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한승헌 (지은이)
  |  
이지출판
2022-07-15
  |  
16,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14,400원 -10% 0원 800원 13,6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책 정보

· 제목 :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5551844
· 쪽수 : 264쪽

책 소개

<이 세대의 양심>이라 불리던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 선생이 남긴 유머집. 선생은 핍박과 고난을 받으며 극복해 오는 과정에서 유머가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요, 여유와 낙관을 유지하며 웃음을 나눌 수 있었음은 하나의 축복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목차

4_ 감사의 글
7_ 책을 내며 유머, 정신의 순례에 꼭 필요한 동반자

제1부 유머와의 상견례

16_ 유머와 말의 지혜
18_ 유머의 첫 장, 자기 낮추기
21_ 곤경 탈출 그리고 너그러움
24_ 비판과 저항도 센스 있게
26_ 의외성과 통념의 파괴
28_ 사실 속에 들어 있는 유머
30_ 말의 음과 뜻을 전용하여
32_ 모순된 현상이 해학적 웃음을
34_ 유머의 요체-압축, 반전, 직관
36_ 체험에서 우러난 유머
37_ 유머는 말재간이 아니다
39_ 유머는 생활의 필수 과목
41_ 긴장과 이완의 배합과 조화
43_ 아이스 브레이커의 역할
46_ 유머가 직설보다 품위 있는 이유

제2부 그와 나의 애창곡

50_ 이름이 운명을 지배한다고?
53_ 캐리커처 세 점
56_ ‘사’자 직업
61_ 무슨 운동을 하십니까?
66_ 2남1녀?
69_ 생선의 유족들
71_ ‘가련동’ 사람들
74_ 버릴 수 없는 자리
77_ 그와 나의 애창곡
80_ 하루 형님
85_ 음치 백서
87_ 뜻밖의 질문
91_ 노 변호사와 원로 변호사
94_ 어쩔 수 없는 나이
96_ 군번을 대라는 택시기사
99_ 명예 박사
102_ 명예 권사
105_ 명예 동문

제3부 도무지 뭐가 뭔지

110_ 청와대 이야기
112_ 괄호 안의 말
114_ 금서禁書와 코미디
116_ Fine for swimming
118_ 정치자금과 기부문화
121_ 기역하고 니은하고 쌈이 붙었어요
123_ “She was a boy!”
126_ 영어 연설
128_ 도무지 뭐가 뭔지
131_ 수준급 반론
134_ 이변의 연속
137_ 현명한 우자愚者
139_ 소방차와 야유회
142_ 사법개혁-‘원기’와 ‘우려’
144_ 담요와 철새
147_ 비해학의 해학화
151_ 14초 동안 박수 받은 여왕
155_ ‘오바마’ 건배사

제4부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

160_ 건망증과 치매
163_ ‘기부’ 어원 연구
166_ 청첩장에 대한 세 가지 학설
168_ 기억에 남는 주례사
171_ ‘하라는 대로’와 ‘하는 대로’
174_ 고장난 인과율
176_ 시간의 완급
178_ 소금은 쉬지 않는다
180_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
183_ 조코비치의 그 한마디
187_ 부패 방지엔 소금이
192_ 한 입으로 두말하는 여자
195_ 호랑이의 감사기도
199_ 해우解憂와 방송放送
202_ 저승에서도 남북 분단?
204_ 전원 석방
206_ 재판문학의 탄생을 기다리며
209_ ‘표절’이라는 요격 미사일

제5부 명판결 속의 거짓말

214_ 베드로의 눈물
216_ 유대인의 웃음, 유대인의 정신
218_ 히틀러를 구해 준 유대인
220_ 금전욕과 청구서
223_ 명판결 속의 거짓말
225_ 유머리스트 처칠
228_ 하느님은 영어만?
231_ 미국 대통령의 유머
234_ 작가와 스타들의 유머
237_ 일본인의 성품
241_ 링컨과 케네디의 데자뷰
243_ 가짜로 악명 높은 중국
245_ 예수는 웃지 않았다?
248_ 예수의 화법
251_ 변호사 기절하다
257_ 월남 이상재 선생의 해학
260_ 별떡 달떡 이야기

