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57956241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1-12-0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홍순언 - 하룻밤의 은혜로 거부가 된 역관
객기 때문에 떨어진 신용 | 종계변무를 해결하다 | 어배御杯 들고 취한 척 넘어지다 | 명明에 청병 때도 대접 받다
임치종 - 재물을 다스리는 데 뛰어난 거상
마음 통하면 거금쯤 쉽게 던지다 | 말조심의 소중함을 느끼다 | 암행어사도 감복한 사연
임상옥 - 인삼으로 한 시대를 평정한 무역왕
5년 동안 쌓은 집이 무너지다 | 임상옥의 창고는 부엉이 창고 | 없는 게 없는 박물군자 | 상을 당해도 떠나야 하는 장사꾼의 운명 | 순간적인 기지로 인삼 교역권을 얻다 | 인삼과 인삼 교역권이 만든 임상옥 | 인삼을 태워 버린 배짱 | 허풍쟁이에게 투자할 줄 아는 안목 | 산삼 감정에도 신인神人 | 목숨과 바꾼 5만 냥 | 말년이 외로웠던 거상
백선행 - 꾸밈없는 과부의 끊임없는 선행
죽어도 강도에겐 돈 못 준다 | 본격적인 선행 |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
최봉준 - 소를 몰고 온 천만장자
개인 소유 선박을 갖은 해상왕 | 귀향한 천만장자의 둥지 | 러시아로 떠난 고아 소년 | 두만강을 건너고 죽을 고비를 겪다 | 생명의 은인 야린스키와의 인연 | 항상 고국을 향했던 마음 | 소 무역의 국제적 거부 | 사람보다 소가 먼저 보험 들다
최송설당 - 전 재산을 학교 설립에 쓴 여장부
가문의 역적 누명을 벗기다 | 최송설당을 기리는 장례식 | 가진 돈 모두를 학교 설립에 기부
이승훈 - 독립운동가로 다시 태어난 무역상인
4년 동안 가래침 요강을 부신 보람 | 남에게 절대 기대지 않는 완강한 철학 | 보부상으로 자리매김하다 | 바른 말로 유기공장을 세우다 | 전쟁통에도 신의를 잃지 않다 | 바른 소리의 사나이 | 두 번의 고배를 마신 이승훈 | 천하 거부의 계속되는 실패 | 썩어 가는 쇠가죽 처분 | 안창호의 연설에 감복하다 | 조국 성장에 앞장 선 남강
안순환 - 거친 인생에서 꽃피운 명월관 설립자
개과천선한 패륜아 | 울분 많은 어린 시절 | 백성을 대신한 원각사 인수 | 불우한 기억이 명월관 탄생
김기덕 - 배짱으로 밀어붙인 천만장자
외국어 공부가 성공의 발판이 되다 | 도깨비 놀음에 홀린 김기덕 | 괘종시계 하나로 재기에 성공하다 | 보잘 것 없는 쌍둥이 섬으로 일확천금 | 거금은 사회 공동의 재산이다
최남 - 두 발 앞선 신기술의 귀재
청년이여, 큰 희망을 품어라 | 눈칫밥 속 배움의 길 | 황금정에서의 첫 장사 | 3·1운동으로 번창한 덕원상회 | 일본을 견제한 한국판 백화점 설립 | 늘 새로운 것을 시도했던 개척자
최창학 - 망치 하나로 거부가 된 황금왕
구성광산에서 노다지를 캐다 | 망치 차고 산 속에 뛰어든 지 5년 | 뒤바뀔 뻔한 최창학의 운명 | 노다지 굴에 쳐들어온 무장 독립단 | 사회사업에도 명성을 떨치다 | 비행기 한 대 값을 바친 황금왕 | 김구 선생에게 헌납한 경교장
경주 최부자 - 12대를 거쳐 300년을 이어온 부의 비밀
최부잣집의 육훈六訓 | 최부잣집의 육연六然
리뷰
책속에서
처음에는 상상을 초월한 임상옥의 미친 짓에 기가 질렸고, 두 번째로는 천하의 활인초(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풀)를 태워 버리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그런 다음에야 장삿속이 드러났다.
