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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56123545
· 쪽수 : 776쪽
· 출판일 : 2026-08-30
책 소개
목차
01 한국의 부름과 독립을 위한 여정, 1886~1919년
◦ 편역자 서문 005 | ◦ 헐버트의 생애 010
◦ 연보 016 | ◦ 저자 서문 025
1부 한국과의 첫 만남
1장 한국으로의 첫 항해: 1886년 5월
2장 일본에서 한국으로: 안개 속의 항해
3장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1886년 7월
4장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갈등
5장 서울에서의 첫 여름: 1886년
6장 육영공원, 첫 세례, 한국 고대사 연구
7장 한국어와 드라비다어 비교 연구
8장 일본 내륙 여행: 1887년 여름
9장 한국어와 일본어의 기원
10장 결혼을 위해 캐나다를 거쳐 미국 방문: 1887년
2부 격동의 세계와 한국의 위기
11장 뉴욕의 결혼식과 평양 탄광 조사: 1889~1890년
12장 아시아 여행 기록: 1891년 12월~1892년
13장 성지와 유럽 여행: 1892~1893년
14장 감리교 선교사로서 서울 귀환: 1893년 10월
15장 한국의 야생동물과 민속놀이
16장 청일전쟁: 1894~1895년
17장 일본의 왕비 시해: 1895년 10월 8일
18장 을미사변의 결과: 1895년
19장 선교사들의 고종 호위: 1895년 10~11월
20장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 1896년 2월~1897년 2월
3부 제국주의의 올가미와 고종 황제 밀사의 길
21장 개혁의 여명: 《독립신문》, 독립협회, 사범학교: 1896~1898년
22장 《코리아 리뷰Korea Review》 창간: 1901년
23장 독립협회의 좌절과 시베리아 횡단 여행: 1903년
24장 러시아 풍경과 《타임스Times》 특파원 위촉: 1903년
25장 러일전쟁과 파괴된 동양 평화: 1904년
26장 고종 황제의 밀사로 워싱턴행: 1905년
27장 백악관의 배신과 외교의 내막: 1905년
28장 을사늑약과 한국인을 위한 투쟁: 1905년
29장 헤이그 특사 지원과 최후의 외교 원정: 1907~1909년
30장 한일병합과 파리 강화회의: 1910~1919년
31장 국제연맹의 명암과 새 국제 질서의 모색: 1919~1932년
02 일제의 무단 통치와 정의를 위한 제언: 1853~1932년
1부 일제의 부상과 한국의 수난
1장 미국과 일본의 첫 조우: 1853~1854년
2장 일본의 급격한 변모 뒤에 숨은 비밀: 1854~1877년
3장 새로운 일본의 탄생과 야망
4장 정한론의 서막
5장 미국의 작은 전쟁, 신미양요: 1871년
6장 ‘은둔국’의 개방과 갑신정변: 1876~1884년
7장 왕비 시해의 전말: 1895년
8장 대한제국 수립과 영일동맹의 지정학: 1896~1902년
9장 러일전쟁, 극동 패권의 지각 변동: 1904~1905년
10장 을사늑약과 ‘보호정치’의 시작: 1905년
11장 통감부의 주권 침탈 심화: 1906~1907년
12장 헤이그 특사와 고종 황제의 양위: 1907년
2부 무단 통치의 실상과 독립의 외침
13장 일제의 탄압과 교회의 시련
14장 일제의 탄압과 교회의 저항
15장 한일병합: 주권 찬탈의 현장: 1910년
16장 105인 사건, 날조된 총독 살해 음모: 1911년
17장 무단 통치와 헌병 경찰 제도: 1912~1919년
18장 일본의 산둥반도 점령: 1914~1919년
19장 마지막 외교적 호소: 1919년
20장 3·1 독립 만세 운동: 1919~1920년
21장 미국에 알려진 한국 독립운동의 진상: 1919~1920년
22장 제1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연합국 배신: 1916~1920년
3부 국제 정세의 변화와 평화를 위한 제언
23장 워싱턴 군축회의와 광주 학생의거: 1921~1931년
24장 만주사변과 극동 위기의 해결책: 1931~1932년
25장 일본의 중국 침략: 1914~1916년
26장 만주국 수립과 무너진 국제연맹의 권위: 1917~1932년
27장 도덕적 국제주의: 세계 평화를 위한 대안
28장 결론: 한국의 독립이 세계 평화의 관건
◦ 찾아보기
책속에서
수도 서울까지는 26마일이나 떨어져 있었고, 그곳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은 겨우 말 한 마리가 지날 만한 좁은 오솔길뿐이었다. 장마철은 코앞이었고 수은주는 화씨 90도(섭씨 약 32도)를 오르내렸다.…길모어 부인은 인력거를 타고, 우리 남자들은 안장도 없는 조랑말을 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곧장 서울로 향했다.
학생 한 명의 시험이 끝날 때마다 왕은 우리의 조언 없이 직접 성적을 결정했다. 성적은 ‘우수’, ‘양호’, ‘보통’, ‘불합격’의 네 단계였다. 놀랍게도 매번 왕은 학생이 보여 준 실력에 딱 맞는 점수를 주었다.
왕은 즉시 모든 외국인 거주자를 초대하여 궁궐 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했다.…호수 안 작은 섬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왕과 측근들은 그곳에서 손님들이 벌이는 기묘한 동작을 지켜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