저자소개

한승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1934년) 전주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제8회, 1957년)에 합격, 검사(법무부, 서울지검 등에서)로 일하다가 변호사로 전신하였다(1965년). 역대 독재정권 아래서 탄압받는 양심수와 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인권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어떤 조사> 필화사건(1975년)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1980년)으로 두 번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변호사 자격 박탈 8년 만에 복권, 변호사 활동을 재개하여(1983년) 필화사건을 포함한 시국사건의 변호를 계속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무이사, 방송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감사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대통령 통일고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서울특별시 시정고문단 대표 등의 직분을 맡아 일했으며 중앙대, 서강대, 연세대, 가천대 등에서 저작권법을 강의하고, 전북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법과 인간의 항변》 《위장시대의 증언》 《허상과 진실》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와 출판》 《저작권의 법제와 실무》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실록》(전7권) 《분단시대의 법정》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 《한일 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日)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등 47권이 있다. 인제인성대상, 정일형·이태형 자유민주상, 중앙대 언론문화상, 한국인권연구소(재미) 인권상, 임창순 학술상, 단재상,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으며, 2022년 4월 20일 88세를 일기로 영면에 드셨다.
펼치기

책속에서

이름이 운명을 지배한다고?

“자넨 이름부터 반체제여. 한국의 헌법을 이기겠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지.”
“승리라는 승勝자 대신 승복한다는 승承으로 바꾸면 무사할 거여.”
나의 거센 팔자를 이름풀이를 가지고 규명하려는 객담은 한두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말을 거듭 듣고 나니 명名이 실實로 이어지는 무슨 인과작용이라도 있는가 싶기도 하나, 내 이름에 대한 자부심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내 이름은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아버님 친구인 한문 선생이 지어 주신 것이다. 그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남의 길흉화복을 예언하기도 하고, 작명도 곧잘 했다고 한다.
한 달 후에 머슴애가 태어날 것을 미리 알고 우리 집안 남자의 항렬자行列字에 맞추어 미리 이름을 지었다니 뜨겁게 맞춘 셈이다. 하지만 그분이 40년 후의 박정희 유신헌법까지 내다보고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성명철학은 서양에서도 무시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월남전에서 미국은 치욕스런 패배를 경험했다. 그 곤혹스런 전쟁 때문에 닉슨의 악명은 더욱 높아졌지만 현지에서 전쟁을 감당해야 했던 미군 지휘관도 패전의 수치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불운한 미군사령관의 이름이 하필이면 웨스트모어랜드Westmoreland 장군이었다. 따라서 그가 북쪽의 호찌민군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의 이름이 노스모어랜드Northmoreland였더라면 미군은 북벌北伐에 성공하였거나 적어도 패전은 면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이 운명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에 작명소를 열어 부자 된 사람도 있고, 이름을 바꾸어 보려고 기웃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70년대 초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권순영 변호사님과 함께 라디오 전화상담 프로그램을 맡아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개명 절차를 묻는 상담자에게 권 변호사님은 이렇게 즉석대답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내가 재판한 절도 피고인 중에도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최전방 부대에 근무하던 때, 서울에 나와서 중앙청 건너편 길모퉁이를 지나가다가 담벼락에 ‘작명·관상’이라 써 붙여 놓고 앉아 있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앞에는 행운의 극치가 될 법한 이름이 부대 종이에 한자로 크게 쓰여 있었다. 이승만과 리기붕이었다.
4·19 후 서울에 나와서 다시 그 지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도 노인은 그대로였으나 이름의 샘플은 이미 바뀌어져 있었다. 윤보선과 장면, 두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들의 이름도 그런 부침浮沈 속에 희미해져 가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이름의 미래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폴란드의 새 수상 이름은 ‘아다메치’였다. 그 사람이 수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가련동’ 사람들

서울시청 앞 지하도 어귀나 종로2가의 혼잡한 길목을 지나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하도 계단이나 행길에 늘어선 여인네들이 명함만 한 무슨 딱지를 나눠 주고 있다. ‘즉시 대출’ 어쩌고라고 인쇄된 고리대금 안내 전단이다. 지나가면서 주는 대로 다 받았다가는 한 움큼이 될 것이다. 돈의 편재를 가히 알 만하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북창동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예의 돈놀이 전단을 나눠 주는 여인들의 밀림 속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에게만 전단을 들이밀지 않는가.
“자네 돈 없는 사람인 줄 영락없이 알고 자네에게만 주는군 그래!”
“에, 이 사람, 자네는 담보조차 없어 보이니까 안 주는 거야.”
결국 나의 판정패로 끝났지만, 다른 때는 나한테도 딱지를 계속 주는 것을 보면 비록 돈은 없더라도 담보는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흔히들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자네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는가?” 하면서 나를 밀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고 나도 밀려날 수는 없어서 한마디 한다.
“돈은 없지만 수표가 있단 말일세.”
나의 무능력을 무욕無欲으로 오해한 나머지 나의 처지를 미화시켜 주는 분들도 있다. 그런 미화 발언 앞에서 만일 묵묵부답했다가는 참으로 위선자가 되어 버릴 것 같아 반드시 한마디를 잇대어 놓는다.
“천만의 말씀! 사실 나는 돈을 매우 사랑하는데 돈이란 놈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김재준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미국 사람들은 God(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엘(l)’자를 하나 더 끼워 넣어 Gold(황금)만 사랑하고 있더라고 했다. 그야 돈이 많아야(거액의 헌금을 통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독재정권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8년간 실업자 생활을 할 때는 경제적으로 이런저런 고비를 겪은 것도 사실이다. 그 무렵 종합병원에 가서 명의 아닌 점쟁이를 만난 적이 있다.
진찰권을 끊는 창구에서 여직원이 내 주소를 묻기에 갈현동 몇 번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받아든 진찰권에는 글씨도 선명하게 ‘가련동’으로 적혀 있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가련한 실업자로 보였으면 그처럼 뜨겁게 알아맞혔을까 하고 감탄했다.
누군가 법조인이란 직업은 ‘면기난부免飢難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친구의 부인이 찾아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로) 보험을 들어 달라고 간청했을 때, 그리고 실망을 애써 감추며 돌아가는 그를 전송하면서 나는 절감했다.
‘면기免飢’에 자족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이기적인 정신놀음이며 얼마나 남에게 잔인할 수밖에 없는가를….


