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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91157062287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주도하다
I. 알트마르크 융커의 젊은 시절(1815~1847)
II. 영주에서 정치가로(1847~1851)
III. 프랑크푸르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의 외교관(1851~1862)
IV. 위대한 프로이센과 제국 창설자(1862~1871)
V. 제국의 안정화와 평화 수호(1871~1890)
VI. 권좌에서 물러난 후(1890~1898)
에필로그
논쟁의 대상 비스마르크
옮긴이의 말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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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1847년은 비스마르크 인생의 결정적인 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우선 요하나 폰 푸트카머와 맺은 약혼은 7월 결혼식으로 이어져 두 사람이 부부가 됨으로써 인생의 안정적인 기반이 확보됐다. 다른 한편으로 비스마르크는 1847년 소집된 ‘통합신분제의회(Vereinigter Landtag)’에 진출하면서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비스마르크가 자신에게 걸맞은 행동반경을 확보함으로써 불투명한 전망에 시달리며 짝을 찾아 헤매던 불안정한 시기는 끝을 맺었다.
의회에 입성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5월 17일, 32세의 최연소 의원은 첫 데뷔무대에서 일대 소동을 일으켰다. 자유주의 정당 소속 의원 한 명이 프로이센을 위한 성문헌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1831년 나폴레옹의 강제 점령에 저항해 일어난 민중봉기의 동기가 무엇보다 헌법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었다고 강조했다. 1815년생 신참 의원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에 저항해 일어난 이 투쟁의 동기, 앞서 언급한 연설이 주장한 동기를 ‘바로잡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몇 번이고 반복해 ‘혀를 찬 뒤’에 비스마르크는 포문을 열었다. “프로이센이 외국의 권력자에게 당한 박해와 굴욕만으로 피가 들끓지 않는다면, 침입자를 겨눈 증오가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민족의 명예에 스스로 먹칠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비스마르크는 일갈했다(의회는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워졌다). 해방전쟁의 의미를 그처럼 편파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몇몇 의원들이 항변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강한 반어법으로, 당시 저항운동을 두고 헌법을 가지고 싶은 열망의 반영이라는 선배 의원들의 가르침 덕에 봉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유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고 쏘아붙였다. “저는 항상 당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 뜨거운 투쟁을 벌이게 만든 원인을 외세가 제공한 줄 알았는데, 지금 가르침대로라면 오히려 국내 세력이 이런 노예 상태를 자원한 셈이로군요. 이런 가르침에 제가 매우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초선 의원의 발언, 아니 우리가 아는 비스마르크의 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연설이다! 대담한 배짱으로 정적에게 돌진해 칼로 베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연설로 상대를 도발하는 솜씨는 물론, 냉철한 반어법과 물어뜯는 것과 다름없는 조롱은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왜 오늘날 대국들은 전쟁을 할까?’ 비스마르크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핵심을 잘 간추려 답한다. “대국을 떠받들면서 소국과 본질적인 차이를 빚어내는 유일한 기초는 국가 이기주의이지 낭만주의가 아니다. 대국이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문제를 두고 다투는 일은 대국의 품위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분, 전쟁의 합당한 목표가 무엇인지 내게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