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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38419727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23-07-27
책 소개
목차
배를 가르면 피가 나올 뿐이야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아카네는 그 소설과 만났다.
지갑에 들어 있던 도서상품권이 생각나서 훌쩍 들른 작은 서점.
입구 근처 신간 코너에 눕혀져 쌓여 있는 파란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폰트로 《소녀의 행진》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
그날, 자기 전에 책의 감촉을 확인해두고자 서두만 읽어보려고 방에서 무심히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의 손맛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정신을 차렸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커튼을 젖혀둔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동트기 직전인 걸 알고는 놀랐다. 아침놀이 어디론가 달아나려는 듯한 하늘이었다.
세계는 어제까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러나 아카네에게는 이곳이 아주 조금 다르게 보였다.
폭발할 것 같은 경탄을 느꼈다.
이 책은 아무도 알 리 없는 나 자신을 이해해준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봐주지 않는 내면을 봐준다.
존재해도 된다는 희미한 권리를 이 이야기가 부여해준 것 같았다.
아카네는 이런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가 절대 오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카네는 그럴 수 없다.
다만 사실은 기대하기도 했다.
어딘가에는 이 이야기에 그려진 소녀와 똑같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까.
다들 본질을 전혀 모른다.
결국 아카네는 지금도 여전히 《소녀의 행진》에 품은 진정한 감상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했다.
그저 고요히, 만들어진 이야기에 기대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언젠가 주인공 소녀처럼 자신도 달라질 수 있다고, 그저 혼자 꿈을 꾸면서.
오로지 한 가지 감정에 지배된 채 행동하는 자신을 아카네는 절실하게 혐오했다.
사랑받고 싶어.
아카네는 아마도 태어났을 때부터 지녔을 그 터무니없이 거대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어느샌가 알아차렸다. 그때는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늦은 상태라, 견고한 감옥 혹은 단단한 목줄과도 같은 그 감정이 언제나 아카네의 반응과 행동을 지켜보고 제한했다.
(…)
진정한 자신을 끝없이 위협하는 그 감정을 아카네는 증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