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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상학/해석학/실존철학
· ISBN : 9791157830985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서문
1장 풍토의 기초 이론
1 풍토 현상
2 인간 존재의 풍토적 규정
2장 세 가지 유형
1 몬순
2 사막
3 목장
3장 몬순적 풍토의 특수 형태
1 중국
2 일본
태풍적 성격
일본의 독특함
4장 예술의 풍토적 성격
5장 풍토학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헤르더에 이르기까지의 풍토학
2 헤르더의 정신풍토학
3 헤겔의 풍토철학
4 헤겔 이후의 풍토학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책속에서
우리는 이미 특정한 땅에 살고 있다. 그에 따라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땅의 자연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 자연환경이 우리에게 주제가 되는 경우는 그것이 생물학적, 생리학적 대상이거나, 국가의 형성과 같은 실천적인 활동에 연관된 대상일 때다. 이러한 주제들은 각 분야의 전문적 연구가 필요한 복잡한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는 사실로서의 풍토를 과연 그대로 자연 현상으로 간주해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풍토를 자연 현상으로 다루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현상 자체가 근원적으로 자연과학의 대상인가 아닌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온순한 자연은 그 온순함에서만 보자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순함의 또 다른 측면은 땅이 건조하고 척박하다는 점인데,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지배하는 땅의 면적이 넓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의 노동으로 넓은 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자연이 온순하기 때문이다. 옛날 게르만족이 반유목민적인 원시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었던 무렵, 당시 그곳은 어쩌면 어두운 숲으로 뒤덮인 걱정스러운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땅도) 일단 일구어 놓으면 인간의 지배 아래 들어와 거역하는 법 없이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연이 된다. 실제로 서유럽의 땅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정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넓은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깊다고 하는 산조차 구석구석 나무들이 심겨 있고, 도로는 산꼭대기까지 통한다. 이것은 산의 경사면이 완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 어느 곳의 나무도 운반할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유럽에서는 이용될 수 없는 땅이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홍콩의 주룽반도 한편에 정박해 있는 배에서 멀리 바라보니 여러 중국인이 타고 있는 정크 가 외국 선박 주위에 모여 화물을 선적하고 있었다. 이 정크에는 몇 명의 중국 노동자 가족이 살고 있는 듯했는데, 4~5명의 귀여운 아이들은 갑판에 모여 놀고 있고 젊은 여자나 노인 등은 돛대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광경은 참으로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런데 그 정크의 뱃머리에는 여러 문門의 구식 포대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것은 물론 해적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해적도 같은 무기를 가지고 다가올 것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결국 화물수송 작업을 하는 정크의 노동자들이 취약한 목선으로 해적과 포격전을 예상하면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게는 이상하고도 놀랍게 다가왔다. 포격전을 예상하며 화물수송 작업을 한다는 게 평상시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중국 노동자들은 이를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여기며 태연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여자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말이다. 이와 같은 노동자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나는 이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중국인 그 자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