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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외교정책/외교학
· ISBN : 9791157062683
· 쪽수 : 524쪽
· 출판일 : 2022-10-0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 시련 속에서 단련되다
1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분단-전쟁을 겪으며
범사에 감사하라 / 일제 치하의 소년 시절 / 북에서 맞은 8・15 해방 / 국토 분단의 비극 속에서 / 월남과 국민방위군 생활 / 행운의 미군부대 종업원 /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 육사 4년 / 대한민국 육군소위
2장 연구하며 실력을 배양하다
서울대에서 맞은 4.19혁명 / 5.16과 육사생의 지지 시가행진 / ROTC제도 폐지가 아니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 미국 군사유학 : 게릴라전 연구 / 첫 책 <혁명전쟁과 대공전략> 출간과 결혼
2부 • 안보 일선에서: 자주국방의 길
3장 이스라엘에서 배우다
이스라엘 군사제도 연구 시찰 / 최초의 키브츠 ‘데가니아’ / 이스라엘의 군사전략 / 이스라엘 힘의 원천
4장 자주국방과 율곡계획
이병형 합참 본부장과의 만남/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 율곡계획이 태어나기까지 / 방위세와 율곡사업 / DMZ에서 육군80위원회로 / 신 군부의 집권과 퇴역
3부 • 외교 일선에서
5장 나이지리 4년
군인에서 외교관으로: 나이지리아 연구 / 라고스에서의 험난한 외교관 생활 / 대통령 국빈방문 / 부하리 장군의 쿠데타
6장 오스트레일리아 3년
험지에서 파라다이스로 /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이룩한 복지국가 / 캔버라와 시드니를 오가며 / 6개 주와 북부 특구 공식 방문 / 한반도 분단의 증인 플림솔 경과 나눈 대화 / 아름다운 캔버라의 추억
7장 한반도냉전 종식의 길을 찾아서
외교안보연구원의 연구 교육제도 개혁 / 군비통제 정책 입안 / 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 모스크바 방문 / 베를린에서 본 독일 통일
4부 •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
8장 남북 화해 협력 모색 5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 서울과 평양의 만남 / 이산가족 상봉과 강영훈 총리의 사임 / 적도 친구도 아닌 문제 해결사들 /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채택 / 김일성과 김우중 그리고 김달현 / 남남갈등과 지연전술 / 노태우 대통령과의 독대 / 마지막이 된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남북대화 파탄
9장 김대중과의 만남
민통과 세종연구소 2년 / 김대중과의 첫 만남 /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 /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추진 / 연평해전과 통일부장관의 어려운 결단
10장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4.13총선 계기로 거듭난 국정원 / 남북정상회담 준비 / 김정일과의 첫 만남 / 역사적인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 화해협력시대의 개막 / 6・15와 북-미 관계 진전
11장 역풍을 만난 남북관계
부시의 ABC와 대북 적대정책 / 다시 통일부로 / 8・15평양축전과 세 번째의 장관 해임안 /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 / 다시 대통령특사가 되어 평양으로 / 제네바 미-북합의 파기와 북핵 개발
5부 • 공직을 마치고 평화 통일운동 참여
12장 세종재단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시기
현대의 대북송금문제와 특검 / 남북관계 개선을 선도한 금강산 관광사업 / 유럽3국과 중국 방문
민간 싱크탱크 세종재단 / 2005년의 6・15와 8・15 남북공동행사 /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한 개성공단 / 국정원 불법감청사건 / 회고록 <피스메이커> 출판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 G2로 부상하는 중국 방문 / 하와이, 애틀랜타와 로스앤젤레스
13장 한반도 평화의 길
김대중 대통령 서거 / 한반도평화포럼 / 동방정책과 햇볕정책의 만남 / 압록강 두만강 따라 3,300리 길 / 다시 찾은 평양과 백두산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제 제 나이 90을 앞두고 이 자서전을 펴냅니다. 이 자서전에서는 제가 살아온 인생 역정을 기술하였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해방 후에는 중・고교 시절을 분단된 북녘 땅에서 보내고, 전쟁 시기에 월남하여 제 인생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동서냉전 시기인 1950~1970년대에는 군복을 입고 피스키퍼로서 안보 분야에서, 1980년대에는 외교관으로 외교 분야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리고 동서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는 통일 분야에서 피스메이커로서 제 소명을 다했습니다.
이 자서전에서 저는 제가 살아온 당시의 시대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한편 《피스메이커》에 담지 못한 개인적인 견해와 뒷이야기 등을 추가하여 서술했습니다. 또한 공직생활을 마치고 시민사회의 평화・통일 운동에 참여한 20년의 삶을 기록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1952년 초겨울의 어느 일요일,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육군사관학교 제3기 사관생도 모집’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모집 요강을 읽어보니 4년간 전액 국비로 군사학과 이공계 대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이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장교로 임관된다니 이거야말로 안성맞춤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차피 군 복무는 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응시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구비 서류 중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였다. 평안북도 도민회를 찾아갔더니 고졸을 보증하는 교사의 확인서가 있으면 도지사가 졸업확인서를 발급해 준다는 것이다. 월남한 선생님이 계시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했다. 도민회에서 들려준 바에 의하면, 전쟁 전에 월남하신 음악 교사 이성삼 선생님이 서울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라는 것이다. 며칠 후 송도 피란민 천막촌에서 이 선생님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성삼 선생님은 선천고급중학교 선생님들에 관해 질문하며 확인하고 난 후 흔쾌히 고졸 보증서를 써주며 육사 합격을 기원해 주셨다.
육사 응시 계획을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않은 채 응시 준비에 전력을 다했다. 부대에서는 미군들이 나를 “정직한 소년”,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소년”, “품행이 바르고 성실한 모범 종업원”이라며 1952년 크리스마스를 기해 푸짐한 선물을 주었다. 장병들이 돈을 모아, 그 당시 최고급품으로 명성을 날린 큼직한 진공관 ‘제니스’ 라디오를 선물로 준 것이다. 나는 이날의 기쁨과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 1부 1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분단-전쟁을 겪으며> 중에서
한신 합참의장은 다양하게 나온 토론 결과를 요약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육군 건의안’을 철회하고 ‘합참이 마련한 육군계획(안)’을 육군계획으로 채택한다. 둘째, 팬텀기 9개 대대 증강을 검토한다. 셋째, 해군의 항공기 보유 시기는 1980년대로 이월할 것을 검토한다.
이 계획은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이 계획의 보안을 위해 위장 명칭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과원들과 함께 좋은 명칭을 제안하기 위한 토론을 전개했으나 마음에 드는 명칭이 나오지 않았다. 가능하면 뜻이 깊고 역사적이며 부를 때 어감도 좋은 명칭이기를 희망했다. 며칠 후 나는 ‘율곡계획’과 ‘아사달계획’이라는 두 가지 안을 제시하고 토론에 붙였다. 모두들 ‘율곡계획’이 좋겠다며 이 명칭에 찬성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10여 년 앞두고 율곡 이이(1536~1584)는 ‘10만 양병론’을 주창하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을 호소했다. 그는 국방의 의지를 힘(군사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창한 위대한 선각자였다. 국방력 건설계획은 바로 유비무환의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다. 나는 율곡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율곡계획’이라 명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 제안은 이병형 본부장과 한신 의장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채택되었다. 서종철 국방부장관은 합동참모회의가 의결한 이 계획을 그대로 승인했고 대통령께 보고드릴 날짜도 잡혔다. 1974년 2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이 율곡계획을 재가하였다.
- 2부 4장 >자주국방과 율곡계획>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