군번을 대라는 택시기사

올해 들어서부터 승용차 없는 생활에 들어갔다.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택시는 그래서 나와 친해진 교통수단이다. 간혹 내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어오는 기사도 있다. 차에서 내릴 때 내가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려고 하거니, 기사 쪽에서 아예 택시 요금을 안 받겠다거니 하는, 아름다운 옥신각신의 촌극도 벌어진다.
인천공항도 리무진 버스를 이용하면 왕래가 편리하다. 어느 날 인천공항에 가서 전송을 해 드릴 분이 있어서 마을 근처의 리무진 버스 정류장에 나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청년이 역시 같은 방향인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택시가 한 대 나타나더니 기사가 인천공항까지 만 원에 가자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 앞에 만 원씩 해서 2만 원에 가겠다는 제안이었다.
톨게이트 통행료 내고 나면 몇 푼 남는다고 그러느냐며 내가 ‘반대’를 하자, 그 택시기사는 “그건 내가 할 걱정이니까 염려 마시고 어서 타시기나 하세요” 한다.

듣고 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그건 내가 할 걱정이 아니었다. 옆의 청년과 나는 만 원씩 내고 인천공항까지 쾌적하게 달려갔다. 그 택시기사는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승객을 태우면 수지가 맞는다고 했다. 그런 경제학을 내가 알지 못하고 괜한 걱정까지 대신 해 준 셈이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탈 때 “안녕하세요?” 하고 기사에게 인사를 하는 습성이 있는데, 대개는 의외라는 듯 반가운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들은 척 만 척하는 기사를 만났다. 피곤하거나 성격 탓이겠지 하고 행선지만 일러주고 앉아 있는데, 조금 가다가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묻지도 않는 자기 가정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듣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
자기는 전남 신안군 무슨 면 무슨 리 몇 번지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딴 여자와 목포시 무슨 동 몇 번지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는 이야기(그처럼 자기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흥분을 했다), 자기는 고생하면서 자란 뒤 모년 모월 모일 서울로 올라와 무슨 구 무슨 동 몇 번지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택시를 몰게 되었으며, 작년에 무슨 구 무슨 동 몇 번지에 있는 작은 집을 사서 지금은 좀 나아졌다는 것.
장황한 ‘반생기’를 다 듣고도 목적지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또 무슨 몇 번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걸 차단할 겸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했다.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일흔 몇 살입니다. 그럼 1934년생이세요? 예, 그럼 저하고 동갑이네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저쪽에서 공이 날아왔다.) 그럼 군대 갔다 왔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때 군대 안 간 사람 어디 있어요? (그러자 천만 뜻밖의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럼 군번이 어떻게 됩니까? (허 참, 이건 불심검문이구나.) 나는 군번을 댔다. (그래도 그의 추궁〔?〕은 멈출 줄 몰랐다.) 군번 자릿수가 하나 모자라는데요. 특과 장교라서 군번 자릿수가 짧지요. (질문은 또 계속되었다. 지독하다.) 특과라고요? 병과가 무엇이었는데요?
그 순간 택시가 목적지에 닿았다. 나는 겨우 벗어나기는 했지만, 번지수나 군번을 따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택시기사는 전생에 우체부 아니면 복덕방, 또는 헌병이 아니었나 싶었다. 서울의 교통 체증 덕에 체험한 차중 해프닝이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