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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30610429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7-01-17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속으로 셋까지 센 다음 말했다.
“죄송해요, 이모.”
그런 다음 절대로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던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울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무리 애를 써도 멈출 수가 없었다.
최악은 뭔가 하면 버서에게 하려고 속으로 연습했던 말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를 생각은 없었다고. 나는 페가수스자리가 베란다 위에서 반짝이는 산비탈의 이 집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피클용 유리병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다고. 그리고 나는 신데렐라를 정말 좋아한다고, 누군들 안 그렇겠느냐고.
하지만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버서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인펜으로 얼룩진 내 팔에 그녀의 따뜻한 손을 얹었다.
“너는 이 집의 축복이야, 찰리.”
그녀가 말했다.
축복이라고?
그녀는 나더러 못됐고 밉살맞고 바보 같고 한심하다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축복이라고 했다.
“내가 새로운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한 게 고까웠나봐. 아이를 두고 뛰쳐나온 엄마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지 않았던 거지. 화물열차처럼 요란하게 이 집을 박차고 나가서 예전 생활로 돌아갔고 그 뒤로 만난 적이 없단다.”
천둥소리가 또다시 아래쪽 골짜기에서 울려 퍼졌다.
“내가 전화를 해도 너희 엄마가 받질 않았어. 너하고 재키한테 카드와 선물을 보내도 너희 엄마가 돌려보냈고. 한동안 그러다 내 쪽에서 포기했지.”
버서가 말했다. 그녀는 내 무릎을 토닥였다.
“이런 얘기하게 돼서 미안하다, 찰리.”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턱에서 속마음이 드러났을 것이다. 버서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내 양쪽 손을 잡고 말했다.
“너희 엄마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찰리. 하지만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단다.”
길을 잃을 때가 있다고?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로 돌아올 수 있는지 기꺼이 지도를 그려줄 수 있었다.
그 말이 내 입을 떠난 순간, 면도날처럼 빠르고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하워드를 향해 돌진하는 단어들이 실제로 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워드의 얼굴이 유령처럼 하얘졌고 시선은 휙 하니 땅바닥으로 향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 모진 말을 회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문득 모든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멎어서 꼼짝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개울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새들은 더 이상 지저귀지 않는 것 같았다. 머리 위의 구름은 더 이상 산마루를 넘어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위시본마저 동상처럼 내 옆에 꼼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