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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큰글 현대수필 1

[POD] 큰글 현대수필 1

(강경애 외 1930-1940)

김남천, 김동인, 김영랑, 김영팔, 강경애, 김상용 (지은이), 큰글 편집부 (엮은이)
  |  
큰글
2014-08-05
  |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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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큰글 현대수필 1

책 정보

· 제목 : [POD] 큰글 현대수필 1 (강경애 외 1930-1940)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5040638
· 쪽수 : 232쪽

책 소개

큰글자책이 필요한 모든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큰글 현대수필>. 1910~1950년대 우리나라 민중들의 삶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나와 같은 공간, 다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 그들이 울고 웃고 견디고 간직한 삶을 통해 현재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목차

강경애
11 조선 여성들의 밟을 길
16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
34 커다란 문제 하나
37 여름밤 농촌의 풍경 점점
45 이역의 달밤
49 간도의 봄
54 나의 유년시절
59 원고 첫 낭독
61 표모의 마음
66 간도
69 어촌점묘
90 고향의 창공
96 봄을 맞는 우리 집 창문
102 불타산 C군에게
106 기억에 남은 몽금포
110 자서소전
113 약수
118 내가 좋아하는 솔

김남천
127 냉면
133 효석과 나

김동인
141 대동강
146 별
150 영혼―여자 운동을 봄

김상용
159 한순온화

김영랑
169 감나무에 단풍 드는 전남의 9월

김영팔
183 문예광 시대
186 직공생활 10년의 감상 일부분
194 통쾌할는지도 모르는 이야기
197 신춘잡필
206 JODK 방송실의 풍경
209 신춘만필
216 무제수필
225 노상 스케취―하나, 둘

저자소개

김남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1년 평남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고,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31년에 제적되었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출옥 후에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에도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 임화·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 8.15 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해주 제일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활동을 주도하였으며,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1953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로동당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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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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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영랑永郞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후에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 시인 박용철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후 고향에 머물렀다. 1925년에 개성 출신 김귀련과 재혼했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다. 9·28수복 하루 전인 9월 27일 길에서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이 실린 《영랑시집永郞詩集》(1935)과 《영랑시선》(1949),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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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작가 겸 극작가·한국 신극 초기 연극인·방송인. 서울 출생. 1920년 일본 니혼대학 미학과에 입학했으나 곧 퇴학, 동경 유학생 연극 모임 극예술협회 창립 동인 참여. 1923년 형설회 순회극단의 학생 배우로 활약. 1924년 단막극 〈미쳐가는 처녀〉로 등단, 〈부음〉 〈곱장칼〉 〈그 후의 대학생〉 등 발표. 1925년 극문회 조직, 프로문학 단체 염군사 창립 동인, 카프 창립 회원으로 활동. 1931년 경성방송극협회 고문 취임 후 카프에서 제명, 전향. 활발히 활동한 1930년 초까지 희곡 10여 편과 소설 10편 등을 남김.전통적 인습과 식민지 압제에 대한 저항·해방을 다루며 1920년대에 가장 많은 희곡 작품을 발표했으나, 1932년 절필하고 방송인 활동. 광복 후 월북, 한국전쟁 시기 사망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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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한글을 깨쳤다. 장연여자청년학교를 거쳐 장연보통학교에 입학 후 가난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두드러진 작문 실력을 발휘했다.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뒤인 1923년 10월에 학생 동맹 휴학 사건 관련자로 퇴학당했다. 이 무렵, 장연 태생의 동경 유학생 양주동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면서 서울 동덕여고보에 편입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9월 그와 헤어지고 난 뒤 장연으로 돌아왔다. 1924년부터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하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1년에는 『조선일보』 부인문예란에 단편소설을 투고하였으며, 같은 해에 결혼한 뒤 6월경에 간도로 이주하였다. 1934년에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인간 문제』를 연재한 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9년에는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신병이 악화되어 고향 장연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1944년 4월 지병 악화로 결국 사망했다. 1999년 8월, 중국 용정에 ‘녀성 작가 강경애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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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금년의 한재도 반드시 많은 사람을 이 땅에 던져줄 것이다. 나날이 늘어가고 해마다 늘어가는 이 백성들에게 소생의 길은 과연 어느 곳에 있는 것이냐. 예언자인 모세가 알 것인가? 막스가 알 것인가? 아니다. 죽어간 사람이 알 것은 아니다. 그렇다. 살아있는 즉 우리들이 몰라서는 아니 될 것이다. _01권, p.219~220, 김영팔, 〈무제수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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