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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7763269
· 쪽수 : 217쪽
책 소개
목차
1부 - 성숙
2부 - 고독
3부 - 환희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신의 영혼에 지금 누군가가 장난을 걸고 있다. 아니, 내 몸으로 들어와 산 자들과 무언가를 소통하길 원한다. 이런 것을 두고 빙의라고 하는 걸까. 도대체 어떤 영혼이 지금 내 영혼에 옮겨 붙기 위해 이런 수작을 걸고 있단 말인가.
이혼 수속에 필요한 법적 별거 기간인 1년을 채우는 동안 인선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혼자된 상황을 견디는 것이었다. 애초 시드니에서 가방 두 개 걸머쥐고 서울에 왔을 때부터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선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거리를 걷고, 혼자 주말을 보냈다. 그렇게 혼자 1년을 지내고, 2년을 버티고, 3년을 살아냈다. 어느 모임에서 인선은 같은 또래의 독신녀를 만난 일이 있었다. 물론 초면이었다.
“댁은 말하자면 배냇병신이군요. 나는 살다가 병신 된 거고요.” “네?” “그러니까 댁은 결혼 않고 지금까지 주욱 혼자 살았으니 원래부터 팔이 하나 없는 상태로 산거나 마찬가지고, 나는 늘 두 팔로, 그것도 자그마치 25년간 생활하다가 갑자기 팔 하나를 잃은 느낌 이란 거죠.”
자, 이러고도 내가 양처라고 할 수 있겠어? 칠거지악을 어기고 재혼하지 말라는 말을 했대서가 아니라 남편 내조라고는 거의 한 게 없었으니까 하는 소리야. 남편이 집에 붙어 있지를 않은데다, 나는 나대로 거의 20년 가까이 강릉에서 친정살이를 하느라 같이 살지를 않았던 거야. 남편은 한양에서 이미 다른 여자 치마폭에 휘감겨 있었거든. 친정아버지 돌아가신 후론 사위 노릇할 일도 없었고, 나중에 파주 살 때나 이따금 들렀으니 부부의 틈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는데 꼴 보기 싫은 건 당연한 거 아냐? 둘 사이가 어색 하지 않으면 얼음 같은 냉기가 도는 판에 무슨 내가 내조의 여왕이냐고? 바가지의 여왕이라면 모를까. 마땅히 하는 일도 없이 밖으로 빙빙 도는 남편을 살갑게 해 준 적도 없는 나 같은 여자에게 양처라는 말을 붙이는 건 좀 그렇잖아. 내 남편한테 물어봐. 자식 키우고 자기 일에는 열성이었지만 남편은 찬밥 취급했다고 할 걸. ‘양처는 무슨 얼어 죽을…….’이럴 거야.
남편과 아이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다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행복한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이 다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남편으로도, 아이들로도, 돈으로도, 건강으로도, 젊음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깊숙한 자아의 서랍, 혼자 발견하고 혼자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깊은 자아의 샘 같은 곳이었다. 환경이나 조건과는 무관하게 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는 통로 찾기 같은 것이었고 상황이 나쁠수록 자신을 버티게 하는 근원, 원천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