볕더위에 허덕이며 ···············109
근위병의 아내 ··················112
향적사를 찾아서 ·················114
봄날의 산사(山寺) ················116
우공곡(愚公谷) ·················118
농가(農家) ···················120
황보악의 운계(雲谿) ···············122
새 우는 산골 개울 ··············122
연꽃 만발한 뱃도랑 ·············124
가마우지 나는 제방 ·············126
부평초 가득한 못 ··············127
홍모란 ·····················128
잡시 ······················130
눈앞의 경물(景物) ················131

해설 ······················133
지은이에 대해 ··················137
옮긴이에 대해 ··················140

저자소개

왕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불 왕유는 시선 이백, 시성 두보와 함께 성당(盛唐) 시단의 3대가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고전 문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대시인이다. 왕유의 자(字)는 마힐(摩詰)이고 하동(河東) 포주(蒲州) 사람으로, 상서우승(尙書右丞)을 지낸 적이 있어 흔히 ‘왕 우승(王右丞)’이라 일컬어진다. 당(唐)·무후(武后) 장안(長安) 원년(701)에 태어나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761)에 향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일생 동안 무후, 중종(中宗), 예종(睿宗), 현종(玄宗), 숙종 등 다섯 제왕의 시대를 살았다. 왕유는 중소(中小) 관료 집안 출신으로, 유년 시절부터 아주 총명해 아홉 살 때 이미 글을 지을 줄 알았다고 하며 열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나 서경(西京) 장안과 동도(東都) 낙양을 오가며 사회 진출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열아홉에 경조부시(京兆府試)에 응시해 해원(解元) 급제했다. 개원 9년 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진사에 급제했고, 곧 태악승(太樂丞)에 임명되면서 벼슬길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같은 해 가을, 수하의 예인(藝人)들이 오직 황제를 위해서만 공연할 수 있는 황사자무(黃獅子舞)를 사사로이 공연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濟州) 사창참군(司倉參軍)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개원 23년(735) 왕유는 마침내 장구령의 천거로 우습유(右拾遺)를 제수받고 낙양으로 가서 부임했으며, 개원 24년 10월에는 현종을 따라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왕유의 정신적·정치적 지주였던 현상(賢相) 장구령이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시기와 모함으로 파면되었고, 이듬해 4월에는 또 형주장사(荊州長史)로 좌천되고 말았다. 왕유는 감찰어사(監察御史)부터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등의 벼슬을 오가다가 개원 29년 봄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 천보(天寶) 원년 좌보궐(左補闕)에 오르며 다시 입경했고 늦어도 천보 3년(744)에는 남전현(藍田縣)의 망천(輞川) 계곡에 별장, 즉 ‘망천장(輞川莊)’을 마련해 역관역은의 후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천보 15년에 안녹산 반군의 포로가 될 때까지 여가나 휴가 때면 으레 망천 별장으로 돌아와 풍경을 즐기며 유유자적했다. 천보 9년(750) 봄, 50세의 왕유는 모친상을 당해 망천으로 돌아갔고 복상(服喪)하며 2년간 은거했다. 거상(居喪) 기간이 끝난 천보 11년 봄, 다시 입조해 이부낭중(吏部郞中)을 제수받았으며, 같은 해 이부가 문부(文部)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문부낭중을 지냈다. 천보 14년(755)에는 다시 종오품상의 급사중(給事中)으로 옮겼는데, 그해 11월에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다. 천보 15년 6월, 안녹산 반군이 동관(潼關)을 함락하고 급기야 서경 장안으로 입성하자 현종(玄宗)은 부랴부랴 수행원을 대동하고 촉(蜀) 땅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왕유는 미처 그 일행을 따르지 못하고 반군의 포로가 되었다. 일부러 환자나 장애인인 것처럼 위장하며 위기를 모면코자 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반군은 왕유를 낙양 보리사(菩提寺)로 압송·구금하고 그들의 벼슬을 강요했다. 왕유는 완강히 버티며 응하지 않았지만 대략 9월 이후에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위직(僞職) 급사중 벼슬이 떠맡겨지고 말았다. 지덕 2년(757)에 동·서 양경을 수복한 조정은 같은 해 12월, 그간 반군에게 억류당해 있으며 위직을 맡았던 사람들을 모두 여섯 등급으로 나누어 논죄했다. 왕유는 보리사에 갇혀 있으면서 친구 배적(裴迪)에게 지어 보였던 시 <보리사에 갇혀 있는데 배적이 찾아와…(菩提寺禁裴迪來…)>로 일찍이 숙종을 감동시킨 데다 당시 형부시랑(刑部侍郞)의 높은 벼슬을 하고 있던 동생 왕진이 자신의 관직을 삭탈하는 대신 형의 죄를 감면해 줄 것을 청원해 숙종의 특별 사면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왕유는 망천에서 한거하다가 이듬해 봄에 복관되면서 태자중윤(太子中允)에 문책(問責) 제수되었으며, 다시 얼마 후에는 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를 가함받았다. 그리고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와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한 뒤 가을에 마침내 급사중에 복직되었고 상원(上元) 원년(760) 여름에 상서우승(尙書右丞)으로 승진했다. 상원 2년 봄, 왕유는 동생 왕진이 외직(外職)인 촉주자사(蜀州刺史)로 나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책궁천제표(責躬薦弟表)>을 올려 자신의 관직을 삭탈하는 대신 동생의 내직(內職) 귀환을 청원했다. 그러나 왕진이 새로운 내직을 제수받고 귀경하는 도중인 같은 해 7월, 그리운 동생을 만나지도 못한 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역은(亦隱)’의 삶을 살았던 망천장을 개조한 사찰, 청원사(淸源寺) 서쪽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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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수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타이완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각각 중문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와 출판부장,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동아시아언어학과 방문교수를 거쳤다. 현재 울산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중국 산동사범대학교 대학원 교외 논문 지도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논어』(상·하), 『노자』, 『장자』, 『손자병법』(이상 ‘쉽고 바르게 읽는 고전’ 시리즈), 『왕유 시전집』, 『왕유 시선』, 『주역』, 『맹자의 왕도주의』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공자와 논어, 얼마나 바르게 알고 있는가?』, 『논어 읽기』, 『당시의 거장 왕유의 시세계』, 『고문진보의 이해와 감상』,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3』(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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