‘임상옥의 인삼을 못 사면 올 일 년 동안 중국엔 인삼이 없다.’
중국 상인들은 임상옥에게 뛰어들었다.
“임 대인, 왜 이러시오? 이 천하 명약이 재가 되면….”
“천하 명약이라도 명약을 몰라보는 사람에게는 안 팔겠소.”
“우리가 인삼을 몰라봤다니요. 어서 불을 끄도록 이르시오!”
“당신들에게는 안 팔겠소.”
“값은 얼마든지 내리다! 어서 불이나 끄시오.”
이렇게 해서 임상옥과 북경 장사꾼들의 싸움은 쉽게 승부가 나고 말았다.
- ‘임상옥, 인삼으로 한 시대를 평정한 무역왕’ 중에서
백 과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부터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대개 청상이 되면 시름을 잊기 위해 일을 했고 잡념과 설움을 떨쳐 버리려고 땀을 흘렸다. 그래야 기나긴 독수공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평양 변두리인 제 집 앞뒤 마당에 봉숭아 씨를 뿌려 모종을 하고 꽃이 핀 뒤 씨를 받아 닷새 만에 열리는 장에다 내다 팔았다. 질동이를 머리에 이고 음식점을 돌며 뜨물 찌꺼기를 거두어 돼지를 길렀고 남는 음식 찌꺼기는 다른 집에 팔아 돈을 모았다. 틈나는 대로 삯바느질, 콩나물 기르기 등 품삯을 준다면 아무리 궂은일이라도 마다 않고 일을 했다. 백 과부는 돈 되는 것은 무엇이나 내다 팔았고 장날이 돌아올 적에는 무명베 한 필을 짤 만큼의 목화를 사 왔다.
그날 밤에 씨아로 목화씨를 발라내어선 기름을 짜서 팔았다. 이튿날 새벽부터 이 무명을 물레로 실을 뽑아, 이틀 뒤면 베 한 필 길이로 날아 겻불을 피우고 베를 매었다. 그날 밤부터 베틀에 얹어 하루 밤낮을 뚝딱거려 쉬지 않고 베를 짜면 한 필의 무명이 되었다. 다음 장날 이 무명을 내다 팔고 또 목화를 사오고 나머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한 푼 두 푼 엽전이 모이면 항아리에 담아 부엌에 묻었고 이것이 모여 목돈이 되고 이 돈꿰미가 남몰래 늘어 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러구러 지내는 동안 백 과부의 나이 서른 살이 넘었고, 근검절약 10여 년 모은 돈으로 그녀는 평양 근교의 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흉년이 들거나 멀리 외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토지는 헐값으로 살 수 있었기에 그의 재산은 몇 해 만에 거부 소리를 들을 만큼 불어났다. 백 과부는 실상 알부자가 되었건만 그가 먹고 입는 자봉(自奉)은 예대로 형편없었다.
- ‘백선행, 꾸밈없는 과부의 끊임없는 선행’ 중에서
최남은 실망하지 않았다. 남이 보기에는 계속 ‘괴짜짓’만 하면서도 대금을 노리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번에 시도한 것은 ‘10전 균일시(十錢均一市)’라는 새로운 상술이었다. 10전 균일시는 그때 미국에서 막 탄생해서 인기를 끌고 있던 ‘10cent store’의 방법을 재빨리 수입해서 시도한 것이다. 즉 온갖 ‘10전짜리 상품’만 늘어놓고 파는 것으로 그야말로 싼 상품을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이었다.
조선 사람이야 항상 가난하다. 더구나 식민지 수탈정책에 따라 생계가 점점 쪼들리고 일용품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점차 군수품으로 전환해 가는 시기였다. 싸야 한다, 값이 싸야 잘 팔린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수준은 최남의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데가 있어서 습관화된 일상성을 깨기가 쉽지 않다.
- ‘최남, 두 발 앞선 신기술의 귀재’ 중에서