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8320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1-11-10
책 소개
목차
제1부
부리 / 모든 곳에서 / 벽이 온다 / 거미박물관 / 눈깔사탕 딜레마 / 꽃 / 접는 중 / 호모 케미쿠스 / 섬에서의 대화 / 다시 벽이 온다 / 대피소에서의 잠 / 회식 / 돌멩이에게도 입이 있다 / 오월 / 휘파람
제2부
숙희 / 첫물 / 한 걸음 / 선감도 / 지구에서 아주 잠깐 / 모란공원에서 / 망명자 / 아이야, 네 손에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낯선 집 / 사월 / 아득한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고 / 위기 / 새 / 사과를 베어 물다 / 있어요
제3부
안부 / 실눈을 뜨다 / 여신들 / 가슴을 재다 / 폐사지에서 별 보기 / 구름교차로 / 361로(路) / 스위치 / 한탄강에서 / 세류천 / 사회적 거리 두기 / 이런 말 / 물의 가족 / 그 자리 / 저수지
제4부
잔도 / 이 자리에서만 보이는 것이 있다 / 제비 풍속 / 꿀샘에 이르는 길 / 바람 소리 / 구름, 비, 나무 / 37.5 / 홍시 / 늦가을 / 손들 / 무용수 / 거미 / 애완돌 / 새
작품 해설 : 세상에 묻힌 온몸, 시의 세계-박수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부리
바람을 입는다
두 눈에 해를
가슴에 달을 품고
맨 앞에 내세운 부리
끝이 닳아 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그것은 집 짓고 사냥하고 깃털 고른 흔적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찻잎 같은 혀
그리고 공룡의 포효보다
야무진 침묵
발을 뒤로 모으고
허공을 가로지를 때
앞세운다,
제 존재가 무엇보다 크고 귀중하다 일러주는
따뜻한 부등호
가슴을 재다
브래지어 사러 왔는데 치수를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눈대중으로 얼추 비슷한 치수의 것을 들고 성큼 일어선다
양팔을 들게 하고 브래지어로 내 가슴 치수를 잰다 나도 모르는 내 가슴의 치수를 잰다 줄었다 늘었다 어떨 땐 콩알만 했다 어떨 땐 듣도 보도 못한 공간으로 휙 날아가 버리는 내 가슴을 잰다 내 가슴 크기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양해보지만 막무가내, 평생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느라 살가죽에 가까워진 젖가슴으로 당당히 서서 내 가슴 크기를 잰다 당신 가슴은 얼마라고 숫자를 댄다
황송히 그 숫자를 받아들고 아, 내 가슴이 이만하구나 그런데 큰 건지 작은 건지 기준치를 몰라 쩔쩔매다가 생각해보니 가슴 크기의 평균이 뭐가 중요하랴
내게 딱 맞는다며 자신 있게 내미는 브래지어를 웃음으로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데 주변 노점에서 지켜보고 있던 수원 남문시장의 가슴들이 다들 깔깔 웃는다 빈 가슴으로 웃는다 비워서 충만해져서 웃는다
애완돌
돌멩이를 길들이려면
특수한 명령어를 사용해야 한다
앉아
기다려
굴러가
그리고 잘했다고 쓰다듬어줄 것
여행 갈 때마다 주워온 돌멩이들에 이름을 붙여준다
보봐리, 개츠비, 라스콜리니코프……
항아리 속 오이지를 라스콜리니코프로 지그시 누른다
사랑에 눈이 먼 개츠비는 장식장 위에 얹어둔다
목마른 보봐리는 어항 속 열대어의 쉼터가 되라고
반항을 꿈꾸는 돌멩이
꿈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일
수면을 스칠 듯 말 듯 통통통 건너가거나
날개를 달고 새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화려한 지느러미 달고 물속을 탐사하는 꿈
떠오르는 햇살에 말갛게 씻긴 돌멩이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오늘은 굶어,
침묵하고
왜 그러느냐는 듯 빤히 쳐다본다
매일 아침 미지의 문 앞에 서 있는 돌멩이와
여전히 동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