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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30816951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0-08-16
책 소개
목차
17. 위기
18. 사투
19. 서울 하늘의 먹구름
20. 공허
21. 새로운 출발
22. 소용돌이
23. 오랜만의 동거
24. 고난을 먹고 피는 꿈
25. 동지
26. 도피
27. 자금
28. 석양
29. 절대 비밀
30. 마지막 길
31. 이별
32. 비탄
· 이석영, 이회영 6형제 가문의 삼한갑족 계보
· 귤산 이유원 연보
· 영석 이석영 연보
·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울며 토방을 뛰쳐나갔던 경만이 다시 돌아왔다. 경만은 독립운동에 재산을 다 바치고 굶고 있는 석영을 원망하며 통곡하다가 토방을 나갔지만 실은 돈을 구하기 위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가부좌를 튼 채 미동이 없는 석영을 발견한 경만이 정신없이 석영을 흔들었다.
“어르신!”
꼼짝하지 않는 석영이 마지막 숨을 끌어올렸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거라.”
석영은 짧은 유언을 남기고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경만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지키기로 했다. 혼자 장례 준비를 했다. 구해 온 돈으로 관을 사고, 쌀과 향을 샀다. 혼자 입관을 한 다음 향을 피우고 쌀밥을 지어 올렸다. 오랜만에 쌀밥 향기가 방안에 퍼졌다.
“대감마님, 고향에서는 일 년 열두 달 흔하디흔한 쌀밥이었는데, 이제라도 많이 드세요.”
경만은 봉긋하게 담은 쌀밥 위에 수저를 꽂고 절을 하며 토방이 허물어지도록 울었다. 경만은 호칭을 예전의 대감마님으로 바꾸어 불렀다. 옛날처럼 고귀한 대감마님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었다. 찾아올 사람 한 사람도 없지만 오일장을 치르기로 하고, 5일 동안 끼니때마다 새로 밥을 지어 올리며 그동안 모시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곡을 했다.
1934년 2월 28일, 상해는 아직도 한겨울이었다. 경만은 마차를 임대하여 관을 모셨다. 붉은 비단폭에 ‘경주 이씨 백사공파 백사 이항복 자손, 영석 이석영 애국지사 순국’이라고 쓴 명정(銘旌)을 마차에 꽂았다. 마차가 덜컹거리며 홍교로(虹橋路) 공동묘지를 향해 길을 잡았다. 앞뒤로 단 한 사람도 따르지 않는 마차는 드넓은 허공을 거느린 채 뚜벅뚜벅 묘지를 향해 걸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세상을 하얗게 덮기 시작했다. 눈꽃이 관을 소복소복 덮으며 아름답게 꾸몄다. 관을 끄는 말도 하얗게 변했다. 백마가 된 말은 석영이 젊어서 타던 유휘와 흡사했다.
“대감마님, 유휘가 왔습니다. 대감마님을 모시라고 아마도 큰사랑 대감마님께서 보내주셨겠지요.”
경만이 울며 말을 몰았다. 말은 묵묵히 걷고, 갈수록 눈이 더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경만이 말을 재촉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대감마님, 아직도 조국을 못 잊어서 그러시지요.”
말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감마님, 조국을 이대로 두고는 못 가시겠지요. 죽어도 못 가시겠지요.”
말은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
“목숨까지 바치셨으면 됐지 무엇을 더 바치시려구요”.
그래도 말은 움직이지 않았다. 눈만 하염없이 내려 쌓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놈도 목숨 바쳐 나라를 찾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이제 되셨는지요.”
말이 다시 움직였다. 함박눈이 내리는 하얀 길을 따라 백마 유휘가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장례를 끌며,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묘지를 향해 유유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